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팬데믹이 전 세계를 뒤흔들던 2020년 말, 서울 강서구 소재의 한 원룸에서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대한항공 승무원인 20대 여성 A씨가 숨진 채 발견된 것. 오랜 꿈을 이뤄 하늘을 날던 A씨는 당시 코로나19로 인한 '강제 휴직' 상태였다.
"스트레스 너무 많이 받았다" 유서 발견
2020년 11월 7일 서울 강서경찰서에는 "딸이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중년 여성의 다급한 신고가 접수됐다.
신고받고 출동한 경찰은 강서구의 한 원룸에서 승무원 A씨(당시 27세)의 시신을 발견했다. 현장에 외부 침입의 흔적이 없었기에 경찰은 "타살 가능성은 없다"고 판단하고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봤다.
A씨는 2015년 2월에 입사한 대한항공 소속 승무원이었다. 현장에서는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았다. 이 세상을 떠나 좋은 곳으로 간다. 세상에 잘 있었고 내 장기는 기증해달라. 편안한 안식처로 떠나겠다'는 내용의 유서가 발견됐다.
경찰은 사건 이튿날 브리핑을 통해 "A씨가 코로나19 범유행에 의해 항공사에서 강제 휴직 중이었는데, 부친이 2년 전 별세함에 따라 생활고까지 겹치면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휴직 길어지며 대출 원리금 등 생활고 시달려
당시는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승무원들의 휴직이 길어지고 있었다.
대한항공은 4월 15일부터 10월 15일까지 6개월간 진행할 예정이던 유급 순환 휴직을 12월까지 두 달 연장했다. 제주항공, 진에어 등도 2~3월부터 받았던 유급휴직 지원이 대부분 종료되며 무급휴직 전환 수순을 밟고 있었다. 이스타항공은 직원 600여명에게 정리해고를 통보하기도 했다.
A씨 역시 회사 방침에 따라 순환 근무하다 무기한 휴직에 들어간 상태였다. 급여 수준이 평상시 대비 60% 수준으로 줄어든 상황에 원룸 전세대출 1억5000만원의 원리금 부담 등으로 생활고에 시달렸던 것으로 전해졌다.
겸직을 금지한 회사 규정으로 인해 아르바이트 등 부업도 하지 못했다. 2년 전 부친 사망 이후 가장 역할을 맡아 모친과 대학생인 남동생의 생활까지 책임졌던 상황에 심적 부담감이 컸을 것이란 분석이다.
유족 측은 "코로나19가 꿈 많던 아이를 앗아간 것 같아 너무 마음이 아프다"고 토로했다.
10개월 만에 '산재 인정'…"합리적 판단 어려웠다"
이듬해 3월 유족은 "고인이 정상적인 인식능력이 없는 상태에서 자살했으므로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며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 지급을 신청했다.
A씨가 사망한 지 약 10개월이 지난 2021년 9월 근로복지공단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질병판정위)는 A씨 유족 측에 '산업재해를 인정한다'는 심의 결과를 통보했다.
공단은 "A씨의 극단적 선택이 업무상 과도한 스트레스 요인으로 정상적인 인식능력이나 행위 선택 능력, 정신적 억제력이 결여되거나 현저히 저하돼 합리적인 판단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에서 이뤄졌다"고 판단했다.
또 "고용유지 휴직과 겸직금지로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됐을 것으로 판단되고, 복귀 예측이 어려운 유급휴직 기간 급격한 체중감량, 식이 변화, 수면 문제 등이 사망 직전 겪어왔을 것으로 추정되는 우울증 발생과 악화에 연관성이 높을 것으로 보인다"고 판정 이유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