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드는 비타민이다."
2005년 당시 텍사스 레인저스 박찬호가 시즌 5승이자 메이저리그 통산 99승을 기록한 후 자신의 홈페이지에 남긴 문장이다. 이는 그의 야구 인생 전체를 표현하는 말이기도 하다.
1994년 한양대 2학년에 재학중이던 박찬호는 메이저리그 명문 구단인 LA 다저스의 유니폼을 입게 된다. 동양인 선수는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인식됐던 메이저리그에 심지어 국내에선 거의 무명에 가까웠던 선수가 한국인 최초로 도전장을 던진 것이다. 당시 박찬호가 받은 계약금 120만달러는 미국 내 최고 유망주들도 받기 힘든 금액이었다.
박찬호는 다저스 입단 첫해 이례적으로 마이너리그도 거치지 않고 메이저리그 개막전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낯선 이국 땅에서 의사소통은 물론 음식이나 문화, 인종 차별 등 모든 것이 적응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는 그 해 4월9일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를 상대로 데뷔전을 가지는 등 몇 차례 경기에 출전했지만 부진한 투구를 보였고 결국 마이너리그로 강등됐다. 데뷔 20여일만이다.
이후 박찬호는 운동 뿐만 아니라 모든 면에서 끊임없이 수양했다. 개인교사를 통해 단기간 수준급 영어실력을 갖췄고 현지 코치들의 조언을 얻어 문제점을 극복해 나갔다.
그렇게 2년여간 마이너리그 더블 A와 트리플 A에서 뛰며 활약한 그는 다시 실력을 인정받아 1995년 9월 다시 빅리그로 돌아왔다.
풀타임 메이저리그가 된 1996년 4월7일에는 시카고 컵스전에 구원선수로 등판해 강속구를 던졌고 이날 자신의 메이저리그 첫 승이자 한국인 메이저리거의 데뷔 첫 승을 기록했다.
당시 외환 위기로 실의에 빠진 국민들에게 자신감 있는 모습의 박찬호는 영웅이자 희망이었다. 박찬호는 1997년부터 2001년까지 매년 10승 이상을 거두며 다저스의 실질적인 에이스로 자리잡았다. 2002년 텍사스 레이저스로 이적하기 전까지 89승을 기록했고 100승은 그리 멀지 않아 보였다.
그 해 박찬호는 5년 총액 6500만달러를 받으며 텍사스 유니폼으로 갈아입었다. 우리 돈으론 700억원에 이르는 돈이었다. 하지만 허리 부상과 함께 슬럼프가 찾아왔다. 결국 박찬호는 텍사스 이적 후 3년간 단 14승에 그치며 먹튀 선수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는 초심으로 돌아가 다시 낮은 곳에서 시작했다. 그리고 미국 땅을 밟은 지 12년만인 2005년 6월 5일. 한국인 선수 최초이자 동양인 선수 2번째로 통산 100승 고지를 점령해냈다. 동양인 투수로는 앞서 일본 노모 히데오가 개인 통산 100승을 달성했다.
박찬호는 2008년 친정팀인 LA다저스에서 부활에 성공했다. 이후 2010년 뉴욕 양키스에 입단했고 그 해 트레이드된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에서 통산 124승을 거두며 아시아 통산 최다승(123승·노모 히데오)을 넘어섰다. 이 기록은 아직까지 깨지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