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6월 8일. 일본 오사카의 한 초등학교가 순식간에 피로 물들었다. 흉기를 든 남성이 교실을 돌아다니며 학생들을 공격해 어린이 8명이 숨지고 15명이 다쳤다. 참극 이후 일본 학교들은 교문을 닫고 외부인 출입 통제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당일 오전 10시쯤 금발 머리의 한 남성이 학교 앞에 차를 세운 뒤 녹색 비닐봉지를 들고 교내로 들어왔다. 정문은 닫혀 있었지만 차량 출입문은 열려 있었고 남성은 이를 통해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당시 학교는 '지역사회에 열린 학교'를 지향하고 있었다. 상주 경비원이나 출입 통제 인력이 없어 외부인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상태였다.
남성은 오전 10시10분쯤 2학년 남반 교실에 들어갔다. 당시 담임교사는 쉬는 시간을 맞아 학생들과 화단을 돌보러 나가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교사가 없는 사이 남성은 비닐봉지에 숨겨온 흉기를 꺼내 학생 5명을 공격했다. 해당 흉기는 날 길이 15㎝, 총길이 30㎝에 달했다. 범인은 범행 5분여 만에 2학년 서반으로 이동해 또다시 학생 3명을 공격했다.
2학년 서반 담임교사는 범인이 들어오는 방향을 향해 앉아 있었지만 침입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그는 교내 방송용 인터폰을 켜 도움을 요청했고 아이들의 비명과 울음소리가 교내에 그대로 퍼지면서 학교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교사는 학생들을 대피시키지 못한 채 교실을 빠져나와 교무실로 달려갔고 사건 발생 약 8분 만에 경찰에 신고했다. 그런데 경찰이 잔뜩 흥분한 교사에게 자세한 정보를 요구하면서 구급차 출동 요청 등 초기 대응이 지연됐다.
그 사이 범인은 교실과 복도를 돌아다니며 도망치는 학생들을 뒤쫓아 공격했다.
이때 범인을 막아선 건 또 다른 교사와 교감이었다. 이들은 범인에게 달려들어 몸싸움을 벌였고 얼굴을 찔리는 부상을 입었지만 끝내 그를 제압했다. 약 15분간 이어진 참극이 막을 내린 순간이었다.
출동한 경찰에 현행범으로 체포된 범인은 타쿠마 마모루(당시 38세)로 밝혀졌다. 그는 체포 직후 "아, 힘들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사건으로 1학년 남학생 1명과 2학년 여학생 7명 등 총 8명이 숨졌고, 학생 13명과 교사 2명이 다쳤다. 그러나 학교 측은 피해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고 초동 대응에도 실패해 피해를 키웠다는 비판을 받았다.
숨진 학생 8명은 모두 현장에서 즉사한 것이 아니라 과다출혈로 숨진 것으로 조사됐다. 이 가운데에는 중상을 입은 채 약 20분 동안 적절한 조치를 받지 못하고 숨진 학생도 있었다.
학생들을 신속히 대피시키고 병원으로 이송했다면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는 지적이 나왔다. 부상 학생들이 이송된 병원 정보를 학부모들에게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점도 논란이 됐다.
실제 한 학부모는 사건 소식을 듣고 학교를 찾았지만 다친 자녀를 만나지 못했고, 어느 병원으로 이송됐는지도 안내받지 못했다. 결국 여러 병원을 직접 찾아다닌 끝에 자녀가 숨진 뒤에야 만날 수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사건 이후 일본 학교들은 등·하교 시간을 제외하고 교문을 폐쇄하기 시작했다. 경비원을 상주시켰고, 외부인은 허가받거나 방문증을 발급받아야만 교내에 들어갈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했다.
타쿠마는 사건 이전에도 경찰에 15차례 체포된 전력이 있었다. 미성년자 시절부터 범죄를 저질러온 그는 1998년 전처를 폭행했고 1999년에는 근무하던 초등학교 교사 4명에게 정신안정제가 든 음료를 건네 체포되기도 했다.
약 두 달간 수사를 거친 끝에 타쿠마는 살인, 살인미수, 건조물침입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 됐다. 그러나 재판 내내 반성 없는 태도와 막말을 이어가며 공분을 샀다.
2001년 12월 첫 재판에서는 휘파람을 불며 법정에 들어와 "이런 결과가 뻔한 재미없는 재판에 한가한 놈들이 잔뜩 와서는. 멍청하긴"이라고 말한 데 이어 2003년 8월 사형 선고를 앞두고는 "어차피 사형될 건데 마지막으로 말하게 해달라"고 고함치기도 했다.
강제 퇴정당하면서도 유족들을 향해 "내가 죽인 아이들은 내 자살을 위한 디딤돌이었다", "저승에서도 너희 아이들을 쫓아가 때려눕히겠다"는 폭언을 퍼부었다. 판사에게는 "사형시켜줘서 고맙다. 드디어 죽을 수 있게 됐다"고 했다.
결국 타쿠마는 사형을 선고받았다. 변호인이 항소를 추진하자 그는 "쓸데없는 짓 하지 마라. 난 한시라도 빨리 죽고 싶다"며 거부했고, 항소포기서를 제출했다. 이후 판결 확정 약 1년 만인 2004년 9월 사형이 집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