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시작해도 환하네…"소리 내도 이해" 치매 환자 반기는 극장[르포]

김지은, 인천=김선아 기자
2024.11.03 08:00

'치매 친화 영화관' 미림극장

지난달 30일 오전 국내 유일의 치매 친화 영화관 '미림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있는 관람객의 모습/사진=김선아 기자

"내가 처녀 때 극장을 오고 처음 와."

지난달 30일 오전 10시쯤 인천시 동구 송현동에 위치한 미림극장. 70대 노인 김모씨가 어린 아이처럼 활짝 웃으며 상영관 내부를 둘러봤다. 김씨 기억 속에 영화관 나들이는 결혼하기 전 방문했던 게 마지막이다. 이날 상영한 영화는 이정섭 감독의 '인연을 긋다'.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와 두 며느리 이야기를 담았다.

상영관 의자에는 흰머리가 지긋한 노인들이 하나 둘 들어섰다. 영화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두명씩 밖으로 빠져나갔다. 자신이 영화관에 왔다는 사실을 잊고 갑갑함을 느낀 사람들이었다. 직원들은 익숙하다는 듯 "어디가느냐" "저랑 앉아서 이야기하자"며 따라나갔다. 한창 밖에서 머물던 노인들은 팝콘을 집어 들고 영화관 의자에 다시 앉았다.

미림극장은 매달 마지막주 수요일 국내 유일 치매 친화 영화관으로 변신한다. 올해로 4년째 운영되고 있는 '가치함께 시네마'의 누적 방문객은 3782명에 달한다. 지난 3월부터 9월까지 1050명이 방문했다. 올해 마지막 상영날이었던 이날 하루 관객 약 200명이 특별한 시간을 보냈다.

"상영 중에도 밝게 유지" 치매 영화관, 어떤 점이 다를까

어두운 곳을 무서워하거나 답답해하는 관객들을 위해 영화 상영 중에도 상영관 뒷편에 약하게 조명을 켜두고 있다/사진=김선아 기자

보건복지부 중앙치매센터에 의하면 지난 3월 기준 65세 이상 노인 중 치매 환자는 105만2977명이다. 치매 환자 수는 매년 늘어나지만 이들이 마음 편히 다닐 수 있는 영화관은 사실상 많지 않다.

치매 진단을 받는 남편과 함께 미림극장을 찾은 50대 김모씨는 "초로기 치매(65세 이전에 발생하는 치매) 경우에는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해보여서 사람들이 더 이상하게 쳐다본다"며 "화장실 가는 것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미림극장은 1957년 천막극장으로 개관했다가 2004년 문을 닫았다. 2013년 재개관하면서 오랜 시간 함께온 어르신 관객들도 편하고 저렴하게 영화를 볼 수 있도록 했다. 치매 노인들 역시 가족들과 부담 없이 영화를 볼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미림극장은 영화 상영 전에 '치매 친화 영화관 관람 안내'를 관객들에게 보여준다. /사진=김선아 기자

미림극장은 치매 친화 시설이 곳곳에 마련됐다. 영화 상영 전에는 '치매 친화 영화관 관람 안내' 문구도 나온다. 상영 중 치매 대상자나 가족이 소리를 내도 이해해달라는 내용부터 상영 중 화장실을 가고 싶으면 언제든 갈 수 있다고 했다.

영화가 시작돼도 상영관 뒤편은 조명이 약하게 켜졌다. 상영관 내부가 어두우면 치매 환자들이 불안해하고 이동 중에도 넘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곳에 자주 온다는 김용태씨(83)는 "치매 노인들이 자주 오가는데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며 "서로 다 이해하면서 살아야된다"고 말했다.

극장 곳곳에는 큼지막한 안내판도 붙어 있었다. 거울 앞에는 '나를 비추는 거울입니다. 충돌 주의하세요' 등이 적혀 있었다. 치매 환자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인식하지 못해 놀랄 수 있기 때문이다. 화장실에도 무엇을 해야 할지 잊어버리는 치매 환자를 위해 '세면대, 손을 씻어주세요'라고 적혀 있었다.

치매 노인 가족들 "편하게 영화관 가는 게 꿈"

미림극장 내에는 치매 환자들이 쉽게 볼 수 있도록 '나를 비추는 거울입니다' '충돌 주의 하세요' 등의 안내문이 크게 적혀있다. /사진=김선아 기자

치매 노인 보호자들은 가족과 함께 영화를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만족했다. 보호자 황모씨는 "치매 환자를 데리고 일반 영화관 가는 것은 꿈도 못 꾼다"며 "혹시 소리라도 지를까봐 외출 자체가 꺼려진다. 이렇게 오라는 곳이 하나라도 있어 위안이 된다"고 말했다.

이날 미림극장에는 초로기 치매 환자 이모씨(59)가 일일 직원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그는 티켓을 배부하거나 글씨를 못 쓰는 고령의 방문객을 대신해 이름을 적어주는 역할을 했다. 이씨 보호자는 "집에만 있지 않고 밖에 나와서 활동하니까 좋다"며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치매 증상이 악화되는 속도도 느려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민아 인천광역치매센터 기획홍보팀장은 "평소 치매와 관련이 없는 사람들이 치매 노인들과 영화를 보고 치매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 게 첫 걸음"이라며 "치매 진단을 받아도 변함없는 삶을 살아가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인천시 동구 송현동에 위치한 미림극장 모습. /사진=김선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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