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게 노무사 계좌로 자동이체된 대지급금?… 법원 "허위청구 가담 단정 못해"

오석진 기자
2026.05.17 09:00
서울행정법원. /사진=뉴시스

체불임금 대지급금이 근로자 계좌에 입금된 직후 노무사 계좌로 자동이체됐더라도, 근로자가 허위 청구에 가담했다는 점이 입증되지 않았다면 부정수급자로 보고 환수할 수 없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 행정8부(부장판사 양순주)는 A씨 등 근로자 3명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대지급금 환수 및 부당이득 추가징수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17일 밝혔다. 재판부는 공단이 이들에게 내린 1400만원 상당의 환수·추가징수 처분을 모두 취소했다.

A씨 등은 2019년 11~12월 서울 마포구의 한 건설현장에서 일했다. 이들은 사업주 B씨·현장 소개자 C씨 부탁으로 내용이 불분명한 서류 작성에 협조했고, 이후 2020년 5월18일 '간이대지급금' 명목으로 각 700만원을 받은 뒤 B씨 지시에 따라 전부 또는 일부를 다시 송금했다.

대지급금이란 체불임금 등을 기업 대신 국가가 일정 한도에서 근로자에게 먼저 지급해주는 돈이다.

이후 A씨 등을 대리하는 노무사는 같은달 27일 A씨 등 명의로 간이대지급금 지급청구서를 작성해 공단에 냈다. 다음 날인 이들 계좌에는 각 700만원의 대지급금이 입금됐지만, 당일 전액이 CMS 자동이체 방식으로 노무사 계좌로 빠져나갔다.

공단은 A씨 등이 실제로 일하지 않았는데도 허위 청구를 통해 대지급금을 받은 것으로 보고 2025년 2~3월 두 차례에 걸쳐 환수 및 추가징수 처분을 내렸다. 또 근로기간이 실제와 맞지 않고, A씨 등이 고의로 이 과정에 가담했다고 봤다.

A씨 등은 이에 불복해 소송을 냈다. 이들은 "밀린 임금을 받기 위한 임시방편으로 내용을 알지 못하는 서류에 서명했고, 당시 입·출금 사실 자체를 인지하지 못했다"며 "아무런 사정을 알지 못한 채 대지급금이 전부 입금돼 아무런 실질적 이득을 얻지도 못했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근로자들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우선 A씨 등이 현장에서 작업을 실제로 수행했다고 봤다. 노동청 조사 결과와 임금 지급 내역, C씨의 관련 형사사건 진술 등을 종합하면 당시 임금 체불이 있었을 개연성도 상당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대지급금 지급청구서에 기재된 근로기간을 고려하면 일부 허위 의심이 있을 수는 있다고 봤다. 다만 해당 서류에 찍힌 도장은 임의 제작이 가능한 이른바 '막도장'이었고, 서명 필체 역시 원고들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원고들이 서류 작성에 관여하거나 이를 위임해 허위 청구에 가담했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그러한 사정을 인식하고 있었는지도 의문"이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대지급금이 근로자 계좌에 들어온 당일 근로자들도 모르게 곧바로 노무사 계좌로 자동이체된 점에 주목했다. 통상 대지급금 부정수급 수법의 하나로 보이지만, A씨 등이 자동이체 신청에 동의했거나 관련 서류 작성에 협조했는지는 규명되지 않았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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