베테랑
한 번 걸리면 끝까지 간다. 한국에서 한 해 검거되는 범죄 사건은 113만건(2021년 기준). 사라진 범죄자를 잡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이 시대의 진정한 경찰 베테랑을 만났다.
한 번 걸리면 끝까지 간다. 한국에서 한 해 검거되는 범죄 사건은 113만건(2021년 기준). 사라진 범죄자를 잡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이 시대의 진정한 경찰 베테랑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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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약 4개월 전인 지난해 10월18일. 캄보디아 '웬치'(범죄단지)에서 보이스피싱 범죄에 가담한 한국인 64명이 인천국제공항으로 수갑을 찬 채 줄줄이 걸어 나왔다. 호송 경찰관 190여명 투입된 대규모 송환 작전이었다. 이번 송환 작전의 중심엔 정수온 경찰청 동남아공조계장(48·경찰대 17기)이 있었다. 지난 12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만난 정 계장은 "국민적 관심도가 큰 상황이었다"며 "당시 한국인들의 빠른 송환을 위해 전세기까지 투입했는데 작전에 변수가 생기는 건 아닌지 걱정이 앞섰다"고 회상했다. 정 계장은 차질 없는 송환을 위해 각종 시나리오를 머릿속으로 그렸다. 비행기 내 환자가 발생하거나 난동 상황이 벌어질 것 등을 고려해 호송관이 비행기에서 타고 내리는 순서까지 계획했다. 처음 호송에 동원된 경찰은 사전 교육도 진행했다. 피의자 증거물도 꼼꼼히 살폈다. 그는 "2시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피의자 신원 확인, 신체수색, 영장 집행까지 다 해야 했다"며 "(시간 내) 비행기가 못 뜨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됐다"고 말했다.
2023년 4월 충북경찰청은 옥천군청 산림과 특별사법경찰관(특사경)으로부터 과학수사 지원을 요청받았다. 충북 옥천군 군북면에서 발생한 대형산불을 조사하던 중 발견한 실화 흔적을 분석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당시 수도권과 충청 등 서해안을 중심으로 산불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했다. 옥천군에서는 축구장 119개 크기에 해당하는 85ha(헥타르, 85만㎡)가 불에 탔다. 충북청 과학수사계에서 근무하던 심갑용 경감(47)은 발화 지점 인근에서 특사경이 확보한 차량의 블랙박스 분석 및 복원에 나섰다. 블랙박스 영상에는 용의자로 추정되는 남성 2명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다만 100만 화소의 저해상도 영상이기에 이들이 어떤 행위를 했는지가 명확하지 않았다. 심 경감은 일주일 만에 피의자 차량번호와 흡연 장면을 확보했다. 주요 영상 프레임의 노이즈를 일일이 개선하는 지난한 작업이었다. 그는 "영상 확대 시 피사체 가장자리 주위에 진동성 무늬가 보이는 현상 등으로 인해 분석이 쉽지 않았던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2023년 여름 새마을금고중앙회가 고소장을 들고 경찰을 찾았을 때만 해도 사건은 임원 '개인의 일탈' 정도로 보였다. 서울 중구 청구동새마을금고 상무가 사업자 대출 심사를 부실하게 해 배임을 했다는 취지였다. 고소 대상은 단 1명, 청구동금고 대출 담당 상무였다. 고소장을 넘겨받은 곳은 경기북부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2대 금융수사팀. 이국재 금융수사팀장이 처음 들여다본 건 금고의 기초 숫자였다. 당시 경찰이 파악한 청구동금고 자산은 약 700억원 수준. 이 팀장은 "사업자대출이 1500억원 정도 나갔다. 자산을 한참 넘어선 것"이라며 "살펴볼 필요성이 있겠다고 봤다"고 회상했다. 경찰 조사 결과 청구동금고에서 2022~2023년 사이 나간 사업자 대출 가운데 1109억원이 사실상 '가짜 대출'이었다. 브로커 조직 두 갈래가 청구동금고를 거점으로 벌인 불법 대출이었다. 경찰은 2년에 걸친 수사 끝에 상무를 비롯해 브로커, 중간 모집책, 명의대여자, 공인중개사 등 133명을 검찰에 송
동네 공원에 아이들이 돌아왔다. 서울 금천구 금하로 은행어린이공원은 올해 초까지만 해도 주민들의 기피 장소였다. 언제부턴가 주취자들이 모여 술판을 벌였기 때문이다. 어린이공원이라는 명칭이 무색하게 어린이들을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어린이들이 신나게 뛰노는 놀이터로 되돌아왔다. 술 취한 채 누워 있던 이들은 공원 화단에 꽃을 심는다. 금천구 공원 환경이 개선된 배경에는 이현호 금천경찰서 범죄예방대응과장의 노력이 있었다. 이 과장은 금천서와 지역사회가 협력해 안전한 공원을 만드는 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그는 "그동안 공원을 주민과 어린이들이 아닌 주취자들이 차지하고 있었다"며 "주민들에게 공원을 돌려주기 위해 지역 사회와 힘을 모으고 있다"고 밝혔다. 금천서와 금천구청 등은 공원 내 주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4월 '음주환경문화 개선 협의체'를 꾸렸다. 5월에는 구청이 경찰의 의견을 반영해 관내 공원 3곳을 '금주공원'으로 지정했다. 금천서는 금주공원을 포함해 주취 신
지난 7월 60대 남성 A씨는 전 재산인 2억2000만원을 수표로 발행해 보이스피싱 수거책에게 전달했다. "범죄에 연루됐으니 자산이 확인되지 않으면 구속시키겠다"는 검사 사칭범의 전화를 받은 뒤였다. 당시 A씨는 피싱 조직에 속아 휴대전화에 악성 앱을 설치한 상태였다. 때문에 피싱범이 A씨에게 전화를 걸면 휴대전화 화면에 검찰청 대표 번호가 적혔다. "비밀 수사니 보안을 유지하라"는 협박에 속은 A씨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수거책에 돈을 건넸다. A씨 신고를 접수한 서울 강서경찰서 강력팀은 즉시 수표 지급정지를 신청했다. 수거책을 잡기 위해 범행 장소였던 지하철역과 인근에 설치된 모든 CCTV(폐쇄회로TV)를 확인했다. 강력팀 소속 이병헌 경감도 수거책을 추적하며 밤을 지샜다. 이 경감은 "범행 현장엔 CCTV가 없어 범인의 인상착의조차 확인할 수 없었다"며 "역에서 수상하게 서성이던 여성을 용의자로 특정하고, 이동경로를 따라 끈질기게 추적해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붙잡았다"고
올해 3월17일 새벽 서울중랑경찰서 112치안종합상황실에 경기남부경찰청의 공조 요청이 접수됐다. 자살 시도 의심자에 대한 위치추적을 도와달라는 내용이었다. 상황실에서 근무하던 한민욱 경위(42)는 즉시 대상자 휴대전화의 위치정보를 분석해 정밀탐색기 사용 가능 여부를 판단했다. 이후 GPS 값 등 여러 위치정보를 활용해 초기 수색 범위를 좁히고, 예상 지역을 서울 중랑구의 한 숙박시설로 특정했다. 한 경위의 관제에 따라 현장 경찰들은 건물에서 수색을 이어 나갔고 3층에서 구조 대상자의 신호를 감지했다. 신고 접수 7분 만에 구조에 성공했다. 한 경위는 "조금만 더 늦었으면 대상자가 사망할 수 있었던 상황"이라며 "지금까지 경험 중 가장 빠르게 구조한 사례다. 기술과 경험, 그리고 협업이 결합되면 한 사람의 생명을 지킬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절실히 느꼈다"라고 말했다. 서울경찰청에 따르면 2024년 9월부터 12월까지 중랑서에서 정밀탐색기를 사용한 87건 중 74건이 실제 탐색 대
지난해 3월 경기 일산동부경찰서 강력팀은 첩보 한 통을 접수했다. 첩보를 통해 서울 용산구 이태원 일대에 숨겨진 마약을 가져간 운반책이 있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강력팀은 이틀 뒤 새벽 3시 경기 안산의 한 주차장에서 운반책을 검거했다. 평범해 보이는 30대 남성 운반책의 가방에선 일명 '클럽 마약' 케타민이 덩어리째 발견됐다. 최대 20만명이 동시 투약할 수 있는 분량이었다. 옷가지와 비닐에 둘러싸여 겉보기엔 평범했다. 검거한 강력팀에는 한 달 전 일산동부서 강력팀에 배치된 김재이 경사도 있었다. 그는 첩보부터 검거까지 48시간이 채 안 된 긴박했던 수사 과정을 회상했다. 그는 "얼굴도, 이름도, 나이도 모르는 피의자를 잡기 위해 CCTV(폐쇄회로TV) 동선을 샅샅이 확인했다"며 "공공 CCTV는 물론이고 사각지대에 있는 사설 CCTV까지 전부 열람을 부탁해 추적 끝에 피의자를 붙잡을 수 있었다"고 했다. 권정상 경력팀장이 현장을 지휘하고 김현수 경위, 심준승 경장이 운반책을 긴급
지난해 인천공항 인근, 겉보기엔 평범한 2층 주택. 집 앞으로 택배 상자가 하루에도 몇 개씩 배송됐다. 상자 안에는 보이스피싱 범죄에 쓰일 대포폰이 들어 있었다. 중국인 '보따리상'들은 몸에 한두대씩 대포폰을 숨겨 출국했다. 서영웅 팀장이 이끄는 경기북부경찰청 형사기동대 피싱범죄수사2반이 가정집으로 위장한 대포폰의 마지막 국내 집결지를 덮쳤다. 서 팀장은 "중간 유통책을 설득하고 끝까지 회유해 유통라인 11곳을 알아냈다"고 했다. 수사 끝에 대포폰 3453대를 중국으로 밀반출한 중국 국적 유통 총책을 비롯해 피의자 총 145명이 붙잡혔다. 이 대포폰을 활용한 보이스피싱 피해자만 100명이 넘었다. 서 팀장은 지난해 처음 피싱수사반을 맡았다. 팀원은 서너명, 대부분 경력 3년 남짓의 초년생이었다. 기본적인 수사 기법은 있었지만 첩보가 없어 막막했던 그는 팀원들과 함께 일선 경찰서 수사과를 돌며 '미제편철'된 기록들을 일일이 꺼내 들여다봤다. 혹시라도 놓친 단서가 있다면 다시 추적하기
서초경찰서 강력계로 들어가는 쇠창살 문 위에는 '끈질긴 형사가 승리한다'는 나무 문패가 걸려 있다. 쇠문을 지나 김종찬 팀장이 있는 마약범죄수사팀 사무실로 들어서면 벽에 도배된 손글씨 조직도가 눈에 띈다. 필리핀, 조선족, 한국 유명 마약 조직을 윗선부터 말단까지 분석해 놓은 피라미드 도표다. 조직 하나에 조직원만 수십명. 김 팀장과는 2023년 2월 마약팀 출범 전 강력팀에서부터 손발을 맞췄던 김영민 경감이 손수 만들었다. '총책-밀수책-중간 유통책-말단 유통책'으로 이어지는 인물들 전력이 화려하다. 대부분 서초서 마약팀 손에 잡혀 구속된 이들이다. 서초경찰서 마약범죄수사팀은 투약자→수거책→중간 유통책→밀수책→총책까지 마약범죄조직 일당을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며 잡아들였다. 2년 전 출범 이후 이 팀은 국내 일선서 가운데 최고 실적을 냈다. 최근 태국발 밀수조직의 총책까지 국내로 송환하며 국제공조 모범사례를 추가했다. 김 팀장은 "투약 10명을 잡는 것보다 유통 1명을 특정하는
지난해 4월 서울 종로구 동묘공원 인근에서 보험사기로 의심되는 교통사고가 발생했다는 신고가 서울 혜화경찰서에 접수됐다. 당시 혜화서 교통범죄수사팀의 팀장이었던 김동수 경감(56)은 현장 주변에 있던 CCTV(폐쇄회로TV) 영상부터 확인했다. 김 경감은 영상을 보자마자 보험사기라는 점을 알아챘다. A씨(68)가 지나가는 차량에 팔을 슬쩍 대는 모습을 포착한 것. 전형적인 '팔치기 수법'이었다. 김 경감은 보험사기 피해자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A씨와 관련된 교통사고 보험 접수 내역부터 확인했다. 보험사 조사팀장들과 연락하며 A씨 관련 사고의 보험 서류 등 자료를 확보했다. 피해자가 더 있을 것이란 김 경감의 직감은 적중했다. 그는 자료 분석을 통해 2022~2024년 총 9건의 보험사기 의심 사례를 특정했다. 피해자들을 직접 찾아가 진술과 블랙박스 영상을 확보했다. A씨의 신종 사기 수법도 밝혀냈다. A씨는 서행하는 차량의 사이드미러에 일부러 팔을 부딪친
'집에 무사히 돌아갈 수는 있을까.' 2018년 처음으로 엘살바도르를 찾은 정환우 부천오정경찰서 범죄예방대응과 범죄예방계장(사진·58)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정 계장은 엘살바도르의 첫인상을 "영화 속 한 장면 같았다"고 회상했다. 그는 "실제로 집마다 쇠창살이 세워져 있고 조그마한 구멍가게에도 총을 든 경비원들이 배치됐다"며 "해외여행 갈 때마다 흔하게 들르던 시장도 들어갈 수 없을 만큼 분위기가 험악했다"고 말했다. 이어 "경찰도 갱단에 의해 살해되는 일이 있었던 만큼 긴장을 많이 하고 입국했다"고 했다. 정 계장은 2018년 4월부터 경찰청 국제치안협력 치안전문가로 활동 중이다. 그는 1989년 12월 경찰에 입직한 뒤 18년간 112치안상황실에서 근무하며 노하우를 쌓았다. 이런 경험을 활용해 엘살바도르, 앙골라, 우즈베키스탄 등 개발도상국에 한국의 112시스템 전수를 돕고 있다. 정 계장이 처음으로 파견된 엘살바도르의 긴급 신고 시스템은 제대로 된 매뉴얼조차 없었다. '어떤
"불이야! 불이야!" 지난달 13일 새벽 1시쯤 서울 마포구 대흥동의 한 건물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마포경찰서 용강지구대로 소방의 공동 대응 요청이 접수됐다. 순찰3팀 소속 여지은 순경(사진)은 동료들과 신속히 화재 현장으로 출동했다.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6층 건물 옥탑이 전소될 정도로 화재가 컸다. 여 순경은 진화 직후 건물 거주자들을 상대로 화재 경위 파악에 나섰다. 발화 지점은 6층, 그런데 해당 층 거주자가 보이지 않았다. 여 순경이 집주인에게 6층 거주자의 인적 사항을 묻던 중 대피한 주민들 사이에서 한 50대 남성(A씨)이 자신이라며 손을 들었다. 여 순경이 화재 경위를 묻자 A씨는 식은땀을 흘리며 횡설수설했다. 그는 "누군가 창고를 통해 나를 감시하고 있다", "집으로 가스를 계속 주입하고 있다" 등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쏟아냈다. 수상한 느낌이 들었던 여 순경은 A씨를 유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천천히 시선을 옮기던 중 A씨가 입고 있던 코트 오른쪽 주머니에 칼 손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