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경북 의성을 덮친 산불은 천년 고찰 고운사를 순식간에 삼켰다. 수백년 역사를 버틴 가운루와 연수전은 기왓장이 산산조각 나 땅바닥에 뒤엉켰다. 목재는 숯 더미가 된 채 흩어졌다. 깨진 종만 위태롭게 버틴 종각 터는 마치 포탄 세례를 받은 전쟁터 같았다.
화마가 스쳐 간 지 6개월이던 지난달, 잔해는 그대로지만 검게 탄 숲 사이로 새순이 자라나고 있었다. 주지 등운스님은 그 풍경 앞에서 "무상(無常·항상함이 없다)의 진리를 부처님이 몸소 보여주신 것"이라고 담담히 말했다.
고운사의 복구는 이제 막 걸음을 뗐다. 의성군은 9월 말 '고운사 복구 기본계획 용역'에 대한 사전규격을 공개했다. 8월부터는 보존처리업체가 참여해 석조여래좌상이 놓였던 받침의 파편을 조사 중이다. 불상의 받침인 좌대는 1000여개 파편으로 부서진 상태다. 3D 스캔과 보존처리 계획을 거쳐 복원 방향이 결정된다. 화재 때 옮긴 불상은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에 보관하고 있다.
고운사에서 만난 보존처리업체 관계자는 "불상을 받치는 좌대까지 원래 재질로 재현할지 혹은 스캔 자료를 토대로 보강 구조물을 제작할지 논의 중"이라고 설명했다.
사찰 복원은 짧게 잡아도 5년 이상 소요될 전망이다. 설계, 기반 공사, 국가유산청 심의 등 절차가 긴데다가 전각마다 성격이 달라 원형을 고수해야 할 곳과 현대적 쓰임새를 반영할 곳이 갈린다. 국가유산청에 따르면 보물인 고운사 연수전과 가운루는 각각 정밀 실측 보고서와 수리 보고서가 남아 있어 전통 양식 복원이 가능하다. 사찰 내 후원이나 요사채는 현대인에게 필요한 명상 공간으로 새롭게 짓자는 구상도 나온다.
주지 등운스님은 화재 직후부터 '무상'을 강조했다. 그는 "세상 모든 것은 모였다 흩어지기를 반복할 뿐 붙잡으려 하면 괴로움만 남는다"며 "화재는 불교의 진리를 몸으로 보여준 사건"이라고 말했다. 화마가 덮치던 날에도 슬픔보다 담담함이 앞섰다고 한다. "불이 붙을 때 '부처님이 무상을 가르쳐 주시는구나'라는 마음으로 사찰을 떠났다"는 것이다.
복구 방식도 속도보다는 철학을 중시했다. 그는 "급한 것 없다"며 "스님들이 쓸 법당과 화장실, 공양간은 남아 있지 않나"라고 웃으며 말했다. 그러면서 "천천히, 쓰임새에 맞게 고쳐 나가면 된다"며 "옛 건물을 그대로 재현하기보다 오늘의 신도가 편히 머물 수 있는 공간으로 변해야 한다"고 했다. 전통 양식은 존중하되 일부는 현대적 재료와 설계를 활용해도 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산림청과 협의 과정에서도 등운스님은 '자연 복원'을 주장했다. 고운사 터는 바위와 박토가 많아 인공조림을 해도 묘목이 뿌리를 내리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초토화된 사찰 일대 숲에선 싸리나무 같은 자생 식생이 1m 가까이 자라나며 회복을 시작했다.
이같은 움직임 속에서 고운사와 그린피스, 안동환경운동연합, 불교환경연대, 서울환경연합은 8월 '고운사 사찰림 자연복원 프로젝트' 연대체를 출범했다. 이들 환경단체와 학계는 최초 시도인 고운사 숲 자연복원 과정을 장기 모니터링하며 정책적 전환 근거로 삼을 계획이다.
등운스님은 "인위적으로 나무를 심는 건 예산 낭비이자 산림 훼손"이라며 "자연이 스스로 이겨내는 모습을 살펴보고 그 복원력을 느끼며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고 했다.
잔해 정리 작업은 오는 11월 이후에야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지금은 폭격 맞은 듯한 현장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등운스님은 "사람의 작은 실수로 5개 시군이 잿더미가 됐다"며 "현장을 직접 보고 경각심을 가질 수 있다면 그것이 가장 큰 교육"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