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으로 손해를 봤다며 소액주주들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등을 상대로 제기한 2억원 규모의 민사소송에서 이 회장의 손해배상 책임이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0부(부장판사 김석범)는 29일 오전 10시 소액주주 심모씨 등 26명이 이재용 회장과 삼성물산 및 옛 이사들을 상대로 제기한 2억원대 손해배상 소송 1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소송이 제기된 지 약 6년 8개월 만 결론이다. 이 판결이 확정되면 이 회장과 삼성물산, 옛 삼성물산 이사들은 손해배상을 치르지 않게 된다.
재판부는 먼저 삼성물산과 옛 제일모직 합병이 위법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삼성물산은 사업 및 경영의 안정화, 자산가치 제고 및 재무구조 개선, 성장동력 확보 등 사업상 목적을 고려해 이 사건 합병을 추진했다"며 "합병의 목적이 오로지 피고 이재용의 삼성그룹에 대한 지배력 강화에만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자산규모·자산가치 등의 지표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삼성물산-제일모직의 합병 비율이 현저하게 불공정하다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합병 비율이 자본시장법에 따라 주식 가치를 기준으로 외부 전문 평가기관의 평가를 거쳐 산정됐다는 점 △시장 주가가 의도적으로 조작됐다거나 법령상 금지된 행위가 개입됐단 특별한 정황이 발견되지 않은 점 등을 고려했다.
이어 "삼성물산 이사들이 형식적으로 합병을 승인했다거나 국민연금 공단의 지시를 받아 합병했다 볼 만한 증거가 없다"고 덧붙였다.
합병의 위법성이 인정되지 않으면서 이를 전제로 한 옛 삼성물산 이사들의 의무 위반도 인정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이 회장과 삼성물산의 손해배상 책임도 기각됐다. 이 회장과 삼성물산의 책임은 이사들의 불법행위에 가담했음을 전제로 하는데 이사들이 불법행위를 하지 않았다고 판단되면서다.
재판부는 이사들이 삼성물산의 경영상 이익을 위해 합병을 승인한 것이며 이 과정에서 이해 상충 상황이 있었다거나 선관주의의무 및 충실의무를 위반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사들은 △삼성물산의 재정 상황 △경영상 곤란 △합병 시점 및 비율의 적절성 △합병으로 인한 이익 등에 관한 충분한 검토를 거쳤다"고 했다.
그러면서 "주주평등원칙은 주주가 회사와의 법률관계에서 주식 수에 비례해 평등한 대우를 받아야 하는 것"이라며 "서로 다른 회사의 주주들 사이에까지 확대 적용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 사건은 제일모직이 옛 삼성물산을 흡수합병하고 상호를 삼성물산으로 변경하자 옛 삼성물산 주주들이 합병이 위법하다 주장하며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건이다. 옛 삼성물산 주주들은 제일모직과 옛 삼성물산의 합병비율이 1:0.3500885이므로 옛 삼성물산 측에 불공정해 위법하다고 주장하면서 이같은 결정을 한 옛 삼성물산 이사들과 이 회장 등에게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과 참여연대 소속 변호사들로 구성된 대리인단은 2019년 11월부터 합병 당시 삼성물산 주주를 대상으로 원고를 모집해 2020년 2월 서울중앙지법에 소를 제기했다. 소송에는 주주 32명(3만5597주)이 참여했다가 지난 1월 6명은 소를 취하했다.
첫 변론기일이 열리기까지는 약 4년이 걸렸다. 첫 변론은 2024년 2월 진행됐다. 당시 이 회장이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 사건으로 기소돼 재판부는 해당 항소심 결과를 지켜보기 위해 재판을 중단하고 추후기일을 지정했다.
한편 이 회장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부당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 등에 관여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으나 1·2심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대법원도 지난해 7월 공소청의 상고를 기각하면서 무죄가 확정됐다.
이와 별개로 국민연금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으로 인해 피해를 봤다며 이 회장과 삼성물산 등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1심도 서울중앙지법에서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