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는 금액을 말해주세요."
몇 해 전 중국 측 인사가 서울 영등포구 한 실내 암벽등반장(암장)으로 서채현 선수(22)를 찾아왔다. 고교 1학년 때인 2019년 첫 태극마크를 단 서채현은 그해 열린 6개의 IFSC(국제 스포츠 클라이밍) 월드컵에서 4번을 우승하는 등 모든 대회에서 시상대에 섰다. '거미소녀', '스파이더걸' 등의 별명이 붙었다.
세계적인 스타가 되자 영입 제안이 쏟아졌다. 중국이 특히 적극적으로 나섰다. 억대의 포상금과 연봉을 거절하자 금액을 높여 다시 제안하는 식이었다. 서채현이 마음을 바꾸지 않자 직접 한국으로 찾아 왔다. 첫 제안과는 비교할 수 없는 금액과 함께 베이징대·칭화대 등 입학 기회와 차량·자택을 제공하겠다고 제안했다고 한다. 급기야 "원하는 금액을 제시해달라"고 했지만 서채현은 끝내 거절했다. 대신 국내 클라이밍 저변 확대를 위해 서울시를 보금자리로 선택했다.
지난달 28일 서울 영등포구 한 실내 암벽등반장(암장)에서 서채현(서울시청·노스페이스 애슬리트팀)을 만나 이유를 들었다. 서채현은 '클라이밍 집안'에서 나고 자랐다. 서종국 전 한국 스포츠 클라이밍 국가대표 감독이 부친이다. 어머니 전소영씨도 스포츠 클라이밍 선수 출신이다.
서채현은 "7살 때부터 아버지가 운영하는 암장에서 놀면서 자랐다"며 "지금까지 계속 아버지한테 클라이밍을 배웠다"고 했다. 어머니인 전씨는 "우린 부자가 아니었지만 돈이 없어도 채현이가 좋아하는 클라이밍을 하면서 세 식구가 행복했다"고 했다.
한때 '국대 부녀'로 활약하기도 했다. 아버지가 국가대표 감독을 맡아 항저우 아시안게임과 파리올림픽 등에서 딸을 지도했다. 서채현은 "부모님은 제게 '대회를 잘해야 한다'고 한 적이 단 한번도 없다"고 했다.
세 가족은 성적에 얽매이지 않고 매년 한 달씩 해외에서 자연 등반을 하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운영하는 암장 홀드(암벽에 붙은 손잡이와 발판)도 매년 수천만원을 들여 직접 구매해야 했다. 서채현이 국제대회에서 성과를 내기 전까진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었다. 전씨는 "그래도 채현이는 유독 자존감이 높고 밝았다"고 했다.
그런데도 고액 연봉과 포상금을 제안한 중국 측 구애를 거절한 건 국내 클라이밍 스포츠의 발전을 위해 가족이 내린 결단 때문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서채현이 소속팀 없이 활동하는 동안 부모가 직접 여기저기 제안서를 제출하고 실업팀 창단을 건의했다. 전씨는 "채현이가 시도하지 않으면 한국에서 클라이밍 실업팀 창단이 앞으로 어려울 거라고 봤다"며 "실패해도 좋다는 생각으로 도전했다"고 했다.
1년 6개월 간 노력하자 서울시가 화답했다. 서울시가 2022년 직장인운동경기부(실업팀) 산하에 산악팀을 창단한 것이다. 국내 첫 스포츠 클라이밍 실업팀이었다. 창단 당시엔 서채현 1인팀이었지만 지금은 정지민(노스페이스 애슬리트팀)·이도현(블랙야크)·정용준이 합류했다.
서채현은 요즘 2028년 LA올림픽을 목표로 매일 암장에서 구슬땀을 흘린다. 올림픽 경기 규칙이 바뀌면서 메달 획득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전망이 나온다. 서채현은 "리드(15m 암벽을 6분 안에 높이 올라가는 걸 겨루는 종목)에서 6명 정도의 메달권 선수가 있다고 본다"며 "자기관리에 최선을 다하고 대회 성적에 연연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했다. 소박한 바람도 전했다. 서채현은 "지금 클라이밍보다 재밌는 건 없다"며 "나중엔 예능프로그램 '런닝맨'에 나가보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