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지키는 법이 보이스피싱 범죄자들 방패막됐다"…경찰 작심비판

이강준 기자
2025.04.17 16:56
29일 서울 동대문경찰서에서 진행된 필로폰 등 마약을 국내 유통한 보이스피싱 조식 검거 브리핑에서 경찰들이 압수한 증거품을 공개하고 있다./사진=뉴스1

"국민 권익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법률이 범죄자들의 방패막이가 되고 있는 모순적 상황이다."

박상현 경찰청 전기통신금융사기 통합신고센터(보이스피싱 센터) 계장은 17일 오후 1시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제2회 금융범죄 예방을 위한 정책세미나'에서 "경찰이 간편제보 기반 보이스피싱 번호 긴급차단 시스템을 운영하려 했지만, 간편제보 정보에 포함된 '원발신번호'를 제공받는 게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이 될 수 있다는 법무부 유권해석이 있었다"고 말했다.

/사진제공=경찰청

경찰은 삼성전자와 협업해 미끼 문자와와 보이스피싱 의심 전화번호를 휴대폰에서 바로 경찰청으로 신고하면서 번호를 차단할 수 있는 간편제보 기능을 추가했다. 기존엔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에 직접 연락해야만 스팸 신고·차단을 할 수 있었다.

경찰청은 간편제보 시스템을 기반으로 '긴급차단 시스템'도 구현했다. 경찰은 48시간 이상 걸리던 전화번호 차단 소요시간이 10분 이내로 단축되고, 이 기능으로 추가 범행까지 차단하면 오는 2027년까지 보이스피싱 피해액이 약 1200억원 이상 감소할 것으로 본다.

번호차단 속도가 매우 빨라져 암시장에서 판매되는 심(SIM)카드 시세도 급등할 것으로 예측된다. 경찰은 범죄조직이 보이스피싱에 투입하는 비용이 127억원 이상 증가하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

/사진제공=경찰청

다만 긴급차단 시스템은 아직 답보상태다. 긴급차단 시스템을 가동하려면 간편제보를 통해 '원발신번호' 정보를 경찰이 알아야 하는데,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스미싱·보이스피싱에 쓰이는 전화번호를 경찰이 선제적으로 확보하는 게 법위반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박 계장은 "피싱범들은 온갖 통신비밀과 개인정보를 탈취해 범행에 활용하는 상황에서, 통신비밀보호법과 개인정보보호법이 입법 취지에 맞지 않게 범죄자들 방패막이 역할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미 외국은 통신사기를 막기 위해 국가기관 권한을 강화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경찰 산하 '반사기센터(Anti Scam Center)'에서 피해자 계좌를 모니터링하다 의심스러운 이체 내역이 발생하면 경찰이 바로 계좌정지를 명령할 수 있다. 미국·캐나다는 수사기관이 요청한다면 이용자의 통신 정보 등 개인정보를 자발적으로 제공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박 계장은 "우리나라도 추세에 발맞춰 과감한 입법적 조치를 해야 한다"며 "21대 국회에서 '사기방지기본법'이 발의됐지만 법제사법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해 폐기됐다. 싱가포르만큼 강력한 권한이 아니더라도, 통신사기에 이용된 전화번호와 계좌는 신속하게 정보를 공유하고 선제차단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가 마련돼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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