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전원합의체가 HD현대중공업 하청노조 사건에서 올해 시행된 일명 '노란봉투법'이 아닌 옛 노동조합법상 기존 법리를 적용했다. 원청의 사용자 범위를 넓힌 노란봉투법의 첫 실질적 판단은 개정법 시행 이후 발생한 사건으로 미뤄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1일 전국금속노동조합(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사내하청지회가 HD현대중공업을 상대로 낸 단체교섭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단한 원심을 그대로 확정했다. 원청인 HD현대중공업과 직접 교섭하게 해 달라는 하청노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대법원은 먼저 "도급인이 수급인 소속 근로자들로 구성된 노동조합에 대한 관계에서 위 근로자들과 직접적인 근로계약 관계를 맺지 않았더라도 근로조건에 관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음을 이유로 단체교섭의 상대방이 되는 '사용자'에 해당할 수 있는지에 관해 학계 등을 중심으로 여러 논의가 있었다"고 전제했다.
이어 "개정 노동조합법 제2조 제2호 후문에 '이 경우 근로계약 체결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도 그 범위에 있어서는 사용자로 본다'는 내용이 추가됨으로써 위와 같은 학계 등 논의를 반영해 사용자의 범위를 넓히는 입법이 이뤄졌다"고 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번 사건에는 개정 노동조합법이 아니라 구 노동조합법이 적용된다고 봤다. 대법원은 "향후 개정 노동조합법이 적용되는 구체적인 사건에서 노동3권의 실효적 보장이라는 입법목적에 맞게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의 개념을 해석해야 함은 별론"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구 노동조합법이 적용되는 사안에서는 '단체교섭의무를 부담하는 사용자'가 '근로자와의 사이에 그를 지휘·감독하면서 그로부터 근로를 제공받고 그 대가로서 임금을 지급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명시적이거나 묵시적인 근로계약 관계를 맺고 있는 자'라는 종전 법리가 여전히 타당함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대법관들의 의견은 8대 4로 갈렸다. 다수의견은 구 노동조합법이 적용되는 이번 사건에서는 원청과 하청 노동자 사이에 명시적·묵시적 근로계약 관계가 인정돼야 단체교섭 의무를 부담하는 사용자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반면 이흥구·오경미·신숙희·마용주 대법관은 원청이 하청 노동자의 근로조건을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다면 직접 근로계약을 맺지 않았더라도 단체교섭 의무를 부담하는 사용자로 봐야 한다는 반대의견을 냈다.
원청의 단체교섭 의무를 인정할 수 없지만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사건에서는 다른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대법원이 이번 사건은 예전 법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고 선을 그은 것"이라며 "새 법이 적용되는 사건은 그때 가서 노란봉투법의 취지에 맞게 따져보겠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