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임기구 하나에 4명 밥값"...탈북 여성들이 밝힌 북한 성문화

이재윤 기자
2026.09.17 09:44
BBC뉴스 코리아는 지난 12일 심층기사 '아무도 내게 원하냐 묻지 않았다…탈북 여성이 말하는 북한의 성과 사랑'를 통해 북한 여성의 인권에 대해 다뤘다. 사진은 이 기사를 다룬 유튜브 영상 화면 갈무리./사진=BBC뉴스 코리아

평생 성교육을 받아 본 적도 없고, 콘돔 등 피임은 '여자가 알아서'해야 하는 일이었다. 여자의 성욕이란 개념 자체가 없고, 남성이 원하면 거부하지 않는 게 당연시 여겨지는 나라. 이런 말 조차 쉽게 나누기 어려운 나라, 북한 얘기다.

BBC뉴스 코리아는 지난 12일 심층기사 '아무도 내게 원하냐 묻지 않았다…탈북 여성이 말하는 북한의 성과 사랑'를 통해 북한 여성의 인권에 대해 다뤘다. 이 기사는 각각 20대와 40대, 60대인 익명의 탈북 여성 3명과 나눈 인터뷰를 토대로 여성 인권에 대해 조명하고, 북한 전문가들의 분석을 덧붙였다. 관련 내용은 유튜브 영상으로도 제작됐다.

북한 여성들은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을 기회조차 없었다. BBC가 만난 탈북 여성들은 북한에서 성 교육을 받아본 경험이 거의 없다고 털어놨다. 60대 탈북 여성 A씨는 "배란기도 모른다"며 "손만 잡으면 임신일 줄 알았다"고 말했다. 20세가 될 때까지도 그렇게 알고 있었다고 한다.

북한이탈주민을 연구해온 전주람 서울시립대 교수는 BBC에 "북한 사회엔 '성욕'이라는 개념이 없다"며 성욕뿐 아니라 개인의 '욕구'라는 개념 자체가 희미하다고 설명했다. 남성 중심적인 성관계 문화 속에서 여성들이 자신의 몸이 무엇을 원하는지 생각할 기회조차 갖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통일연구원이 2021년 발간한 '북한의 성·재생산 건강과 권리, 여성과 섹슈얼리티'에서도 북한 여성의 성교육과 성지식, 성관계와 피임 문제를 별도로 다뤘다. 탈북 여성들이 성에 관한 교육을 처음 받은 곳은 북한이 아닌 한국에 입국한 뒤였다. 한 여성은 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인 하나원에서 처음 성 교육을 받았다고 밝혔다.

피임 역시 여성의 몫이었다고 한다. 가장 흔하게 사용된 방법은 자궁 내 삽입 기구인 이른바 '고리'였다. 탈북 여성들은 중국에서 들어온 고리를 장마당(시장)에서 구해 병원에서 삽입했고, 출혈이나 허리 통증 등 부작용을 겪는 여성들도 있었다고 증언했다. 콘돔은 2010년대 들어 북한에서도 사용되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20대 탈북 여성 B씨는 "장마당에 숨겨놓고 콘돔을 팔긴 했는데 비쌌다"며 "콘돔 하나에 4명 밥값인데 남자들이 쓰겠느냐"고 말했다. 60대 A씨 역시 남성이 피임하는 경우는 거의 알지 못했다며 "무조건 여자가 했다"고 회상했다.

연인들이 성관계를 할 만한 공간도 마땅치 않았다. 탈북 여성들은 북한에서 연인 관계라는 사실이 주변에 알려지는 것을 피하려 산이나 흙간, 창고 등을 이용한다고 한다. 여성들은 흙바닥에 깔 보자기까지 직접 준비해야 했다고 한다. A씨는 "흙바닥에 깔아놓고 하지, 아니면 그냥 서서 했다"며 "남자는 아무것도 안 하고 여자가 다 준비해서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간판 없는 여관이 일부 있었지만 이용하면 금세 소문이 퍼졌다고 한다.

한국에 정착한 뒤 모텔이라는 공간을 처음 접했을 때 상당한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는 증언도 나왔다. 한 탈북 여성은 "처음 한 5년은 모텔이 뭐 하는 곳인지도 몰랐다"며 "가보니까 엄청 좋더라. 너무 깨끗하고 신기했다. '아, 이런 데가 다 있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여자라서 내가 사랑을 받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성관계에서도 여성의 의사는 중요하게 고려되지 않았다고 한다. A씨는 "북한에서 성관계를 하고 싶어서 한 적은 없다"며 남편이 원하면 응하는 것이 결혼한 여성의 의무처럼 여겨졌다고 말했다. 다른 여성들도 남편이 술을 마시고 들어오거나, 여성이 생리 중인 경우에도 남성이 원하면 '성관계를 거부하기 어려웠다'고 전했다.

여성이 먼저 자신의 성적 욕구를 표현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고, 상대방에 대한 애무나 배려라는 개념 역시 익숙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부부 관계에서의 폭력이나 외도에도 여성에게 인내를 요구하는 분위기가 강했다고 한다. "남편에게 폭행을 당해도 자신은 아내이자 아이들의 엄마이기 때문에 참고 남편을 받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발언도 있었다. 또 남편이 외도하더라도 "그럴 수 있다"며 넘어가는 분위기가 있다고 한다.

이혼하기는 쉽지 않았다. 탈북 여성들은 과거 북한에서 이혼 자체가 드문 데다 이혼할 경우 여성에게 책임을 돌리는 사회적 시선이 강했다고 말했다.

최설 북한대학원대학교 심연북한연구소 객원연구원은 최근 북한 당국의 이혼 통제가 더 강화됐다고 전했다. 최 연구원에 따르면 사실혼이나 미신고 동거, 이혼을 먼저 신청하는 주민에 대한 처벌이 이뤄지고 있으며 지난해 7월부터는 이혼한 부부 양쪽을 노동단련대로 보내는 조치까지 시행되고 있다고 한다.

북한을 탈출해 한국에 정착한 뒤엔 여성들은 '자신의 몸과 관계를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달라졌다'고 한다. 이들은 자신에게 맞는 속옷과 화장품을 고르고 카페에서 원하는 음료를 선택하는 일조차 북한에서는 익숙하지 않았던 경험이라고 말했다. 연애에서도 차이를 느꼈다고 한다. 한 여성은 한국 남성과 교제하면서 상대방이 자신의 감정이나 몸 상태를 묻고 배려하는 경험을 처음 했다고 회상했다.

A씨는 북한 남성과의 관계를 두고 자신이 일방적으로 '봉사'하는 기분이었다며 한국에 와서 상대방의 배려를 경험한 뒤 처음으로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BBC는 이 같은 증언을 단순한 남북한 연애 문화의 차이보다는 '여성의 자기결정권'이라는 문제로 바라봤다. 탈북 여성들은 북한에서 자신의 몸과 욕망에 대해 질문할 기회가 없었고, 한국에 정착한 뒤에야 무엇을 원하는지 생각하기 시작했다고 입을 모았다. 한 탈북 여성은 "다시 태어난다면 한국에서 태어나고 싶다"며 "처음부터 마음껏 당당하게 연애하고 내 몸을 내 마음대로 쓰면서 살고 싶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