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먹지도 않는데"…30만원 차례상 대신 '가족이 좋아하는 한 끼'

류원혜 기자
2026.09.24 07:15
명절 차례상에 샌드위치와 해쉬브라운, 마카롱 등이 올라간 모습./사진=SNS, 온라인 커뮤니티

명절이면 온 가족이 둘러앉아 전을 부치고 차례상을 차리던 모습이 사라지고 있다. 올해 추석에 차례를 지낸다는 가구가 10곳 중 3곳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를 지내더라도 가족의 취향과 편의, 비용 등을 고려해 상차림을 간소화하는 추세다.

10가구 중 3곳만 "추석 차례 지낸다"…차례상 간소화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이 지난달 21~26일 전국 가구 소비자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올해 추석에 차례를 지낼 계획이라고 밝힌 가구는 27.3%였다. 지난해 40.4%에서 1년 만에 13.1%포인트 감소했다.

차례를 지낼 계획이 없다는 응답은 65.3%로 전체의 절반을 훌쩍 넘었다.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는 응답은 7.4%였다.

차례를 지내더라도 전통적인 상차림에서 벗어나는 경향이 짙게 나타났다. 차례를 지내는 가구 중 50.9%는 상차림을 간소화하고 있다고 답했다. 가족이 좋아하는 음식 위주로 준비한다는 응답은 13.2%, 가족이 직접 준비하는 음식과 구매한 제품을 함께 사용한다는 응답은 8.8%였다.

반면 전통 예법에 따라 차례상을 준비한다는 응답은 20.1%에 그쳤다.

경기도에 사는 60대 여성 조모씨는 올해 추석에 차례를 지낼 예정이다. 그는 "아직 명절마다 차례상을 차리지만, 점점 간편해지고 있다"며 "자식들은 차례를 지내지 않는다고 한다. 나도 힘이 들어 내년부터는 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잘 먹지도 않는데 비싸기만"…차례상도 '실속'
명절 차례상에 피자와 치킨, 마라탕, 탕후루, 초코바 등이 올라간 모습./사진=SNS, 온라인 커뮤니티

차례상을 간소화하는 배경에는 비용 부담도 자리 잡고 있다. 한국물가협회 조사에 따르면 올해 추석 4인 가족 차례상 비용은 전통시장 기준 30만3750원으로 지난해보다 4.1% 올랐다. 대형마트는 5만7550원이 더 비싼 36만1300원으로 조사됐다.

조씨는 "잘 먹지도 않는데 비싸기만 한 차례 음식 대신 가족들이 평소 좋아하는 음식으로 간편하게 차릴 것"이라고 말했다.

30대 직장인 유모씨는 "몇 년 전부터 차례를 지내지 않는다. 마지막 차례상에는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이 올라갔던 기억이 난다"며 "명절에는 여행을 가거나 가족들끼리 하루 만나 식사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부모님의 명절 스트레스도, 비용 부담도 줄었다"고 했다.

명절 음식을 소비하는 기준도 달라졌다. 농촌진흥청이 지난달 수도권 거주 소비자 패널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추석 농식품을 구매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는 '맛과 실속'이 45.9%로 가장 높았다. '시간과 삶의 질'이 중요하다는 응답도 39.4%를 차지해 두 항목을 합치면 전체의 85.3%에 달했다.

이 같은 변화는 차례상에 나타나고 있다. 배달 음식을 활용하는 등 차례 준비에 드는 시간과 수고를 줄이고 편의를 중시하는 방식이다.

SNS(소셜미디어)에서는 전통적인 제수 음식 대신 가족이 평소 좋아하는 음식을 차례상에 올린 사진들이 공유되고 있다. 마라탕이나 샌드위치, 초코바 등 기존 차례상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웠던 음식들이다.

전통 예법에서도 "간소하게 해도 된다"
한국국학진흥원과 성균관의례정립위원회가 각각 발표한 차례상 간소화 표준안./사진=한국국학진흥원(왼쪽), 성균관의례정립위원회

차례상 간소화가 전통 예법에 어긋나는 것은 아니다. 전통 예법을 연구하는 한국국학진흥원도 가족들이 평소 즐겨 먹거나 조상이 생전에 좋아했던 음식 위주로 차례상을 차리는 것을 권장하고 있다.

성균관의례정립위원회는 2022년 차례상 간소화 표준안을 발표했다. 성균관이 제시한 기본 음식은 떡국(설) 또는 송편(추석), 나물, 구이, 김치, 과일, 술이다. 여기에 육류, 생선, 떡 등을 추가할 수 있다.

음식을 놓는 위치는 가족끼리 합의해 정하면 된다. 그동안 차례상을 차릴 때 지켜야 하는 예법처럼 여겨졌던 '홍동백서'(붉은 과일은 동쪽, 흰 과일은 서쪽)와 '조율이시'(대추·밤·배·감)도 관련 문헌에서 확인되는 표현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특히 손이 많이 가는 전도 반드시 차례상에 올려야 하는 음식이 아니라고 했다. 성균관은 "기름에 튀기거나 지진 음식은 차례상에 꼭 올리지 않아도 된다"며 "전 부치느라 고생하는 일은 이제 그만해도 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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