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A씨와 B씨는 결혼 12년 차 부부로 슬하에 초등학생 자녀 한 명을 두고 있다. 맞벌이를 하는 두 사람은 바쁜 직장생활과 육아로 예전처럼 많은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특별한 문제 없이 결혼생활을 이어왔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 A씨는 남편 B씨가 휴대전화로 누군가와 매일 밤 늦게까지 메시지를 주고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처음에는 다른 여자가 생긴 것이 아닌지 의심했다. 하지만 B씨가 대화를 나누고 있던 상대는 사람이 아니라 인공지능(AI) 챗봇이었다.
B씨는 자신의 취향에 맞게 AI 캐릭터의 성격과 외모 등을 설정한 뒤 마치 연인처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처음에는 회사에서 있었던 일이나 고민을 털어놓는 정도였지만 점차 "보고 싶다", "사랑한다"는 등의 애정 표현까지 주고받기 시작했다. A씨는 남편에게 불쾌하다며 대화를 그만해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B씨는 "실제 사람도 아닌데 무슨 상관이냐"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B씨가 AI와 대화하는 시간은 늘어났다. 부부가 함께 있는 시간에도 휴대전화를 손에서 놓지 않았고, A씨가 자신의 고민을 이야기하면 건성으로 대답하면서도 AI에게는 직장에서 있었던 일부터 개인적인 고민까지 상세하게 털어놓았다. A씨는 자신보다 AI와 더 깊은 정서적 교감을 나누는 남편의 모습에 큰 배신감을 느꼈다.
결국 두 사람은 이 문제로 자주 다투게 됐고 A씨는 B씨와의 이혼을 결심했다. A씨는 남편이 'AI 여자친구'와 연인처럼 대화했다는 이유로 재판상 이혼을 청구할 수 있을까.
A) 남편이 AI와 연인처럼 대화를 나눴다는 사실만으로는 재판상 이혼 사유가 인정되기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 우리 민법 제840조 제1호는 배우자에게 '부정한 행위'가 있었을 때 재판상 이혼을 청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부정한 행위는 반드시 성관계에까지 이르러야 하는 것은 아니며, 부부간의 정조의무에 충실하지 않은 일체의 행위가 포함될 수 있다. 그러나 AI 챗봇은 실제 사람이 아니므로 배우자가 AI와 애정 표현을 주고받고 정서적으로 깊이 의존했다는 사정만으로 이를 일반적인 의미의 배우자의 '부정한 행위'와 동일하게 평가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AI와의 관계가 이혼 문제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배우자가 AI와의 대화에 지나치게 몰두하면서 현실의 배우자와 대화를 단절하고 가사나 육아를 방치하는 등 정상적인 혼인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이 장기간 계속된다면 민법 제840조 제6호의 '기타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에 해당하는지가 문제될 수 있다.
다만 이 사례에서처럼 단순히 배우자가 AI와 많은 대화를 나누고 애정 표현을 했다는 사정만으로 곧바로 혼인관계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파탄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결국 AI와의 관계가 재판상 이혼 사유가 되는지는 'AI에게 사랑한다고 말했는지' 자체보다는 그로 인해 현실의 부부관계가 어느 정도 훼손됐고 혼인관계가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파탄에 이르렀는지를 종합적으로 살펴봐야 한다.
Q) 이후 A씨는 남편 B씨가 AI와 나눈 대화를 자세히 확인하고 더욱 큰 충격을 받았다. 단순히 일상적인 고민이나 애정 표현을 주고받은 것이 아니라 실제 연인 사이에서 나눌 법한 노골적인 성적 대화를 지속적으로 나누고 있었기 때문이다.
B씨는 AI에게 자신의 성적 취향을 이야기하기도 했고, AI 역시 이에 맞춰 연인처럼 대답하고 있었다. A씨는 아무리 상대방이 실제 사람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배우자가 아닌 존재와 이러한 대화를 지속적으로 나눴다면 사실상 외도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B씨가 AI와 성적인 대화를 지속적으로 나눈 사실을 배우자의 '부정한 행위'로 보고 이혼을 청구하거나 위자료를 받을 수 있을까.
A) 현재로서는 AI와 성적인 대화를 나눴다는 사실만으로 민법상 배우자의 '부정한 행위'에 해당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기존의 부정행위는 기본적으로 배우자가 아닌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전제로 판단돼 왔다. AI는 법적인 인격을 가진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AI와 성적·애정적 대화를 주고받았다는 사실만으로 이를 다른 이성과의 외도와 동일하게 평가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B씨가 AI와 성적인 대화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민법 제840조 제1호의 부정행위를 이유로 한 이혼이나 그에 따른 위자료가 당연히 인정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 내용과 정도는 혼인관계 파탄 여부를 판단하는 하나의 사정이 될 수 있다.
배우자가 명확하게 거부 의사를 밝혔음에도 AI와의 성적·정서적 관계에 지속적으로 몰두하고, 이로 인해 실제 부부 사이의 대화나 성생활을 거부하거나 가정생활을 소홀히 하는 상황이 장기간 이어졌다면 그 전체적인 사정을 토대로 민법 제840조 제6호의 '기타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인정될 가능성은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상대방이 사람이냐 AI냐만의 문제가 아니다. AI와의 관계로 인해 현실의 배우자와의 신뢰관계가 얼마나 훼손됐는지, 그로 인해 실제 혼인공동생활이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파탄에 이르렀는지가 재판상 이혼 여부를 판단하는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