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운드 위에서 공수를 연결하던 확실한 연결고리 하나가 사라지자 홍명보호의 전술판은 도미노처럼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무승부만 거둬도 자력으로 32강에 오를 수 있었던 유리한 고지였지만, 최약체 남아프리카공화국에 0-1 충격패를 당하며 조 3위로 추락했다. 멕시코가 체코를 1-0으로 꺾어준 덕분에 조 꼴찌 탈락이라는 최악의 대참사만 간신히 면했을 뿐, 이제는 타 조 상황을 기도하며 지켜봐야 하는 굴욕적인 처지로 전락했다.
이번 남아공전 패배의 가장 결정적인 원인은 중원과 공격진을 매끄럽게 잇던 이재성(마인츠)의 공백, 그리고 이해하기 힘든 홍명보 감독의 교체 전술이었다. 그동안 왕성한 활동량으로 수비에 가담하고 특유의 정교한 링커 역할을 수행하며 대표팀의 밸런스를 잡았던 이재성이 빠지자, 한국 축구는 전반전부터 갈 길을 잃고 시종일관 질질 끌려다녔다.
한국은 전반 내내 밀리며 남아공의 날카로운 역습에 배후 공간을 완전히 노출했다. 전반 초반부터 패스 미스가 남발하며 중원과 수비진의 호흡이 어긋났고, 전반 19분과 전반 중반 음바타와 막고파에게 결정적인 슈팅을 내주는 등 골과 다름없는 위기를 골키퍼 김승규(FC도쿄)의 선방과 수비진의 육탄 방어로 간신히 넘겼다.
답답한 흐름 속에서 홍명보 감독이 선택한 후반전 승부수들은 오히려 최악의 악수가 되었다. 홍 감독은 후반 시작과 동시에 황희찬(울버햄튼 원더러스), 이태석(아우스트리아 빈), 백승호(버밍엄 시티)를 빼고 손흥민(LAFC)과 옌스 카스트로프(묀헨글라트바흐), 김진규(전북 현대)를 투입하는 파격적인 변화를 시도했다.
공격적인 패스를 넣어줄 수 있는 김진규와 오버래핑이 좋은 카스트로프를 투입해 활로를 찾으려 했고, 체력이 비축된 손흥민을 조커로 활용해 상대의 뒷공간을 파괴하겠다는 계산이었다. 하지만 이재성처럼 중심을 잡아주며 경기를 조율할 연결고리가 없는 상태에서 단순히 공격 성향이 강한 선수들만 대거 투입하자 경기력은 더욱 겉돌았다.
설상가상으로 후반 18분 남아공 마세코(리마솔)에게 뼈아픈 선제 실점을 허용하자 전술은 아예 미궁으로 빠졌다. 리드를 잡은 남아공이 곧바로 전원 수비로 전환해 라인을 내리자, 뒷공간을 파고들려던 손흥민은 좁은 공간에 완전히 고립되며 유효 슈팅 0개에 그쳤고 장기인 돌파력을 잃어버렸다.
더욱 이해하기 힘든 선택은 후반 21분에 나왔다. 홍 감독은 동점골이 절실한 상황에서 핵심 중앙 수비수인 김민재(바이에른 뮌헨)를 빼고 박진섭(저장FC)을 투입했다. 이 교체는 결과적으로 수비 안정감을 떨어뜨렸을 뿐만 아니라, 후반 막판 추격의 실마리가 될 수 있었던 세트피스 상황에서의 높이 경쟁력까지 스스로 약화시키는 자멸에 가까운 악수가 되었다.
이재성을 끝내 교체로도 투입하지 않은 채 진행된 한국의 후반 공격은 단조로움의 극치였다. 미드필더진에서 창의적인 패스 전개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한계에 부딪혔다. 밀집 수비를 뚫을 공간이 보이지 않자 이강인(파리 생제르맹)의 개인 능력에 기반한 롱킥에 의존해 후반 교체 투입된 조규성(미트윌란)의 머리만을 노리는 단순한 축구가 반복됐다.
후반 추가시간 6분까지 계속해서 남아공의 골문을 두들겼지만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링커의 부재를 인지하고도 중원 전술을 수정하지 않은 고집, 그리고 공수의 밸런스를 완전히 무너뜨린 무리한 교체 타이밍까지, 어느 것 하나 납득하기 어려운 홍명보 감독의 전술적 오판이 역대급 졸전이라는 가혹한 결과를 낳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