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관 내 장애인 관람석을 중간이나 맨 뒷줄에 설치하도록 관련 규정이 바뀐 지 약 8년이 지났지만 전국 멀티플렉스 영화관의 장애인석 10곳 중 7곳은 여전히 맨 앞줄에 몰려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맨 앞줄에 설치할 수 있도록 한 예외 규정에 구체적인 거리나 시야 기준이 없어 장애인의 실질적인 관람권을 보장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일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내 4개 멀티플렉스 체인(CJ CGV·롯데시네마·메가박스·씨네Q)의 전국 극장 장애인 관람석 5987석 가운데 4182석(69.9%)이 맨 앞줄에 위치한 것으로 집계됐다. 맨 뒷줄에 설치된 장애인석은 1564석(26.1%), 중간 줄은 241석(4.0%)으로 나타났다.
관련 규정은 약 8년 전 개정됐다. 2018년 보건복지부의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이 개정되면서 신설 영화관은 장애인 관람석은 중간 줄 또는 맨 뒷줄에 설치하도록 권고하는 기준이 마련됐다.
하지만 예외도 뒀다. 장애인 관람석과 스크린 사이 거리가 관람에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충분하다면 맨 앞줄에도 장애인석을 설치할 수 있도록 했다. 문제는 어느 정도의 거리와 시야를 확보해야 '관람에 불편하지 않은 수준'인지 구체적인 기준이 없다는 점이다.
영화관 측은 장애인 관람객의 안전과 기존 상영관의 구조적 한계 등을 이유로 들었다. 국내 한 주요 멀티플렉스 관계자는 "비상 상황 시 장애인의 우선 대피를 고려해 비상구와 가까운 1열에 장애인석을 배치해왔다"며 "법 개정 이후 신설하거나 리뉴얼하는 상영관에서는 관련 기준을 검토하고 있지만 좌석만 옮기는 문제가 아니라 통로 확보와 안전동선 재설계 등 시설 전반을 변경해야 해 구조적인 제약도 있다"고 말했다.
해외에서는 장애인 관람석의 위치뿐 아니라 실제 관람 환경까지 고려한 기준을 두고 있다. 주요 유럽 국가는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한 수준의 공간적·감각적 경험을 누려야 한다는 가이드라인을 전제로 영화관에 '유니버설 디자인' 원칙을 적용하고 있다. 유니버설 디자인은 상영관 설치 시 중앙·상단과 연결되는 무단차 평지 동선과 전용 접근 복도의 설계를 의무화하고 있다.
미국은 구체적인 시야각을 법제화했다. 미국의 장애인법(ADA) 기준은 휠체어석의 수뿐 아니라 일반 관객과 비교할 수 있는 수준의 시야각을 확보하도록 '전체 좌석의 수직 시야각 분포 중 40~100% 범위 내'로 구체화했다. 또 일정 규모 이상의 영화관에서는 휠체어석의 위치와 분산 배치도 규정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재 제도상 예외 조항이 구체적 기준이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 관람석 안전 문제의 핵심은 어느 위치든 대피 가능한 동선을 만드는 것이라고 제언했다.
장혜진 성신여대 산업디자인과 교수는 "단순 입장을 넘어 적절한 시야와 관람각을 확보할 수 있는지, 다른 관객과 마찬가지로 좌석 위치를 선택할 수 있는지 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며 "공간 설계 단계에서부터 휠체어석과 일반 객석의 자연스러운 통합 방안이 고려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예원 장애인인권센터 변호사는 "법은 중간·뒷줄 배치를 원칙으로 정했지만 실제 관람의 질을 판단할 기준은 정교하게 만들지 못했다"며 "어느 정도의 거리와 시야각이어야 '관람에 불편하지 않은지'에 대한 기준이 없어 제도적 허점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장애인석의 70%가 맨 앞줄에 집중돼 있단 사실은 실질적 관람권보다 '휠체어 공간 확보'에만 초점 맞춘 결과"라며 "안전을 위해 필요한 것은 장애인을 무조건 출입구 가까이 배치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좌석에서도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는 동선을 확보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