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36주차에 임신중절 수술을 받고 유튜브에 영상을 게시해 살인 등의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유죄 판단을 받은 여성 권모씨(26)가 2심에서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임신중절 수술을 한 병원의 원장 윤모씨(81)는 1심에서 징역 6년을 받았다가 2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서울고법 형사5부(부장판사 김용석)는 23일 임산부였던 권씨, 병원장 윤씨, 집도의 심모씨 등의 살인 혐의 항소심 선고 공판을 열고 권씨에게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무죄가 선고되자 방청석에선 탄성이 터져 나왔다.
병원장 윤씨에 대해선 원심 판결 중 유죄 부분을 파기, 징역 4년 및 벌금 150만원을 선고했다. 권씨를 수술한 대가로 받은 900만원의 추징도 명령했다. 이는 1심보다 징역 2년이 줄어든 형이다. 집도의 심씨에 대해선 징역 2년6개월이 선고됐다.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은 데 비해 형이 1년6개월 줄었다. 윤씨와 심씨 모두 아동 관련 기관에 5년간 취업이 제한됐다.
1심은 권씨의 행위가 살인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1심은 권씨가 태아의 사체처리 동의서에 서명했고 임신중절을 감행한 것은 살아서 배에서 나온 태아를 의료진이 살해하겠다는 것을 예상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결론내렸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권씨가 태어난 태아가 이후 살해될 것까지 인식하지는 못했을 개연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권씨가 수술 전 브로커에게 '태아가 사산돼 나오는지' 물었을 때 '그렇다'는 답변을 들었고, 이후 의료진에게 수술 방법을 별도로 확인하지 않은 사정 등을 고려해 이같이 판단했다. 또 권씨가 임신 사실을 수술 4일 전에 처음 알게 돼 짧은 기간 동안 임신 중절에 대한 의학지식을 구체적으로 알기 어려웠다고 봤다.
반면 의료진들은 2심에서도 살인죄 혐의가 유지됐다. 재판부는 윤씨와 심씨가 공모해 태아를 사망하게 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하나의 생명으로서 고통으로 몸부림 쳤을 것"이라며 "사람의 생명을 해한 것으로 결과가 무겁고 피해의 회복이 불가능하다.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이들에 대해 범행 이후 진료기록과 진단서를 허위로 작성하고 직원들에게 허위 진술을 지시하는 등 범행을 은폐하려 한 점을 참작했다. 그러면서 임신중절 수술이 권씨의 의사에 따라 이뤄진 점, 고령인 점, 건강 상태, 범행 인정과 반성, 임신중절 제도의 공백 등을 고려한다고 밝혔다.
범죄수익 추징 범위도 일부 변경됐다. 1심은 브로커로부터 소개받은 환자들에게 받은 수술비 약 11억5000만원 전액을 범죄수익으로 판단했으나, 항소심에서는 권씨에 대한 수술비 900만원에 대해서만 추징하기로 했다.
브로커들에 대한 판단은 2심에서도 대부분 유지됐다. 한모씨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2억 1995만원의 추징을 명령받았다. 또 다른 브로커 배모씨는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 유지됐다. 배씨는 단순 급여를 받았을 뿐이라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범행을 대가로 받은 급여는 범죄수익에 해당한다며 항소를 기각했다.
한편 이 사건은 권씨가 2024년 '총 수술비용 900만원, 지옥 같던 120시간'이라는 제목의 영상을 게시하며 시작됐다. 병원장 윤씨와 집도의 심씨는 2024년 6월 임신 36주차인 권씨의 제왕절개 수술을 진행한 후 태아를 미리 준비한 사각포로 덮고 냉동고에 넣어 살해한 혐의를 받았다.
윤씨는 권씨의 진료기록부에 건강 상태를 '출혈 및 복통 있음'이라고 허위 기재하고 태아가 사산한 것처럼 가장한 혐의도 받았다. 권씨가 이런 사실에 대해 유튜브에 영상을 올리자 윤씨는 태아의 사산 증명서를 허위로 발급하기도 했다.
검찰 조사 결과 윤씨는 병원 경영에 어려움을 겪자, 낙태 수술을 통해 수입을 얻기로 마음먹고 범행을 벌인 것으로 파악됐다. 심씨는 건당 수십만원의 사례를 받고 수술을 했다. 윤씨는 이 기간에 브로커들에게 환자 527명을 소개받아 총 14억6000만원을 취득한 혐의도 받았다. 윤씨에게 환자를 알선한 브로커 2명도 같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