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
한 번 걸리면 끝까지 간다. 한국에서 한 해 검거되는 범죄 사건은 113만건(2021년 기준). 사라진 범죄자를 잡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이 시대의 진정한 경찰 베테랑을 만났다.
한 번 걸리면 끝까지 간다. 한국에서 한 해 검거되는 범죄 사건은 113만건(2021년 기준). 사라진 범죄자를 잡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이 시대의 진정한 경찰 베테랑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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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병에 900만원씩 드릴게요. 저희 병원장님이 드실 샤또마고 와인 좀 대신 구매해주시겠어요. " 식당으로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수화기 너머의 제안은 구체적이었다. 자신을 병원 직원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단체 회식을 준비 중이라며 고가의 와인을 대신 구매해주면 차액을 남길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말했다. 솔깃한 제안 뒤에는 치밀하게 짜인 사기가 숨어 있었다. 병원 직원이라고 속인 조직원은 업주가 잘 모르는 품목을 구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연출했다. 업주가 구매를 시도하면 판매상으로 가장한 또 다른 조직원이 접근해 주문을 받는다. 와인을 병당 550만원에 넘기겠다고 한다. 몇 병만 거래해도 수백만원을 남길 수 있다는 생각에 업주 마음이 흔들렸다. 와인은 오지 않았고 예약 손님도 나타나지 않았다. 심지어는 "물류 사고가 났다"는 말에 속아 추가 비용까지 지불한 경우도 있었다. 캄보디아에 거점을 둔 피싱범죄 조직원들이 소상공인으로부터 약 52억원을 뜯어낸 '노쇼(예약 부도) 사기' 방식이다. 피해자들의 설움은 일부 조직원들이 붙잡히면서 드러나기 시작했다.
"보이스피싱을 당한 것 같아요. " 지난달 7일 정오쯤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파출소로 한 시민이 다급히 들어왔다. 그는 이미 보이스피싱범에게 한 차례 3000만원을 건넨 상황이라고 했다. 범인은 본인을 증권사 직원이라고 속이고 고수익을 미끼로 투자금을 보내라고 유도했다. 신고자는 "1시간 뒤 동대문세무서에서 만나 4000만원을 추가로 주기로 했다"고 말했다. 순찰과 민원 대응이 중심인 파출소에서 잠복 수사에 나서는 일은 드물지만,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청량리파출소 소속 박기동 경사(35)는 곧바로 팀원들과 사복으로 갈아입고 현장 잠복에 나섰다. 박 경사는 "날씨가 정말 추웠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박 경사는 "인근 경비실 등 현장을 지켜볼 수 있는 실내 공간도 있었지만 범인 도주를 대비해 길가에서 대기했다"고 말했다. 약속한 시간이 30분이 지나도록 범인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경찰은 잠복이 들켰다고 판단했다. 철수를 준비하려는 순간 동대문세무서에 차를 주차한 한 남성이 신고자에게 접근했다. 신고자의 손짓을 본 박 경사는 현장을 덮쳤다.
범죄 신고부터 과태료 문의, 동네 순찰을 늘려달라는 민원까지 경찰서에 가지 않고도 해결할 수 있게 된다. 인공지능(AI) 챗봇이 24시간 접수받고 처리까지 돕는다. 민원 유형을 자동 분류해 관련 부서에 내용을 전달하고 처리 결과도 회신한다. 범죄 피해 의심 정황이 발견되면 즉시 112 상황실에 연계해 신고를 유도한다. 경찰이 100억원을 투입해 추진 중인 AI 역점 과제 '모두의 경찰관'이 목표대로 도입됐을 때 펼쳐질 풍경이다. 경찰청은 올해 치안 특화 AI 파운데이션 모델을 개발하고 필요한 데이터 확보·정제 작업을 진행할 계획이다. 이어 2027년까지 국민신문고, 경찰민원24, 182 콜센터, 112 시스템 등 기존 민원·신고 체계와 연계한 AI 실증을 마칠 예정이다. 대형 프로젝트의 출발점에는 이치화 경찰청 인공지능정책계장(사진)의 문제의식이 있었다. 이 계장은 과거 일선서에서 근무하던 때 직원들이 밀려오는 민원에 본연의 업무를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서비스를 고안했다. 국가 지원 사업 선정을 위해 공모서 작성도 총괄했다.
지금으로부터 약 4개월 전인 지난해 10월18일. 캄보디아 '웬치'(범죄단지)에서 보이스피싱 범죄에 가담한 한국인 64명이 인천국제공항으로 수갑을 찬 채 줄줄이 걸어 나왔다. 호송 경찰관 190여명 투입된 대규모 송환 작전이었다. 이번 송환 작전의 중심엔 정수온 경찰청 동남아공조계장(48·경찰대 17기)이 있었다. 지난 12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만난 정 계장은 "국민적 관심도가 큰 상황이었다"며 "당시 한국인들의 빠른 송환을 위해 전세기까지 투입했는데 작전에 변수가 생기는 건 아닌지 걱정이 앞섰다"고 회상했다. 정 계장은 차질 없는 송환을 위해 각종 시나리오를 머릿속으로 그렸다. 비행기 내 환자가 발생하거나 난동 상황이 벌어질 것 등을 고려해 호송관이 비행기에서 타고 내리는 순서까지 계획했다. 처음 호송에 동원된 경찰은 사전 교육도 진행했다. 피의자 증거물도 꼼꼼히 살폈다. 그는 "2시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피의자 신원 확인, 신체수색, 영장 집행까지 다 해야 했다"며 "(시간 내) 비행기가 못 뜨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됐다"고 말했다.
2023년 4월 충북경찰청은 옥천군청 산림과 특별사법경찰관(특사경)으로부터 과학수사 지원을 요청받았다. 충북 옥천군 군북면에서 발생한 대형산불을 조사하던 중 발견한 실화 흔적을 분석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당시 수도권과 충청 등 서해안을 중심으로 산불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했다. 옥천군에서는 축구장 119개 크기에 해당하는 85ha(헥타르, 85만㎡)가 불에 탔다. 충북청 과학수사계에서 근무하던 심갑용 경감(47)은 발화 지점 인근에서 특사경이 확보한 차량의 블랙박스 분석 및 복원에 나섰다. 블랙박스 영상에는 용의자로 추정되는 남성 2명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다만 100만 화소의 저해상도 영상이기에 이들이 어떤 행위를 했는지가 명확하지 않았다. 심 경감은 일주일 만에 피의자 차량번호와 흡연 장면을 확보했다. 주요 영상 프레임의 노이즈를 일일이 개선하는 지난한 작업이었다. 그는 "영상 확대 시 피사체 가장자리 주위에 진동성 무늬가 보이는 현상 등으로 인해 분석이 쉽지 않았던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2023년 여름 새마을금고중앙회가 고소장을 들고 경찰을 찾았을 때만 해도 사건은 임원 '개인의 일탈' 정도로 보였다. 서울 중구 청구동새마을금고 상무가 사업자 대출 심사를 부실하게 해 배임을 했다는 취지였다. 고소 대상은 단 1명, 청구동금고 대출 담당 상무였다. 고소장을 넘겨받은 곳은 경기북부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2대 금융수사팀. 이국재 금융수사팀장이 처음 들여다본 건 금고의 기초 숫자였다. 당시 경찰이 파악한 청구동금고 자산은 약 700억원 수준. 이 팀장은 "사업자대출이 1500억원 정도 나갔다. 자산을 한참 넘어선 것"이라며 "살펴볼 필요성이 있겠다고 봤다"고 회상했다. 경찰 조사 결과 청구동금고에서 2022~2023년 사이 나간 사업자 대출 가운데 1109억원이 사실상 '가짜 대출'이었다. 브로커 조직 두 갈래가 청구동금고를 거점으로 벌인 불법 대출이었다. 경찰은 2년에 걸친 수사 끝에 상무를 비롯해 브로커, 중간 모집책, 명의대여자, 공인중개사 등 133명을 검찰에 송
동네 공원에 아이들이 돌아왔다. 서울 금천구 금하로 은행어린이공원은 올해 초까지만 해도 주민들의 기피 장소였다. 언제부턴가 주취자들이 모여 술판을 벌였기 때문이다. 어린이공원이라는 명칭이 무색하게 어린이들을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어린이들이 신나게 뛰노는 놀이터로 되돌아왔다. 술 취한 채 누워 있던 이들은 공원 화단에 꽃을 심는다. 금천구 공원 환경이 개선된 배경에는 이현호 금천경찰서 범죄예방대응과장의 노력이 있었다. 이 과장은 금천서와 지역사회가 협력해 안전한 공원을 만드는 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그는 "그동안 공원을 주민과 어린이들이 아닌 주취자들이 차지하고 있었다"며 "주민들에게 공원을 돌려주기 위해 지역 사회와 힘을 모으고 있다"고 밝혔다. 금천서와 금천구청 등은 공원 내 주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4월 '음주환경문화 개선 협의체'를 꾸렸다. 5월에는 구청이 경찰의 의견을 반영해 관내 공원 3곳을 '금주공원'으로 지정했다. 금천서는 금주공원을 포함해 주취 신
지난 7월 60대 남성 A씨는 전 재산인 2억2000만원을 수표로 발행해 보이스피싱 수거책에게 전달했다. "범죄에 연루됐으니 자산이 확인되지 않으면 구속시키겠다"는 검사 사칭범의 전화를 받은 뒤였다. 당시 A씨는 피싱 조직에 속아 휴대전화에 악성 앱을 설치한 상태였다. 때문에 피싱범이 A씨에게 전화를 걸면 휴대전화 화면에 검찰청 대표 번호가 적혔다. "비밀 수사니 보안을 유지하라"는 협박에 속은 A씨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수거책에 돈을 건넸다. A씨 신고를 접수한 서울 강서경찰서 강력팀은 즉시 수표 지급정지를 신청했다. 수거책을 잡기 위해 범행 장소였던 지하철역과 인근에 설치된 모든 CCTV(폐쇄회로TV)를 확인했다. 강력팀 소속 이병헌 경감도 수거책을 추적하며 밤을 지샜다. 이 경감은 "범행 현장엔 CCTV가 없어 범인의 인상착의조차 확인할 수 없었다"며 "역에서 수상하게 서성이던 여성을 용의자로 특정하고, 이동경로를 따라 끈질기게 추적해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붙잡았다"고
올해 3월17일 새벽 서울중랑경찰서 112치안종합상황실에 경기남부경찰청의 공조 요청이 접수됐다. 자살 시도 의심자에 대한 위치추적을 도와달라는 내용이었다. 상황실에서 근무하던 한민욱 경위(42)는 즉시 대상자 휴대전화의 위치정보를 분석해 정밀탐색기 사용 가능 여부를 판단했다. 이후 GPS 값 등 여러 위치정보를 활용해 초기 수색 범위를 좁히고, 예상 지역을 서울 중랑구의 한 숙박시설로 특정했다. 한 경위의 관제에 따라 현장 경찰들은 건물에서 수색을 이어 나갔고 3층에서 구조 대상자의 신호를 감지했다. 신고 접수 7분 만에 구조에 성공했다. 한 경위는 "조금만 더 늦었으면 대상자가 사망할 수 있었던 상황"이라며 "지금까지 경험 중 가장 빠르게 구조한 사례다. 기술과 경험, 그리고 협업이 결합되면 한 사람의 생명을 지킬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절실히 느꼈다"라고 말했다. 서울경찰청에 따르면 2024년 9월부터 12월까지 중랑서에서 정밀탐색기를 사용한 87건 중 74건이 실제 탐색 대
지난해 3월 경기 일산동부경찰서 강력팀은 첩보 한 통을 접수했다. 첩보를 통해 서울 용산구 이태원 일대에 숨겨진 마약을 가져간 운반책이 있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강력팀은 이틀 뒤 새벽 3시 경기 안산의 한 주차장에서 운반책을 검거했다. 평범해 보이는 30대 남성 운반책의 가방에선 일명 '클럽 마약' 케타민이 덩어리째 발견됐다. 최대 20만명이 동시 투약할 수 있는 분량이었다. 옷가지와 비닐에 둘러싸여 겉보기엔 평범했다. 검거한 강력팀에는 한 달 전 일산동부서 강력팀에 배치된 김재이 경사도 있었다. 그는 첩보부터 검거까지 48시간이 채 안 된 긴박했던 수사 과정을 회상했다. 그는 "얼굴도, 이름도, 나이도 모르는 피의자를 잡기 위해 CCTV(폐쇄회로TV) 동선을 샅샅이 확인했다"며 "공공 CCTV는 물론이고 사각지대에 있는 사설 CCTV까지 전부 열람을 부탁해 추적 끝에 피의자를 붙잡을 수 있었다"고 했다. 권정상 경력팀장이 현장을 지휘하고 김현수 경위, 심준승 경장이 운반책을 긴급체포했다. 김 경사는 운반책이 소지한 케타민 6㎏을 발견해 압수했다.
지난해 인천공항 인근, 겉보기엔 평범한 2층 주택. 집 앞으로 택배 상자가 하루에도 몇 개씩 배송됐다. 상자 안에는 보이스피싱 범죄에 쓰일 대포폰이 들어 있었다. 중국인 '보따리상'들은 몸에 한두대씩 대포폰을 숨겨 출국했다. 서영웅 팀장이 이끄는 경기북부경찰청 형사기동대 피싱범죄수사2반이 가정집으로 위장한 대포폰의 마지막 국내 집결지를 덮쳤다. 서 팀장은 "중간 유통책을 설득하고 끝까지 회유해 유통라인 11곳을 알아냈다"고 했다. 수사 끝에 대포폰 3453대를 중국으로 밀반출한 중국 국적 유통 총책을 비롯해 피의자 총 145명이 붙잡혔다. 이 대포폰을 활용한 보이스피싱 피해자만 100명이 넘었다. 서 팀장은 지난해 처음 피싱수사반을 맡았다. 팀원은 서너명, 대부분 경력 3년 남짓의 초년생이었다. 기본적인 수사 기법은 있었지만 첩보가 없어 막막했던 그는 팀원들과 함께 일선 경찰서 수사과를 돌며 '미제편철'된 기록들을 일일이 꺼내 들여다봤다. 혹시라도 놓친 단서가 있다면 다시 추적하기
서초경찰서 강력계로 들어가는 쇠창살 문 위에는 '끈질긴 형사가 승리한다'는 나무 문패가 걸려 있다. 쇠문을 지나 김종찬 팀장이 있는 마약범죄수사팀 사무실로 들어서면 벽에 도배된 손글씨 조직도가 눈에 띈다. 필리핀, 조선족, 한국 유명 마약 조직을 윗선부터 말단까지 분석해 놓은 피라미드 도표다. 조직 하나에 조직원만 수십명. 김 팀장과는 2023년 2월 마약팀 출범 전 강력팀에서부터 손발을 맞췄던 김영민 경감이 손수 만들었다. '총책-밀수책-중간 유통책-말단 유통책'으로 이어지는 인물들 전력이 화려하다. 대부분 서초서 마약팀 손에 잡혀 구속된 이들이다. 서초경찰서 마약범죄수사팀은 투약자→수거책→중간 유통책→밀수책→총책까지 마약범죄조직 일당을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며 잡아들였다. 2년 전 출범 이후 이 팀은 국내 일선서 가운데 최고 실적을 냈다. 최근 태국발 밀수조직의 총책까지 국내로 송환하며 국제공조 모범사례를 추가했다. 김 팀장은 "투약 10명을 잡는 것보다 유통 1명을 특정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