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현대중공업 하청 노동조합이 원청인 HD현대중공업과 직접 교섭하게 해달라며 낸 소송에서 최종 패소했다. 일명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첫 최종심 선고로 관심을 모았지만 대법원은 해당 법을 적용할 수 없는 사안이라고 판단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21일 전국금속노동조합(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사내하청지회가 HD현대중공업을 상대로 낸 단체교섭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단한 원심을 그대로 확정했다.
대법원은 노란봉투법이 시행되기 전 일어난 일에는 옛 노동조합법을 적용하는 것이 맞는다고 판단한 뒤 원청과 하청 노동자 사이 근로계약 관계가 인정되지 않으면 원청이 하청노조와 단체교섭할 의무가 없다는 기존 판례를 그대로 유지했다.
대법관들 의견은 8대 4로 갈렸다. 이흥구·오경미·신숙희·마용주 등 4명의 대법관은 다수 의견과 달리 원청이 하청 노동자의 근로조건을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다면 직접 근로계약을 맺지 않았더라도 단체교섭 의무를 부담하는 사용자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다만 대법원이 향후 사용자의 범위를 확대한 개정 노동조합법, 노란봉투법의 입법 목적을 고려한 판단을 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이 법조계의 중론이다. 지난 3월부터 시행된 이 법은 근로계약을 직접 맺지 않았더라도 근로자의 근로조건을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사람도 사용자로 보게 한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이날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이번 사건에 한해 예전 법리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고 선을 그은 것"이라면서도 "새로운 법이 적용되는 사건은 추후 노란봉투법 취지에 맞게 충분히 따져보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법원 관계자 역시 "향후 개정 노동조합법이 적용되는 구체적 사건에서 입법 목적에 맞게 사용자의 개념을 해석해야 함은 별론으로 하고, 옛 노동조합법이 적용되는 사안에서는 사용자를 명시·묵시적 근로계약을 맺은 자로 보는 종전 법리가 여전히 타당함을 확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HD현대중공업 관계자는 "법원의 판결을 존중하며, 향후 성실하게 교섭에 임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오세일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사내하청지회장은 "대법원은 수없이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너희 실력으로 싸워보라고 선언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조선업계 원·하청 노사 문제의 '본게임'은 이제부터 시작이란 평가가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미 노란봉투법이 시행되면서 원·하청 간 노사 갈등은 새로운 국면을 맞은 상황"이라며 "조선업의 경우 대표적인 노동 집약 산업이고 다단계 하도급 구조가 공고하기 때문에 노사 갈등의 범위가 하청 업체까지 번질 경우 경영상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사건은 2016년부터 시작됐다. 노조는 같은해 4월부터 5월까지 HD현대중공업에 총 5차례 단체교섭을 요구했다. 그러나 HD현대중공업은 자신들이 사내하청업체 소속 근로자들의 근로계약상 사용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교섭을 거부했고 노조는 2017년 1월 소송을 냈다.
1·2심은 근로계약이 맺어지지 않았다는 점을 비롯, 하청업체들이 자체 설비와 인력을 갖추고 있었고 소속 노동자들의 근태 관리와 징계권 등을 독자적으로 행사한 점, 하청업체 현장대리인이 작업장에 상주하면서 소속 노동자들을 직접 지휘·감독했다는 점 등을 근거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