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5월16일. 고(故) 허원근 일병이 국방부로부터 순직 인정을 받았다. 1984년 4월2일 3발의 총상을 입고 숨진 지 33년 만이다. 사건 직후 군 당국은 허 일병 사망은 자살이라고 발표했지만 유족이 의문을 제기하면서 그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 공방은 30여년간 이어졌다.
사건은 198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4월2일 오후 1시20분쯤 허 일병(당시 22세)은 강원 화천군 육군 7사단에서 복무하던 중 최전방 GOP(일반전초) 폐유류고에서 가슴에 2발, 머리에 1발의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됐다. 첫 휴가를 하루 앞두고 벌어진 일이었다.
군 수사기관은 사건 직후 허 일병이 오른쪽 가슴, 왼쪽 가슴을 총으로 쏴 자살을 시도했으며 마지막에 오른쪽 눈썹에 밀착해 사격해 두개골 파열로 인해 사망한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허 일병 유족은 술에 취한 부대 상관이 살해했다며 타살 의혹을 제기했다.
유족 진정으로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문사위)는 2001년 조사에 착수해 이듬해 허 일병이 만취한 상관의 오발로 인한 타살 사건이며 군 당국이 사건을 은폐했다고 봤다.
국방부는 이에 불복해 특별조사단을 꾸려 사건 경위를 다시 들여다봤다. 2001년 11월 국방부 특별조사단은 자살이 맞다는 조사 결과를 내놨다.
이후 2기 의문사위가 사건을 다시 조사했고 2004년 6월 타살이 확실하다고 발표했다. 허 일병 유족은 의문사위 조사 결과를 근거로 2007년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법정에서도 타살과 자살을 두고 판결이 엇갈렸다.
2010년 1심을 맡았던 서울중앙지법 재판부는 타살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당시 재판부는 "수집된 증거와 법의학 상식에 비춰볼 때 허 일병은 자살이 아니라 소속 부대 군인에 의해 타살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하며 국가가 허 일병의 부모에게 4억원씩, 형제들에게 4000만원씩 총 9억200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했다.
그러나 항소심에서는 결론이 뒤집혔다. 서울고법 2심 재판부는 허 일병 시신이 옮겨지지 않은 점, 세 군데 총상 모두 생존했을 당시 입은 총상이라는 의학적 소견 등을 근거로 들어 허 일병이 자살한 것이라고 봤다.
다만 항소심 재판부는 군 수사기관의 부실 수사로 의문사 논란을 일으킨 책임에 대해 "국가는 허 일병 부모에게 3억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허 일병이 다른 공무원의 위법한 직무집행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지만 그가 자살했다고 단정, 타살 가능성을 전적으로 배제할 수도 없다"고 판시하며 자살인지 타살인지에 관해서는 판단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당시) 헌병대가 군 수사 기관으로서 필요한 조처를 하지 않아 허 일병 사망이 타살인지 자살인지 명확한 결론을 내릴 수 없게 됐다"며 "이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조치는 정당하다"고 했다.
유족은 허 일병 사망 구분을 순직으로 인정해 달라는 민원을 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허 일병의 사망이 군 복무와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으니 순직으로 인정받게 해달라고 국방부에 권고했다.
국방부는 2017년 5월 16일 허 일병의 죽음을 순직으로 결정했다.
국방부는 허 일병의 순직 인정에 관해 "허 일병이 GOP(일반전초) 경계부대의 중대장 전령으로 복무 중 영내에서 사망했음을 인정한 것"이라며 권익위 권고를 수용했음을 시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