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2월 중순 설이나 9월말 추석 명절 이후 돈을 구하지 못하면 고민하다가 찾아오는 사람이 많은데 올해는 지난 4월부터 개인회생·파산 상담 신청이 엄청 늘었습니다. 안 되는 케이스는 걸러내는데도 일이 많아요. 5명 중 1명은 20·30대입니다. 최근에는 2000년생의 회생 신청도 받았어요."(회생·파산 전문 법률사무소 직원 A씨)
평일 오후 서울회생법원 접수 창구 앞에는 서류 봉투를 든 민원인들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개인회생 신청 절차를 묻는 상담이 이어졌다. 다른 쪽에서는 법인파산 접수 서류를 챙기는 대리인들이 오갔다. 갓난 아이를 데리고 온 젊은 엄마는 의자에 앉아 허리를 구부리고 신청서를 쓰고 있었다. 접수 창구 앞에 선 민원인들의 사정은 제각각이었지만 공통점이 있었다. 더 이상 혼자 버틸 수 없어 법원으로 왔다는 것이다.
서울회생법원에서 2년째 상담 업무를 맡고 있는 직원 B씨는 "하루 평균 7~8명 정도 민원인이 상담하러 온다. 오늘은 5명 정도 왔다"며 "대부분 생계가 어려운 분들"이라고 말했다. 이어 "최근에는 젊은층이 유독 많아졌다"며 "코인이나 주식 투자를 무리하게 하다가 돈을 잃거나 전세사기 등으로 큰돈을 잃은 뒤 찾아오는 이들이 많다"고 했다.
상담 창구를 찾은 이들 중에는 채무자뿐 아니라 채권자도 있다. B씨는 "빌려준 돈을 받지 못한 채권자가 회생·파산 절차에서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묻기 위해 법원을 찾은 경우"라고 설명했다.
회생·파산 상담이 늘어나는 법원 풍경은 반도체 대형주를 중심으로 연일 폭등하는 주식시장과 대조됐다. 반도체 슈퍼 사이클 호황 등 일부 기업들은 억대 성과급 잔치를 벌이고 있지만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은 파산의 길을 걷고 있었다. 무리하게 투자하다가 돈을 잃거나 사기를 당한 젊은 사람들도 회생법원을 찾았다. 지난해 법인 파산 신청은 2282건으로 관련 2007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개인 회생 신청도 14만9146건으로 2024년 12만 9499건 대비 1만9647건 급증하며 지난 10년 사이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회생과 파산은 감당하기 어려운 빚을 법원 절차 안에서 조정하거나 정리하는 제도다. 회생은 일정한 소득이나 영업 계속 가능성을 전제로 채무를 조정해 나눠 갚는 방식이다. 일단 채무를 멈춰 세우고 채무자가 채권자들의 개별 추심에서 벗어나 법원 절차 안에서 다시 변제계획을 짤 시간을 얻을 수 있다. 법원이 중지명령이나 금지명령·보전처분 등을 내리면 채권자의 독촉·강제집행·압류·변제 요구 등이 제한될 수 있다.
파산은 더 이상 채무를 갚을 가능성이 없을 때 재산을 정리해 채권자들에게 나눠주는 절차다. 개인파산의 경우 법원이 면책을 허가하면 일정 채무를 제외한 나머지 빚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다. 회생이 살려보는 절차라면 파산은 정리하는 절차에 가깝다.
법인파산 신청이 10년 사이 3배 이상 증가하면서 '사상 최대치'를 갈아치우고 있다. 고금리와 내수 부진이 길어지면서 자금 조달 여력이 약한 중소기업, 벤처·스타트업이 먼저 무너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과 건설 경기 침체는 시행사·시공사·하도급업체·자재업체로 이어지는 연쇄 도산 위험을 키우고 있다.
2일 법원통계월보·사법연감에 따르면 법인파산 신청은 △2016년 740건 △2017년 699건 △2018년 806건 △2019년 931건 △2020년 1069건 △2021년 955건 △2022년 1004건 △2023년 1657건 △2024년 1940건 △2025년 2282건으로 집계됐다.
지난 10년 사이 3.1배 늘어난 셈이다. 특히 지난해에는 2007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처음으로 2000건을 넘기며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더 빠른 속도로 파산 신청이 늘고 있다. 지난 5월까지 접수된 법인파산 신청은 1060건으로 전년 동기(2025년 1~5월) 992건보다 68건, 6.9% 늘었다. 단순 추세대로라면 올해도 법인파산 신청 건수가 사상 최대치를 경신할 가능성이 크다.
경매 진행 건수도 치솟고 있다. 고금리와 경영 악화로 기업들이 채무를 제때 갚지 못하자, 금융기관 등 채권자들이 대출금 회수를 위해 담보로 잡은 공장이나 상가 등 실물 자산에 대해 경매를 신청하는 사례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법원경매 전문업체 지지옥션 전국 전체용도 경매 통계에 따르면 전국 경매 진행 건수는 2016년 12만4988건에서 2025년 26만7937건으로 2.1배 늘었다. 올해 1~5월 진행 건수도 13만784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10만491건보다 30.1% 증가했다. 반면 낙찰률은 2016년 40.4%에서 2025년 24.1%, 올해 1~5월 22.5%로 떨어졌다. 시장에 나오는 물건은 늘었지만 실제 팔리는 비율은 낮아지고 있는 셈이다.
공장 경매도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전국 공장·제조업소 경매 진행 건수는 2016년 4577건에서 2022년 2201건까지 줄었지만 △2023년 2291건 △2024년 3338건 △2025년 4187건으로 3년 연속 증가했다. 올해 1~5월 진행 건수도 2083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1578건보다 32.0% 늘었다.
전문가들은 최근 법인파산의 상당수가 재무구조가 취약한 기업에 집중됐다고 분석한다. 대기업처럼 자금 조달 창구가 많지 않고 매출이 조금만 흔들려도 임대료와 인건비·이자비용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중견기업도 예외는 아니다. 홈플러스·발란·신동아건설·범양건영 등 중견기업들까지 회생 절차에 들어갔다. 과거에는 중소 기업부터 무너지는 흐름이 두드러졌다면 최근에는 유통·건설·플랫폼·중견 제조업까지 업종과 규모를 가리지 않고 유동성 위기가 번지는 양상이다.
도산 분야 전문가인 김인만 법무법인 IMK해자현 대표변호사(사법연수원 17기)는 "최근 회생·파산 급증은 단순 경기침체가 아니라 지난 10년 가까이 부동산에 과도하게 몰린 유동성과 가계·기업 부채가 금리 상승 국면에서 터져 나오는 과정"이라고 진단했다. 김 변호사는 30여년간 논노그룹·기아자동차·대우자동차·거평그룹·동아건설·대한통운·웅진그룹 등 수백개에 이르는 국내 대기업들의 회생사건을 다뤘다.
김 변호사는 "한국 경제는 저성장·인구 정체·수출 둔화 속에서 내수를 유지하기 위해 부동산 경기와 저금리 유동성에 의존해왔다"며 "코로나 이후 풀린 돈까지 부동산으로 몰리면서 가계부채가 급격히 늘었고 전 국민이 월급이나 영업소득으로 부동산 대출 원리금을 갚는 구조가 됐다. 가처분소득이 줄면 내수가 쪼그라들고 내수가 줄면 자영업자가 먼저 타격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특히 2018~2019년 부동산 호황기에 공급된 상가·오피스텔·지식산업센터도 뇌관으로 지목된다. 당시에는 분양 프리미엄을 기대하고 시행사와 투자자들이 대거 뛰어들었지만 현재는 준공·잔금 시점과 고금리가 겹치면서 잔금을 치르지 못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김 변호사는 "분양 당시에는 프리미엄을 기대했지만 지금은 담보대출이 어렵거나 금리가 높아 잔금을 치르지 못하는 문제가 터지고 있다"며 "특히 시행사는 자체 자산이 거의 없는 경우가 많아 회생 가능성도 낮다"고 말했다.
개인파산 신청은 10년째 4만~5만건대에 머물고 있지만 개인회생 신청은 2023년 이후 폭발적으로 급증하고 있다. 올해 5월까지 회생 접수 건수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1.7% 늘면서 증가세가 이어지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일정한 소득은 있지만 불어난 빚을 감당하지 못하는 청년·장년층이 회생 절차를 밟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일 법원통계월보·사법연감에 따르면 개인파산 신청은 △2016년 5만288건 △2017년 4만4246건 △2018년 4만3402건 △2019년 4만5642건 △2020년 5만379건 △2021년 4만9063건 △2022년 4만1463건 △2023년 4만1239건 △2024년 4만104건 △2025년 4만908건으로 집계됐다.
반면 개인회생 신청은 2023년을 기점으로 급증했다. 개인회생 신청은 △2016년 9만400건 △2017년 8만1592건 △2018년 9만1219건 △2019년 9만2587건 △2020년 8만6553건 △2021년 8만1030건 △2022년 8만9966건 △2023년 12만1017건 △2024년 12만9499건 △2025년 14만9146건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개인회생 신청은 2022년보다 65.8% 늘었고 2016년과 비교해도 65.0% 증가했다.
올해 들어서도 개인회생은 폭증하고 있다. 올해 1~5월 개인회생 접수는 6만7442건으로 전년 같은 기간 6만397건보다 7045건, 11.7% 늘었다. 지난 5월 한 달에만 1만2374건이 접수됐다. 지난해 개인회생 신청이 최근 10년 내 최고 수준까지 늘었는데도 올해 누적 건수가 다시 전년을 웃돌았다. 단순 월평균으로 환산하면 올해 개인회생 신청은 16만건까지 늘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파산과 회생 신청 비율은 연령대에서 뚜렷하게 갈렸다. 서울회생법원이 공개한 2025년 상반기 개인도산 통계 비교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개인파산 채무자 중 50세 이상은 78.36%였다. 60세 이상으로 범위를 좁히면 51.14%다. 반면 개인회생은 30~49세가 54.9%로 절반을 넘었다. 29세 이하도 9.5%를 차지했다. 파산은 장래 소득을 기대하기 어려운 중·고령층에, 회생은 일정액을 변제할 수 있는 청년·장년층에 집중되는 모습이다.
법조계에서는 파산보다 회생 건수가 급증하는 배경에 주목한다. 일은 하지만 원리금 상환을 감당하지 못하는 채무자가 빠르게 늘고 있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서초동의 한 도산 전문 변호사는 "요즘 청년들은 결혼할 때부터 아파트 자금 마련을 위해 영끌로 수억원씩 빚을 갖고 시작한다. 전 국민이 빚쟁이"라며 "청년 채무 문제는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비롯됐다"고 했다. 이어 "부동산 가격 상승이 젊은 세대에게 '남들은 집 사는데 나는 뒤처진다'는 조바심을 만들었고 그 조바심이 코인·주식 같은 고위험 투자로도 번졌다"고 지적했다.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도 개인 도산 증가의 원인으로 금리 부담과 내수 부진을 지목했다. 강 교수는 "돈을 빌렸다가 갚지 못하는 것이 파산·회생으로 이어지는 구조인데, 금리 요인이 상당히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며 "가계도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빚이 많고 원금과 이자를 갚고 나면 가처분소득이 줄어 소비가 위축된다. 반도체 중심으로 총량 지표는 괜찮아 보여도 서비스업이나 자영업자 쪽으로 낙수효과가 퍼지는 것은 많지 않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