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전인 2004년 6월22일, 이슬람 무장단체 '알타우히드 왈 지하드'(유일신과 성전)에 납치됐던 한국인 김선일씨가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한국군이 이라크에서 철수하지 않으면 김씨를 살해하겠다'고 협박하는 영상이 외신을 통해 공개된 지 하루 만이다. 한국 정부가 파병 철회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히자 무장단체는 곧바로 김씨를 참수하고 이를 영상으로 찍어 공개했다. 김씨 유족은 "재외 국민을 보호할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며 국가를 상대로 거액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지만 패소했다.
이라크는 2003년부터 미국과 영국 등 연합군과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무슬림 세력 제압에 어려움을 겪던 미군은 동맹국에 참전을 요청했고, 한국 정부는 의료지원단 제마와 건설지원단 서희부대를 파병하며 호응했다.
정부는 이듬해인 2024년 2월엔 특전사 여단을 모태로 한 8000명 규모 전투부대 자이툰 사단을 창설했다. 그러나 추가 파병을 앞두고 있던 그해 5월31일, '유일신과 성전'이 김선일씨(당시 33세)를 납치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김씨는 이라크에서 미군에 각종 물자를 제공하는 한국 군납업체 가나무역 직원이었다. 납치 당시에도 그는 현지 직원 1명과 함께 바그다드에서 약 400㎞ 떨어진 미군 기지에 물건을 배달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이슬람국가(IS)의 전신인 유일신과 성전은 김씨를 데리고 한국군 철군·파병 철회를 촉구하는 영상을 찍었다. 영상에서 김씨는 "제발 이곳을 떠나달라. 저는 죽고 싶지 않다. 여러분 목숨도 소중하지만 제 목숨도 소중하다"고 울부짖었다.
무릎 꿇은 김씨 뒤에 선 유일신과 성전 조직원들은 "우리는 한국군이 이 땅에서 철군하길 원한다. 더 이상 이 땅에 군대를 보내지 마라. 24시간 이내 모두 철군하지 않으면 이 한국인의 머리를 잘라 보낼 것"이라고 경고했다.
해당 영상은 6월21일 아랍권 매체 알자지라를 통해 공개됐다. 이 보도로 김씨 피랍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정부는 유일신과 성전을 상대로 교섭에 나설 현지대책반을 꾸려 요르단에 급파했다. 그러나 정부는 "파병은 이라크 재건과 지원을 위한 것"이라며 조직의 파병 철회 요구에는 선을 그었다.
앞서 공표한 24시간이 지나자 유일신과 성전은 2차 성명을 발표함과 동시에 김씨 참수 장면이 담긴 영상을 공개했다. 김씨 시신은 6월22일 바그다드에서 35㎞ 떨어진 지역에서 발견됐다. 시신 주변엔 부비트랩도 설치돼 있었다. 시신을 수습할 관계자를 대상으로 2차 테러를 기도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 대책반은 김씨가 사망한 뒤에야 요르단에 도착했다. 여기에 더해 정부가 김씨 피랍 사실을 3주 동안 몰랐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한국의 부실한 해외 정보력이 도마 위에 올랐다.
앞서 유일신과 성전은 납치 사흘째인 6월2일 김씨를 심문하는 영상을 AP통신에 전달했다. AP통신은 곧바로 우리 정부에 김씨 피랍 여부를 문의했지만 외교부는 "한국인이 피랍됐다는 보고는 받지 못했다"며 흘려 넘겼다. 외교부는 당시 주이라크 대사관에도 한국인 피랍 여부를 확인하지 않았다.
가나무역 사장은 김씨와 연락이 닿지 않자 그가 교통사고를 당했을 거란 생각에 경찰서와 병원부터 수소문했다. 6월12일 김씨 피랍 사실을 알게 된 뒤에도 따로 현지 변호사를 선임해 석방 협상에 나서는 등 자체적으로 구출할 계획을 세웠을 뿐 정부에는 알리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한국에선 추가 파병을 반대하는 시위가 잇따랐지만 정부는 그해 8월 자이툰 부대를 이라크에 보냈다.
김씨 유족은 "정부가 재외 국민 보호 의무를 소홀히 했다"며 국가를 상대로 18억원 규모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지만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패소했다.
이 사건 3년 뒤인 2007년 외교부에 의해 여행금지국가로 지정된 이라크는 19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입국이 금지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