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타율 4할의 유격수로 주목받던 광주일고 정휘민(19)이 올해는 낯선 시간을 보내고 있다.
정휘민은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KBSA) 기준 키 176㎝ 몸무게 73㎏ 체격을 지닌 우투우타 내야수다. 홈에서 1루까지 4초 안으로 찍는 빠른 발과 넓은 수비 범위가 인상적인 유격수로 인정받았고, 1학년 때부터 주전으로 뛰었다.
지난해는 저조한 팀 성적에도 자신의 주가를 알린 해였다. 26경기 타율 0.419(74타수 31안타) 21타점 16득점 7도루, OPS(출루율+장타율) 0.997을 마크했다. 2학년 시즌 후 한 KBO 구단 스카우트는 "기본적으로 공을 맞히는 능력이 있고 빠른 발을 활용한 유격수 수비도 좋다. 3학년 때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많은 기대를 모으고 시작했던 3학년 시즌은 기대 이하다. 24일 시점 16경기 타율 0.245(53타수 13안타) 5타점 13득점 3도루, 10볼넷 9삼진, OPS 0.658을 기록 중이다. 최근 광주 무등야구장에서 스타뉴스와 만난 정휘민은 "시즌 초반 주말리그에서 발목에 데드볼을 맞아 조금 좋지 않았다. 지금은 재활이 거의 끝나서 다시 컨디션이 올라오고 있다"라고 떠올렸다.
시작부터 부상이 겹치자 흔히 말하는 고3병도 찾아왔다. 고3병은 고교 유망주들이 신인드래프트를 앞두고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무너지는 현상을 뜻한다. 정휘민은 "지난해는 2학년이다 보니 마음이 편했다. 내가 잘하려고 하기보단 3학년 형들한테 찬스를 만들어주자는 마음으로 하다 보니 야구에 집중할 수 있었다"라며 "올해는 솔직히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다. 그걸 떨쳐내야 하는데 초반에 그러지 못했다. 그래도 재활하면서 그 부담감을 조금은 떨쳐낸 것 같다"고 미소 지었다.
선수 본인은 심적 부담감을 더 큰 이유로 여겼지만, 발목 부상이 예상보다 오래갔다. 3월말 데드볼 직후 초기 검진 결과에는 별 이상이 보이지 않았으나, 이후 정밀 검진 결과 미세 골절이 있었다. 프로 선수도 힘들어하는 미세 골절에 한동안 정휘민은 자책하며 시즌을 치렀다. 조윤채 광주일고 감독이 "(정)휘민이는 법 없이도 살 아이"라고 칭찬한 심성이 오히려 발목을 잡았다.
하지만 그만큼 남다른 야구에 대한 욕심과 열정으로 재활도 마쳤다. 애초에 요즘 선수들에는 생소한 고(故) 최동원을 보며 야구에 빠진 독특한 케이스다.
정휘민은 "원래도 야구를 좋아했는데 초등학교 4학년 때 같이 학원 다니던 친구가 리틀야구에 들어가면 선수들 사인을 받을 수 있다고 해서 시작했다. 그때 최동원 선수를 정말 좋아했다. 내가 직접 뵌 적은 없지만, KBO 레전드 40인 영상과 영화 퍼펙트 게임 등을 보고 정말 멋있는 분이라 생각했다"고 수줍게 웃었다.
유격수로 마음을 잡고서도 언제나 허슬플레이하는 KIA 타이거즈 시절 박찬호(31·두산 베어스)가 그렇게 눈에 들어왔다. 정휘민은 "유격수는 선수들과 소통을 잘하고 전 포지션을 아우를 줄 알아야 하는 자리다. 아무래도 커버해야 하는 범위가 넓다 보니 보여줄 것도 많다고 생각해서 매력적으로 느꼈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금은 두산으로 가셨지만, 박찬호 선수의 수비할 때 모습을 좋아한다. 내가 수비 쪽에서는 범위가 넓고 어깨도 나쁘지 않은 편이다. 주루도 자신 있어서 과감하게 하는 편이다. 타격에서도 빠른 공을 잘 치고 콘택트가 되다 보니 (비슷한 유형의) 박찬호 선배님을 롤모델로 삼고 있다"고 힘줘 말했다.
그간의 성실함은 차츰 결과로도 나오고 있다. 정휘민은 부상 회복 막바지에 들어간 주말리그 후반기에서 6경기 타율 0.316(19타수 6안타)을 기록 중이다. 황금사자기 때 힘들었던 정휘민은 더 이상 없다. 정휘민은 "황사기 때는 부상 영향인지 스윙할 때 힘을 잘 못 실어서 상체가 많이 무너지기도 했다. 마음도 급해지다 보니 공을 다 치고 뛴다는 느낌보단 결과를 만들기 위해 공을 치자마자 1루로 뛰려고 했다"고 냉정하게 부진의 이유를 짚었다.
아직 2027 KBO 신인드래프트까진 2개월이나 남았다. 가뜩이나 야수가 없다는 올해 드래프트에서 '4할 유격수'가 2개월은 다시 자신의 주가를 올리기엔 충분한 시간이다.
정휘민은 "만약 KBO 리그에 간다면 박찬호 선수나 박성한(SSG) 선수 같은 유격수들을 주로 만나보고 싶다. 타자로서는 선발 원태인(삼성) 선수, 마무리 김서현(한화) 선수를 상대해보고 싶다. 원태인 선수의 경기 운영이나 볼 배합을 직접 경험해 보고 싶다. 또 빠른 공에 자신 있다 보니 김서현 선수의 직구를 쳐보고 싶다"고 각오를 내비쳤다.
예상 밖의 이름도 나왔다. 두산 내야수 오명진(25)을 만나보고 싶은 선수로 꼽은 것. 오명진은 대전신흥초-한밭중-세광고를 졸업하고 정휘민과 6살 터울이라 뜻밖이었다. 이에 정휘민은 "예전에 서울에서 잠깐 운동할 때 오명진 선수를 만났다. 내가 낯을 가려서 이야기를 많이 하진 못했는데도, 처음 보는 나를 엄청 잘 챙겨주셔서 감사했다"고 답했다.
지난해 첫 풀타임 시즌을 치른 오명진은 독서를 즐겨하고 자신의 블로그에 독후감을 직접 올리는 모습으로 화제가 됐다. 야구계에서도 성실하고 야구에 열심인 선수로 잘 알려졌다.
정휘민은 "처음 뵙고 이야기를 나눴을 때부터 '되게 좋은 사람이구나'라는 느낌이 왔다. 방망이도 같이 쳤는데 너무 잘 치시고 멋있었다. 맞는 말인지 모르겠지만, 선한 영향력이란 게 이런 거구나를 느꼈다"라며 "오명진 선수가 올해는 생각보다 많이 못 나오시는 것 같은데 항상 경기를 챙겨보고 잘되시길 응원하고 있다. 프로에 가면 꼭 한번 만나보고 싶다"고 응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