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면 바로 공부해야죠" 함성 대신 곁눈질…고시촌의 월드컵 응원전

김서현 기자
2026.06.25 14:24

노량진 고시생들, 핸드폰 손에 쥔 채 '각자도생 응원'
"수업 겹쳐", "축구 볼 여유 없어" 경기 관람 포기하기도

경찰 준비생 김모씨(왼쪽)와 친구가 25일 북중미 월드컵 A조 경기를 보기 위해 응원복을 착용한 모습. 이들은 함께 친구의 집에 모여 오전 경기를 관람하기로 했다./사진=김서현 기자.

"양심의 가책은 느끼지만, 끝나고 바로 공부하면 되죠!"

대한민국 대표팀의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3차전이 펼쳐진 25일 오전 서울 동작구 노량진 고시촌. 거리에는 응원 함성 대신 조용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7·8월 시험을 앞둔 고시생들은 들뜬 마음을 감추고 저마다의 방식으로 조용히 경기를 지켜봤다.

경찰공무원 시험을 준비한 지 8개월 된 김모씨(24)는 친구집에서 경기를 함께 보기 위해 오전 9시 잠시 학원을 빠져나왔다. 붉은 응원복을 입고 아이스 텀블러까지 챙겼지만, 가방에는 시험 교재도 함께 넣었다.

김씨는 "경기가 끝나면 바로 공부하러 돌아가기 위해 책도 챙겨왔다"며 "마음이 무겁긴 하지만 축구를 너무 좋아해서 오늘 하루만큼은 꼭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씨와 달리 대부분의 고시생은 '남몰래 시청'을 선택했다. 관리형 학원에서는 휴대전화를 맡겨야 하다 보니 경기 시간이 되면 태블릿PC를 꺼내 실시간 중계를 보는 수험생이 적지 않다고 김씨는 설명했다.

실제 이날 학원가에서는 가방을 멘 채 휴대전화로 경기 상황을 확인하거나 중계를 보는 수험생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경찰시험을 준비하는 정모씨(29)는 "독서실 책상에 휴대전화를 올려놓고 공부와 시청을 번갈아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경기를 보는 학생들도 있었다.

한 패스트푸드점에서 헤드폰을 쓰고 경기를 보던 2년차 고시생 양모씨(27)는 "많은 시간을 내긴 어려워 이른 밥을 먹으면서 잠깐 보고 있다"며 "지지만 않았으면 좋겠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월드컵 포기한 수험생들도…고시촌 식당가는 '한산'

정모씨가 학원 독서실을 눈앞에 두고 핸드폰으로 축구 경기를 시청하고 있는 모습./사진=김서현 기자.

반대로 월드컵을 포기한 수험생들도 적지 않았다. 7급 공무원·경찰 준비가 주를 이루는 노량진 일대에서 가장 임박한 시험은 다음달 18일 예정된 7급 공무원 1차 시험이다. 8월엔 경찰공무원 필기시험이 있다.

노량진 한 학원 관계자는 "학업 분위기 조성에 영향을 줄 수 있어 단체 관람은 추진하지 않는다"며 "자율적으로 경기를 보는 학생들은 있다"고 말했다.

1년째 경찰시험을 준비 중인 한모씨(27)는 "보고 싶은 마음은 크지만, 오전은 실전처럼 공부하는 시간"이라며 "이번 월드컵은 경기 시간이 모두 오전이라 결과만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7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김모씨(28)도 "수업이 오전 10시에 시작해 볼 수가 없다"며 "주변 학생들도 응원보다는 공부를 택하는 분위기가 많다"고 말했다.

상권 분위기도 차분했다. 식당들은 대형 모니터로 경기를 틀어놨지만 이른 경기 시간과 시험 기간이 겹치면서 내부는 한산했다. 한 중국집 사장은 "월드컵이라고 해도 고시촌 매출이 크게 늘지는 않는다"며 "고시생들도 잘 찾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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