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은 닥치는 대로 죽였다…가짜뉴스에 억울하게 숨진 6661명 [뉴스속오늘]

윤혜주 기자
2025.09.01 06:00
[편집자주] 뉴스를 통해 우리를 웃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학살 생존자 조인승 씨/사진=KBS, 1983년 오충공 감독의 다큐멘터리 '감춰진 손톱자국'

1923년 9월1일. 일본 관동 지역 일대에 규모 7.9의 지진이 발생했다. 사망자만 10만명이 넘을 정도로 피해가 컸는데, 돌연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는 유언비어가 퍼지기 시작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날 오전 11시 58분. 일본 수도권인 도쿄·가나가와·지바 등 간토 지방에서 규모 7.9의 지진이 발생해 10만5000여명이 사망했다. 2011년 규모 9.0으로 기록됐던 동일본 대지진 사망자 수의 6배에 달한다. 피해액도 현재 가치로는 약 46조원에 달하는 전년도 국민총생산의 약 3분의 1정도로 추산됐다.이른바 일본 역사상 최악의 대재앙으로 불리는 관동대지진이다.

지진으로 인한 불길은 목조 건물을 타고 빠르게 번져 45만여 가구를 태웠고, 점심 식사를 준비하던 사람들은 미처 대피할 틈도 없이 목숨을 잃었다. 1차 세계대전 후 일자리가 감소되는 등 경제 불황에서 자연재해로 더 먹고 살기 어려워지자 민심은 악화됐다. 당시 값싼 조선인 노동력이 일본 내에 유입됐는데, 조선인들이 일본인의 일자리를 빼앗았다는 인식도 퍼지기 시작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일본 정부의 선택은 계엄령 선포였다. 성난 민심에 폭동이 일어나기 전 선수를 치기로 한 건데, 계엄령 선포에 명분이 필요하자 조선인들을 희생양으로 삼았다. 조선인들에 대한 일본인의 악감정을 조장해 일본 정부를 향한 분노를 다른 곳으로 돌리기로 한 것이다.

3·1운동 직후 조선총독부 정무총감이었던 미즈노 렌타로 내무대신이 앞장섰다. 내무대신은 최초의 유언비어 유포자로 "난리통에 조선인이 여기저기 불을 지르고 다닌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 "조선인이 국가방위시설과 주요 인사들에게 폭탄을 던지려고 한다" 등의 허황된 이야기를 퍼뜨리기 시작했다.

유언비어에는 조선인 우유, 신문 배달부들이 배달지에 표시한 분필 자국이 습격할 대상을 고른 것이라는 얘기도 있었다. 일본 영화감독 구로사와 아키라의 자서전 '자서전 비슷한 것'에 따르면 조선인들이 표시했다는 수상한 기호는 일본 아이들이 쓴 낙서에 불과했다. 아이들은 "어이가 없었다. 이실직고하자면 그 수상한 기호라는 건 나와 내 친구들이 쓴 낙서였다"고 회고했다.

관동대지진 희생자 추정 사진/사진=독립기념관

소문은 빠르게 퍼져나갔다. 같은해 10월22일자 호치신문에는 "2일 밤부터 3일 오후에 걸쳐 오토바이를 탄 경관과 군인이 '조선인이 쳐들어오니 여자와 어린이는 빨리 안전지대에 피난시켜라'고 외치며 돌아다녔다"고 기록돼 있다.

일본 정부는 자연재해로 발생한 사건을 모두 조선인 탓으로 몰아가면서 결국 계엄령을 선포했다. 계엄령 하에서 군과 경찰이 나서서 각 지방 장관 앞으로 "조선인의 폭탄, 독약, 폭행 행위를 철저히 색출해 계엄령에 따라 처단하라"고 전신을 보냈다.

이 과정에서 '자경단'도 조직됐다. 자경단은 재향군인회, 청년 단원 등으로 구성돼 조선인 학살에 가담한 민간단체다. 이들은 '15엔 55전'을 일본어로 발음하게 하거나, 일본 전통 노래를 부르게 하거나, 일본 자모음 배열을 말해보게 한다거나 등의 방식으로 조선인 색출에 나섰다.

일본 경찰과 자경단 등은 색출한 조선인을 죽창과 칼, 총 등으로 학살하기 시작했고, 당시 독립신문은 6661명의 조선인 희생자가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독립신문은 "슬프다. 칠천의 가련한 동포가 적지에서 피바다를 이뤘다"고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사망한 피해자의 모습을 담은 사진/사진=독립기념관

1983년 오충공 감독의 다큐멘터리 '숨겨진 손톱자국'에서 조선인 학살을 목격한 시마가와 아키라는 "다리 밑에 제방을 봤더니 하천 옆, 둑 경사면에 참살당한 조선인들의 시체가 뒹굴고 있었다"며 "많이 저항한 모양으로 손이 잘려 있었는데 잘린 단면이 보였다"고 했다.

아키라는 "협공을 해서 다 붙잡아 때리고 차고 완전히 때려죽이는 것이다. 그러니 2, 3분 사이에 다들 축 늘어지더라. 둑 위에 돌이 많았는데 돌을 들고 시체에다 던졌다"고 전했다. 또 다른 학살 목격자 타카세 요시오는 "6~7명이 거의 발가벗겨져서 뒤로 묶인 채 줄줄이 끌려왔다"며 "한 사람은 몸체를, 한 사람은 다리를 잡고는 타고 있는 불 속에 던져 넣었다. 나도 어렸을 때라 차마 제대로 볼 수 없었다"고 했다.

학살 생존자 조인승 씨는 "우리 일행 15명이 오니까 멈추라고 하더니 3명을 앞으로 나오게 했다. 소방대원인지 뭔지가 3명을 가운데 넣고 때려 죽였다. 여자든 아이든 상관없었다. 손에 망치, 칼 등을 들고 이 사람이 안 죽여도 저 사람이 죽이고, 옆에 있는 일본인이 죽이지 말라고 해도 모두 하나가 되어 죽이는 것"이라며 "다들 너무 억울하게 죽었다"고 증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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