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생 제도가 재기의 기회이나 경제 상황 악화, 과거와 다른 회생 사례 등의 이유로 재기에 실패하고 기업이 청산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회생 절차가 실패로 돌아가면 그동안 피가 말리는 채권자들은 '시간을 끌기 위해 회생 절차를 악용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반면 노력도 없이 일찍 재기를 단념하는 것도 좋지 않다는 반론도 나온다.
회생 절차가 결렬될 경우 법원은 '견련 파산'을 선고할 수 있다. 견련 파산이란 인수자, 신규 자금, 회생 계획, 계속기업가치 등이 없어 더 이상 회생이 불가능할 때 법원이 파산을 선고하는 절차를 뜻한다. 구체적으로 법원은 회생 사건을 담당하던 재판부가 견련 파산을 선고하면, 사건을 파산 사건을 전담하는 재판부로 재배당을 하게 된다. 견련 파산이 선고될 경우 법원은 기업의 모든 재산을 처분해 채권자에게 배분할 수 있다.
위메프는 지난해 11월 회생절차 폐지 결정이 확정돼 파산이 선고됐다. 인터파크커머스도 지난해 12월 회생절차 폐지 결정이 확정된 당일 파산이 선고된 바 있다. 법원은 지난 2월에도 명품 온라인 플랫폼 반란이 회생을 신청한지 약 11개월만에 파산을 선고했다.
회생 실패 사례가 잇따르면서 일부 피해자들은 정상화 가능성이 없는 기업들이 시간을 벌기 위해 사법 제도를 악용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위메프의 경우 대규모 미정산·미환불 사태 이후 기업 회생 절차를 신청해 인가 전 인수합병을 추진했으나 인수자를 결국 찾지 못했다. 법원의 결정 후 당시 피해자들의 모임인 검은우산 비상대책위원회는 입장문을 통해 "10만 피해자들은 0%의 구제율, 즉 단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한다는 '사망 선고'를 받았다"며 "예견된 참사"였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도산 전문가들은 견련 파산 현상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볼 수 없다고도 지적했다. 회생을 시도하는 것이 기업을 살리기 위한 마지막 노력이기도 하고, M&A(인수합병)가 이뤄질 경우 기업이 살아날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역으로 기업을 회생하려는 노력조차 시도하지 않고 바로 파산을 선택하는 경우가 늘고 있는 현상이 오히려 문제라고 지적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법원통계월보에 따르면 법인회생 신청 사건 2019년 1003건에서 코로나19 이후 감소했다가 다시 증가세로 돌아서 2025년에는 1321건까지 늘었다. 반면 법인파산은 2019년 931건에서 2025년 2282건까지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익명을 요청한 회생법원 출신 변호사 A씨는 "과거는 기업을 어떻게든 살려보려고 적절한 회생·도산 절차를 미루는 경우가 문제였다"며 "다만 최근엔 젊은 창업가도 늘고, 사회·문화적 분위기도 달라지면서 기업 회생 대신 빠르게 기업을 접는 경우도 흔히 보인다"고 했다. 이어 "회생 제도 자체가 일단 기업을 살려보려는 의도에서 시작하는 것"이라며 "시간을 끄는 장치라고 보는 시각도 있지만 회생을 통해 기업이 인수 합병되거나 좋은 기회를 찾는 경우도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회생법원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 B씨도 "과거는 제조업 위주로 도산 절차가 이뤄졌는데 이젠 전반적인 경제적 압박으로 이커머스 등 다양한 분야에서 도산 절차가 이뤄지고 있다"며 "특히 이커머스 같은 기업의 경우 사업 규모가 큰 만큼 인수·합병이 쉽지 않은 것은 당연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파산·회생 제도는 빚에 몰린 채무자의 복귀를 돕는 마지막 방안이나 재산 은닉·허위 채무 조작·반복 신청·불법 브로커 개입 등 제도의 허점을 노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법조계에서는 제도가 빚 탕감의 통로로 악용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악성 사건 선별 능력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일 경찰청 범죄통계에 따르면 2024년 한 해 동안 '채무자회생법 위반'으로 적발된 사건은 총 83건(검거 78건)이며 검거된 인원만 109명에 달한다. 채무자회생법 위반은 크게 사기회생죄와 사기파산죄로 나뉜다. 회생 또는 파산 절차를 밟고 있는 채무자가 채권자를 해할 목적으로 재산을 은닉·처분하거나 부담을 허위로 늘려 채권자에게 손해를 끼치는 범죄다. 10년 이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 벌금에 처해 수 있다.
대표적으로 재산을 숨기고 가짜 빚을 만드는 수법이 활용된다. 하지만 법원에서 유죄로 인정되기 쉽지 않다. 최근 판례에 따르면 A씨는 개인회생 절차를 밟으면서 월급 440만원을 기준으로 회생 계획 인가받았다. 그런데 A씨는 배우자 명의 계좌로 추가 근무 수당을 따로 받아왔고 이를 회생계획안이나 월간보고서에 반영하지 않았다. 검찰은 A씨가 법원을 속여 채무 약 11억7400만원 중 약 7억3500만원을 면제받았다며 사기죄로 기소했다.
1·2심은 A씨가 실제 소득을 숨겼고 그 결과 회생 계획이 인가된 점을 고려해 사기 혐의를 유죄로 인정됐으나 지난해 6월 대법원은 판단을 뒤집었다. 대법원은 허위 내용이 회생 계획 인가 여부나 변제율 등에 실질적 영향을 미칠 정도여야 한다는 취지로 파기 환송했다.
파산·회생 제도를 악용하는 사건은 전체 파산·회생 사건 수에 비하면 극히 적다. 그러나 파산·회생 제도가 법원과 채권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운영된다는 점에서 파장은 절대 가볍지 않다. 법원에 제출되는 채무자의 재판목록 등 자료가 허위라면 법원 판단뿐 아니라 채권자 배당·변제율·면책 여부가 모두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제도의 틈새를 노리는 무자격 브로커도 문제다. 절차를 잘 아는 척하는 무자격자가 채무자에게 접근하고, 서류 작성·제출을 대리하거나 허위 임대차계약서 등 조작 서류 제출을 부추기는 방식이다. 과거 검찰 수사에서는 파산·회생 사건을 알선한 브로커와 명의를 빌려준 변호사 등이 적발됐다. 이에 법원도 브로커 체크리스트 제도를 도입해 의심 사건을 선별해왔다.
반복 신청 문제도 있다. 한 번 빚을 탕감받고도 또 탕감 신청을 해 행정력 낭비를 불러오는 것이다. 서울회생법원의 지난해 상반기 개인파산 통계조사 결과, 과거 도산 절차 신청 경험이 있는 채무자 비율은 29.43%다. 2022년 이후 개인파산·개인회생 등 도산 절차 신청 경험이 있는 채무자 비율이 소폭 증가 추세다. 물론 과거 신청 경험이 있다고 전부 악용은 아니다. 실직, 질병, 경기 악화 등으로 다시 채무 불능 상태에 빠지는 경우도 있다.
법조계에서는 악용 사례가 있지만 제도 자체를 위축시켜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히려 악성 사건 선별 능력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한 도산 전문 변호사는 "악용을 우려해 제도 문턱을 무작정 높이면 성실한 채무자의 재기를 가로막을 수 있다. 반대로 허위 자료 제출과 브로커 개입을 방치하면 제도 신뢰가 무너지고, 손해는 채권자뿐 아니라 성실한 채무자들에게도 돌아간다"고 밝혔다. 이어 "신청 전후의 재산 이동, 채무 발생 경위, 소득 신고의 일관성 등을 입체적으로 봐야 한다"며 "법원·관재인·수사기관 간 정보 공유와 의심 사건에 대한 집중 심리가 강화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회생·파산 신청이 급증하자 법원은 AI(인공지능) 신청서 작성 지원·도산사건 데이터베이스 구축 등 도산 절차의 온라인·디지털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채권자 집회 및 의결에 전자투표도 조만간 도입한다. 법률 지식이 부족하거나 대리인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채무자의 제도 접근성을 높이고 도산 절차의 신속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예산 확보와 관련 법 개정이 시급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2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회생·파산위원회는 최근 정기회의를 열고 도산 절차 전반의 온라인·디지털화 필요성을 논의했다. 사건은 늘고 있지만 법원 인력과 채무자의 비용 부담은 한정돼 있어 절차를 더 빠르고 쉽게 바꿔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주요 과제로는 △AI 기반 도산 신청서 작성 지원 △도산사건 정보의 데이터화 △온라인 채권자집회 시스템 도입 등이 있다.
법원은 개인 회생·파산 절차에서 신청자가 채무목록·재산목록 등 기본 정보를 입력하면 이를 바탕으로 개인 도산 신청서를 기계적으로 작성해주는 AI가 도입되면 채무자들의 변호사 등 선임 비용을 크게 절감할 것으로 기대한다.
현재는 채무자가 빚을 탕감받기 위해 변호사·법무사에게 거액의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역설적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대법원 관계자는 "법원은 개인 회생·파산 신청자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대리인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현실을 문제로 보고 있다"며 "비용 장벽 때문에 회생 제도의 접근성이 떨어지므로 이를 제거하는 게 필요하다"고 했다.
도산사건 정보의 데이터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많다. 서울회생법원 부장판사 출신의 한 로펌 변호사는 "도산사건의 데이터화는 법원의 업무 처리도 편해지고 개인들의 도산 절차 접근성과 비용을 낮추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온라인 채권자 집회로 출석을 하고 싶지만 시간적·물리적 제약으로 오기 힘든 사람들도 적극적으로 도산 절차에 참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참여자들이 온라인집회에 기술적 부담을 느끼지 않는 선에서 발전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예산 부족이 걸림돌이 되고 있다.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법원 내부 시스템 정비를 위한 예산이 부족하다"며 "AI 개발은 기존 전체 시스템 예산과 별도로 산정해 청구해야 하는데 AI 신청서 작성 지원, 도산 데이터 구축 등을 하나의 큰 사업으로 보고 필요한 예산 규모를 산정하는 단계부터 추진 중"이라고 했다.
온라인 채권자집회의 경우에는 법적 근거도 필요한 상황이다. 현행법상 법정에 직접 '출석'하도록 하는 규정 때문에 온라인 집회가 불가능하다. 채무자회생법 제613조 제2항에 따르면 채무자는 개인회생채권자집회에 '출석'해 개인회생채권자의 요구가 있는 경우 변제 계획에 관해 필요한 설명을 들어야 한다고 정한다. '출석'은 현행 판례상 법정에 물리적으로 임하는 것을 의미한다.
국회는 2021년 민사소송법에 제287조의2를 신설해 일정한 경우 변론준비기일, 심문기일, 변론기일을 비디오 중계장치나 인터넷 화상장치로 열 수 있도록 했다. 도산 절차에서도 온라인 집회를 안정적으로 운영하려면 채무자회생법에 별도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는 게 법조계의 설명이다.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일본과 독일은 관련 법률 정비를 했고 영국은 온라인이 원칙이고 오프라인은 예외"라며 "한국은 아직 법적 근거 규정이 없어 늦은 편"이라고 했다.
온라인 채권자집회가 가로막혀 중간 단계로 서울회생법원은 채권자 집회 및 의결에 전자투표를 도입하기로 했다. 스마트 법정 내 모든 좌석에 실시간 투표가 가능한 전용 단말기를 설치하고 개인 모바일 기기와의 보안 연동 체계를 마련할 예정이다. 절차 지연과 수기 집계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류를 최소화할 것으로 기대된다.
도산 데이터베이스 구축에선 개인정보 보호법 등이 걸림돌이다. 법원 관계자들은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다른 국가기관 및 지자체로부터 도산사건 관련 전산정보 자료를 제공받을 수 있는 근거가 없기 때문에 입법적으로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법조계는 미국은 수십 년 전부터 도산 데이터를 축적해 통계 분석·연구·절차 개선에 활용해왔지만 한국은 아직 체계적 데이터 기반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