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윤석열 전 대통령의 헌법소원을 계기로 '플리바게닝'(유죄협상제) 조항을 처음으로 판단한다. 헌재 판단은 플리바게닝 조항의 정식 도입 여부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플리바게닝은 수사 실무나 재판에서 가끔 쓰이지만 명문화되지 않았는데, 내란 특검법 등 3대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처음으로 법에 명시됐다.
11일 법조계에 따르면 헌재 지정재판부는 내란 특검법 25조에 대해 제기된 헌법소원심판을 전원재판부에 회부하기로 결정했다.
헌재가 전원재판부에 회부하기로 결정하는 건 청구인의 적법성 요건이 충족돼 살펴볼 쟁점이 있다는 뜻이다. 청구 이유가 타당하지 않거나 절차상 문제가 있다고 여겨지면 회부되지 않고 각하된다.
내란 특검법 25조는 특검 수사대상 관련 △죄를 자수하거나 △타인을 고발하거나 △수사·재판절차에서 타인의 범죄를 규명하는 주요 진술이나 증언하는 경우 형벌을 감경 또는 면제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일종의 플리바게닝 조항으로 3대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수사를 원활히 할 목적으로 국내에서 처음으로 법에 명시됐다.
플리바게닝은 미국에서는 정식 도입돼 있지만 한국에선 특검법을 제외하고는 규정이 없다. 이명박 정부 당시 법무부가 한국형 플리바게닝 조항을 포함한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제대로 논의도 되지 못한채 폐기됐다.
당시 위헌성이 해소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많았다. 특히 자백의 임의성과 관련해 피고인 방어권이 문제가 됐다. 당시 국가인권위원회는 "임의성에 의심이 있는 자백을 유죄 증거로 사용할 수 없도록 한 헌법 규정의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공범은 흔히 형사절차에서 책임을 타인에게 전가하는 경향이 있고, 소추면제라는 유혹에 얼마든지 과장하거나 가공된 진술을 할 가능성도 높다"고 밝혔다. 죄 지은 사람이 수사를 도왔다는 이유로 면죄부를 받는 것도 비판받았다.
비슷한 제도는 도입돼 있다. 자본시장법과 공정거래법에는 담합, 시세조정, 부정거래 등에서 리니언시(자진신고자 감면제)를 활용할 수 있는 근거가 있다. 실제 최근 검찰은 밀가루·설탕 담합 사건에서 리니언시 제도를 활용했다.
서정빈 법무법인 소울 형사전문변호사는 "실무적으로 가끔 활용됐으나 논의가 활발하지 않았다"며 "합헌 판결이 나오면 플리바게닝 도입 논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없던 제도를 명문화해 정착시키기까지는 여전히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헌재가 합헌이라고 판단해도 제도 도입까지 예단하기는 섣부르다는 의견도 있다. 한상희 건국대 로스쿨 교수는 "강행규정만 없었을 뿐, 수사협조한 사람을 다르게 대우하는건 너무 당연하다"며 "제도 정착은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한 교수는 "이명박 정부 당시 나온 법안은 구속력 있는 미국식 플리바게닝이고, 임의적 성격의 특검법 조항과는 조금 다르다"고 했다.
헌재가 플리바게닝 조항을 위헌이라고 판단하면 제도 도입이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특검 수사 정당성이 흔들릴 우려도 있다. 특검은 수사 과정에서 플리바게닝을 시도한 정황이 나온 탓이다.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은 내란 특검팀(특별검사 조은석)이 윤 전 대통령에 대해 증언하는 조건으로 형량 감면을 제시했고, 협상하진 않았다고 했다. 이종호 전 블랙펄인베스트 대표는 변호사법 위반 혐의 결심공판에서 김건희 특검팀(특별검사 민중기)이 징역 4년을 구형하자 "수사에 충분히 협조했다"며 형량이 높다는 취지로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