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와의 약속 지켰다…췌장암 70대 노인 울린 한라산 직원의 배려

윤혜주 기자
2026.03.11 17:03
사진=뉴시스 /사진=우장호

췌장암 4기 투병이라는 힘겨운 상황 속에서도 손자와 백록담 등반을 꿈꿔온 70대가 체력적 한계로 위기를 맞았으나 한라산국립공원 직원들 헌신적인 동행 덕분에 마침내 정상에 올랐다는 사연이 전해졌다.

11일 한라산국립공원에 따르면 A씨는 지난 1일 관음사 코스로 한라산에 등반했다. A씨는 "아버지는 평생 산을 사랑했던 '산꾼'이었지만 현재 췌장암 4기로 수술과 항암, 재발, 다시 항암, 항암 이후 추가 전이를 겪었다"며 "이번 등산은 기력이 조금이라도 있을 때 손자와 함께 백록담에 오르고 싶다는 아버지의 간절한 소망을 담아 기획한 우리 가족에게는 목숨만큼 소중한 여정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등산은 순탄치 않았다. 당일 오전 7시부터 사투를 벌이며 산행을 시작했지만 A씨 아버지는 삼각봉 대피소에서 체력이 고갈돼 버렸다.

A씨는 "저는 먼저 앞서간 아들을 챙기기 위해 정상으로 향했다"며 "오후 1시 20분쯤 기상 악화와 통제 시간 임박으로 하산을 시작하면서 '아버지가 여기까지 오셨으면 이제는 포기하시라고 말씀드려야겠다'고 생각하며 내려오고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오후 1시25분쯤 눈보라를 뚫고 올라오는 아버지 모습이 보였다고 한다. A씨는 "비틀거리며 올라오는 아버지 곁에는 한라산국립공원 직원들이 있었다"며 "단순히 길을 안내하는 게 아니었다. 흔들리면 잡아주고, 가파른 계단에서는 뒤로 넘어지지 않게 앞에서 지지해주고, 추위에 떨면 배낭에서 점퍼까지 꺼내서 입혀주는 등 마치 가족처럼 아버지를 챙겨줬다"고 했다.

특히 정상 통제 시간까지 단 10분을 남겨두고 발길을 돌려야 했던 A씨 아버지는 직원들 유연한 대처와 따뜻한 격려 덕분에 극적으로 백록담 정상에 발을 내디딜 수 있었다.

현장 직원은 아버지가 손자와 약속을 지키기 위해 투병 중에도 산을 올랐다는 절박한 사연을 경청한 뒤 "부지런히 가면 늦지 않으니 어서 가시죠"라고 용기를 북돋워줬다. 이러한 배려와 응원에 힘입어 A씨 아버지는 통제 마감 시한인 오후 1시30분 정각에 백록담 정상석에 도착할 수 있었고 평생의 소원이었던 손자와 기념사진을 찍으며 잊지 못할 추억을 완성했다.

A씨는 감사한 마음에 직원들에게 이름을 물어봤지만 이들은 끝내 알려주지 않았다고 한다. A씨는 "그분들이 보여준 따뜻한 마음과 배려 덕분에 저희 아버지는 암을 이겨낼 수 있다는 큰 희망을 얻으셨다"며 "이 글을 통해 다시 한번 머리 숙여 깊은 감사를 전한다"고 했다.

한라산국립공원관리소 관계자는 "해당 직원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고 한라산국립공원 직원이라면 누구든 그렇게 했을 것'이라고 했다"며 "이름이 알려지길 원치 않는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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