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하영이 증조부인 안상호의 친일 행적을 인정하고 사과한 가운데 그의 증조모가 일본의 조선총독부 대장의 딸이었단 말도 나오기 시작했다.
15일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파묘 중인 배우 하영 가문 근황'이라는 제목의 게시물이 퍼졌다.
특히 해당 게시물에는 하영의 증조모가 일본의 조선총독부 대장의 딸이었다는 주장이 담겨 눈길을 끌었다.
작성자는 1983년 출판된 김용숙의 '조선조 궁중풍속 연구'(朝鮮朝 宮中風俗 硏究)의 일부를 발췌했다.
해당 페이지에서 저자는 '어용괘 안상호 225원'이라고 적힌 궁중 직원들의 월급 명단을 공개했다.
이에 대해 저자는 "이 월급 명단이 경술합병 이후 이미 난 때였으니 왕국의 체통도 사양의 빛을 감출 길 없어 어용괘, 벌써 그 명칭부터가 일본식 관직명이다. 안상호, 바로 이 사람이 갑작스러운 승하를 둘러싸고 2000만(당시 인구)의 의혹의 눈초리가 집중된 문제의 인물이기도 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부인이 당시 총독부에 있던 일본의 무슨 대장의 딸이었으니, 더욱 의심받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일제강점기 의사였던 정구충의 '한국 의학의 개척자'에서는 안상호의 아내 가와구치 이소코가 본래 일본 모리가(毛利家) 공신의 딸이라고 적혔다. 모리가는 한국을 정벌하여 일본의 국력을 배양하자는 정한론을 펼친 조슈번 무사 가문이다.
상류층 집안에 들어가 예법과 생활 풍습을 익히는 당대 일본 관습에 따라 의친왕 저에 갔다가 구연수의 소개로 의친왕 저에서 사무를 보게 됐고, 그 인연이 안상호와 결혼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서술됐다.
구연수는 1895년 명성황후 시해(을미사변) 당시 궁궐 진입과 시신 소각 등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뒤 일본으로 망명한 친일반민족행위자다.
앞서 하영의 부친은 인터뷰에서 "의친왕이 일본인 여성을 소개해 결혼한 것으로 알며, 혼인 자체를 친일과 연결할 수 없다"고 해명한 바 있다. 그러나 위 문건에서는 안상호의 아내가 1907년 남편의 귀국을 돕기 위해 한국에 먼저 들어와 구연수의 자택에 머물렀다는 내용이 담기며 친일반민족행위를 한 인물과 밀접한 인연이 드러났다.
이에 누리꾼들은 "그냥 친일파도 아니고 총독부의 핏줄이었다" "로열 매국 집안" "이런 집안 후손이 명문가 행세를" "친일파와 전범 후손의 만남이었네" 등 충격적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앞서 하영은 증조부부터 할아버지, 아버지, 자신의 언니까지 '4대째 의사 집안'을 홍보했다가 증조부의 친일 논란이 불거져 지난 12일 자필 사과문을 올렸다. 그러나 하영의 집안과 관련한 각종 문헌이 파묘되며 비판 여론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14일 민족문제연구소는 하영에 대한 연좌제적 비난을 경계하면서도 그가 구조적 성찰이 부족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연구소는 "이번 논란의 본질은 배우 개인이 '친일파의 후손'이라는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공적 영역에서 조상의 식민지 협력 이력에 대한 최소한의 역사적 성찰 없이 발언해 대중에게 상처를 준 '역사인식과 성찰 부재의 문제'에 있다"고 짚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안상호의 주요 친일 행적으로 △이토 히로부미 국민대추도회에서 준비위원으로 참여 △일제 식민통치를 뒷받침한 지방행정 보조기구인 경성부 협의회원 역임 △식민지 금융수탈기구인 경성 종로금융조합의 조합장 역임 △내선융화 단체인 대정친목회 평의원 활동 등을 열거했다.
대표적 친일 인사인 이완용, 민영휘 등이 활동한 대정친목회에 안상호 역시 평의원으로 이름을 올린 사실에 대해서도 "논란의 여지가 없는 친일 엘리트의 모임이었던 대정친목회는 조선인 유력자와 일제 당국을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자임했다"며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단체의 성격을 고려할 때, 안상호가 평의원(일종의 대의원 격)으로 참여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명백한 친일 행위"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