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의뢰인 비밀유지권'(Attorney-Client Privilege, ACP)을 인정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국회도 ACP를 도입하는 변호사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만큼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침해해선 안된다는 점을 명확히 한 결정으로 풀이된다.
24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은 최근 장하원 전 디스커버리자산운용 대표의 압수수색 과정에서 검찰이 법률 자문자료를 압수한 것은 위법하다는 취지의 결정을 내렸다.
장 전 대표 변호인이 법률 자문자료 압수가 위법하다며 준항고를 제기했고 법원이 이를 일부 받아들였다. 이에 검찰이 재항고를 했으나 최근 대법원이 이를 기각한 것이다. 준항고는 수사기관의 압수수색 등 처분에 불복해 법원에 이의를 제기하는 제도다.
앞서 장 전 대표는 1000억원대 부실 펀드를 판매하고 환매를 중단한 혐의로 수사를 받아 재판에 넘겨졌다. 그는 지난달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장 전 대표 측은 수사 과정에서 법률 자문을 목적으로 대화한 내용도 무차별적으로 압수됐다며 준항고를 신청했다. 서울남부지검은 2023년 7월6일 장 전 대표의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 등을 수사하며 장 전 대표와 임직원의 휴대전화 2대, 서버 외장하드, 노트북에 저장된 전자정보 등을 압수했다. 압수물 중엔 변호인과 주고받은 문서, 메시지 등이 포함됐다.
서울남부지법은 장 전 대표 측이 제기한 준항고 신청을 일부 받아들였다. 법원은 "압수물품 중 변호사가 수신인 또는 발신인인 메시지나 전자메일, 변호사가 작성한 문서는 헌법상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 것으로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펀드 환매 중단 사건 관련 항소심 재판이 진행되는 중에 압수수색이 이뤄져 위법하고 검찰이 포괄적 키워드를 활용해 압수물을 압수하면서 이번 사건과 직접적으로 관련 없는 증거까지 압수됐다"는 장 전 대표 측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도 이 같은 판단을 유지했다. 대법원은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충분히 행사하려면 피의자·피고인과 변호인 사이의 접견 등을 통한 조언과 상담이 보장될 뿐만 아니라 그 내용에 대해서도 비밀이 완전히 보장돼야 한다"고 전제했다.
그러면서 "이런 법리는 피의자·피고인과 변호인 사이에 의사 교환 등을 하는 과정에서 생성된 형사사건에 관한 법률 자문 또는 법률상담 등이 기재된 서류나 자료 또는 물건 등에 대한 압수에서도 마찬가지"라며 "법률 자문 서류 등에 대한 압수가 제한 없이 허용된다면 피의자·피고인의 비밀이 완전히 보장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대법원은 또 "예외적으로 압수가 허용되는 경우가 아님에도 수사기관이 위와 같은 법률 자문 서류 등을 압수하는 행위는 헌법상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 등을 침해해 위법한 압수가 된다"고 강조했다. 대법원은 피의자 등이 허락한 경우나 변호인이 공범인 경우 등 공익적 필요가 있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법률 자문 서류에 대한 압수가 허용된다고 보는데, 이번 사안은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번 결정을 이끌어 낸 정유철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는 "대법원 판결은 ACP가 수사기관에 의해 용이하게 제한될 수 있는 권리가 아님을 명확하게 하는 등 내년 이후 시행 예정인 변호사법에 대한 해석기준으로 기능할 것으로 기대된다"며 "이번 판결은 ACP의 법리적 근거를 헌법상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에서 직접 도출함으로써, 현재도 헌법에 기초해 ACP를 주장할 수 있음을 확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ACP를 도입하는 변호사법 개정안은 지난달 2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시행을 앞두고 있다. 개정안은 변호사와 의뢰인이 주고받은 법률 상담 내용이나 변호사가 작성한 의견서 등을 비밀유지권으로 보호하도록 한다. 지금까지는 변호사에게 직무상 비밀을 누설하지 않을 의무만 있었고, 비밀유지 권리에 관한 규정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