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에서 중국집을 운영하는 A씨는 최근 배달 앱 요청사항에 적힌 문장을 보고 가만히 멈춰 섰다.
"회사 발령으로 이제 창원으로 갑니다. 그동안 포항에서 맛있는 중국집 잘 이용했습니다."
떠나기 전, 그간의 고마움을 전하는 짧은 인사였다. A씨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스친 건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이었다. A씨는 "굳이 말하지 않고 조용히 떠나면 우리는 알 길이 없다"며 "그런데 이렇게 마지막 인사까지 남겨주시니 가슴 깊이 감동을 받았다"고 전했다.
그는 "바로 직전 손님의 무리한 요청 때문에 마음이 참 무거웠는데, 이 글을 읽자마자 눈물이 그렁거렸다"며 "힘든 손님도 정말 많지만 이런 고객님 덕분에 열심히 일할 수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손님이 직접 미담을 전한 경우도 있었다. 최근 8년간 정들었던 동네를 떠나 이사하게 된 B씨는 보쌈 가게 주문서에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늘 번창하세요'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B씨에게는 이 가게에 얽힌 애틋한 기억이 있었다. 얼마 전 무지개다리를 건넌 반려견 '구름이'와의 추억이었다. 아이들이 구름이를 데리고 산책할 때마다, 보쌈집 사장님은 가게 밖으로 나와 구름이에게 먹일 고기를 살뜰히 챙겨주곤 했다.
B씨는 "직접 찾아뵙고 인사드리고 싶었지만, 마주하면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며 "이렇게 글로라도 마음을 전하는데 또다시 눈시울이 붉어진다"고 털어놨다.
잠시 후 배달된 음식의 영수증에는 사장님의 정성 어린 답글이 적혀 있었다. '저희도 그동안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어디를 가시든 늘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타코 가게를 운영하는 C씨는 소고기 부리또 주문서에서 뜻밖의 선물을 발견했다.
"흐엉, 이사가서 오늘이 시켜 먹는 마지막 날이에요ㅠㅠ 덕분에 그동안 아주 멋진 점심 먹었습니다. 감사합니다아!!"
C씨는 이 주문서를 사진으로 찍어 SNS에 공유하며 "이름도 성도 모르는 분이지만 앞날을 온 마음으로 축복한다. 이런 예쁜 마음을 가진 분은 어디서든 잘 될 수밖에 없다"며 벅찬 감정을 드러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댓글 창도 덩달아 훈훈해졌다. "나도 이 동네를 떠날 때가 되면 80번 가까이 주문했던 최애 카페에 꼭 말해야겠다"는 다짐부터, "주문하던 피자집에 이사 인사를 남겼더니 사장님이 정성스레 써 내려간 손편지를 보내주셔서 울 뻔했다"는 경험담이 나왔다.
배달 앱 화면 너머로 늘 무거운 소식만 들려오던 요즘, 오랜만에 찾아온 온기다. 악성 리뷰와 갑질에 숨죽여야 했던 자영업자들의 얼굴에 간만에 환한 미소가 피어난 순간이었다.
그동안 자영업자들을 경악하게 만든 배달 요청사항은 셀 수도 없이 많았다.
'2인분 같은 1인분'은 애교였다. 탕수육 양을 줄여도 좋으니 고가의 크림새우를 서비스로 보내달라거나, 밑반찬을 빼는 대신 메인 메뉴인 돈가스를 하나 더 달라는 막무가내식 요구도 있었다. 이 손님은 1만2500원짜리 음식을 주문하면서 수저를 8개나 요구하기도 했다.
음식점 주문서를 사적인 심부름센터처럼 이용하는 이들도 존재했다. "김치찜 대신 담배 프렌치 블랙 4갑만 사다 주시면 안 되나요?" 친절한 말투를 가장한 담배 심부름이었다.
자신이 진상 고객임을 당당하게 과시하는 경우도 있었다. "저 무척 까다롭습니다. 섬세하게 최선을 다해 조리해 주세요."
협박성 멘트도 단골 메뉴였다. "정직하게 조리해 주세요. 기만하면 리뷰 박제 들어갑니다", "주문 취소하면 복수합니다", "장사 잘된다고 눈에 뵈는 게 없나요?" 등의 날선 문장들은 자영업자들의 가슴에 비수로 꽂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자영업자들은 손님을 의심해야만 했다.
최근 한 자영업자는 배달 요청사항에 "임신한 아내가 일주일을 굶었습니다. 돈은 나중에 입금할 테니 제발 음식을 보내주세요"라는 글을 받았다.
안타까운 마음에 도우려던 사장님이 확인차 전화를 걸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고, 주문 내역이 5만원이 넘는 푸짐한 튀김 세트인 것을 확인한 뒤 씁쓸하게 주문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사장은 "정말 어려운 분이라면 돕고 싶었을 뿐인데, 선의가 악용되는 현실에 속이 상한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기형적인 갑질 현상의 원인으로 익명성과 뒤틀린 우월감을 꼽는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현실 세계에서는 강자에게 고개를 숙이면서도, 자영업자처럼 자신보다 약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과도하게 군림하려는 심리가 있다"며 "배달 앱을 통해 손쉽게 심리적 우월감을 확인하려는 비겁한 행동"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소비자의 '별점 테러' 한 번에 음식점이 입는 타격이 얼마나 큰지 잘 알기 때문에, 자영업자들이 쩔쩔매는 상황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반면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자영업자에게 따뜻한 한마디를 건네는 손님들의 심리 바탕에는 '선의의 확장'이 존재한다.
임 교수는 "음식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수단을 넘어 만드는 사람과 먹는 사람 사이에 보이지 않는 유대감을 형성한다"고 설명했다. 만족스러운 한 끼를 대접받았을 때 마음속에 피어나는 고마움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성숙한 행위라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느낀 기쁨에 머무르지 않고 타인에게 호의를 베푸는 이타적 심리"라며 "마음을 숨기지 않고 다정하게 표현하는 것은 자신이 받은 선의가 우리 사회에 더 널리 퍼지기를 바라는 건강한 연대의 태도"라고 덧붙였다.
배달 플랫폼이라는 디지털 환경에서도 변하지 않는 본질은 사람 간 소통과 존중이다. 화면 너머로 오가는 존중과 다정한 안부가 자영업자들에겐 다시 힘을 내 주방 불을 켜게 만드는 힘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