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을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월드컵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사상 최악의 참사로 몰고 간 핵심 책임자들의 행보가 엇갈리고 있다. 홍명보 전 감독이 청문회 출석 의사를 밝히며 정면돌파를 선언한 반면, 감독 선임을 주도했던 이임생 전 대한축구협회 기술본부 총괄이사는 캄보디아 프로축구 무대로 취업해 잠행을 이어가는 분위기다.
현재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는 오는 22일 대한축구협회 청문회 개최를 확정하고 운영 및 감독 선임 과정의 비리 의혹을 파헤치기 위해 준비 중이다.
다만 청문회 일정이 코앞으로 다가왔음에도 주요 증인들의 출석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여기에 참고인들 다수도 불참하는 것으로 알려져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국회가 청문회를 추진하는 시점에 증인으로 채택된 홍명보 전 감독은 미국에, 이임생 전 이사는 캄보디아에 체류하게 되면서 이들의 실제 출석 여부에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현행 국회증언감정법상 청문회는 국정감사나 국정조사와 달리 동행명령 등 강제력이 없다. 따라서 해외 체류 중인 증인은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할 수 있다.
일단 홍명보 전 감독은 먼저 출석 의사를 밝혔다. 9일 홍명보장학재단을 통해 홍 전 감독은 "국가대표팀 감독이라는 막중한 책임을 맡았음에도 월드컵에서 국민 여러분께서 기대하셨던 결과를 만들어드리지 못했다"며 "그 결과에 대한 모든 책임은 감독인 저에게 있다. 기대와 응원에 보답하지 못했고, 많은 분께 실망과 상처를 드렸다. 감독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이며 다시 한번 깊이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미국 체류에 대해서는 신변 안전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다고 해명하며 "청문회가 열린다면 그 자리는 월드컵 결과에 대해 국민 여러분께 설명드리는 자리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 자리에 서야 할 사람도 감독인 저다. 결과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감독인 저에게 있기에, 청문회가 열린다면 감독으로서 제가 감당해야 할 책임 역시 저 혼자 끝까지 감당하겠다"고 국회 청문회 출석 의사를 명확히 밝혔다.
이밖에 축구협회에서 현직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용수·김병지 부회장 등 증인 명단에 오른 협회 인사 4명도 청문회에 나오겠다는 뜻을 공표했다. 하지만 정작 정몽규 전 대한축구협회장과 홍 전 감독의 선임 과정을 주도한 핵심 인물인 이임생 전 기술이사 측은 아직까지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 전 이사와 정 전 회장 모두 참석이 의무지만, 일정이나 건강 등을 핑계로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고 버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특히 이 전 이사는 월드컵 탈락 이후 축구계의 거센 비판 여론 속에서 공식 석상에 아예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숨어버렸다. 최근 사적인 행사에 참석한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으나 대중의 눈을 피해 책임 회피형 행보를 보이더니, 결국 사과 한마디 없이 캄보디아 프로축구 나가월드FC의 테크니컬 디렉터로 부임하며 한국을 떠났다.
이 전 이사가 조용히 해외로 떠났음에도 팬들의 분노는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현재 이 전 이사가 취업한 나가월드 구단의 공식 유튜브 채널에는 그를 비판하기 위해 집결한 한국 팬들의 항의가 쏟아지고 있다. 평소 수백 회 수준에 불과했던 구단 유튜브 채널의 가장 최근 게시글 조회수는 이 전 이사 부임 이후 1000회를 돌파했고, 댓글 창은 이 전 이사를 향한 한국 팬들의 원성으로 채워졌다.
팬들이 이토록 분노하는 이유는 이 전 이사가 감독 선임 과정에서 보여준 독단적인 행보와 위증 혐의 때문이다. 과거 국회 문체위 현안 질의 당시 이 전 이사는 눈물까지 흘리며 결백을 호소했으나, 결국 국회를 상대로 거짓말을 한 사실이 드러나 위증 혐의로 고발당했다.
당시 이 전 이사는 국가대표 사령탑 면담 과정에서 누가 동행했냐는 국회의 질문에 대해 "홍명보 감독이 자주 가는 빵집이라 오후 11시부터 오전 1시까지 둘이서만 만나 대화했다"고 답변했다. 공식 브리핑에서도 자신의 의지와 결정으로 홍 감독을 만났다며 "감독 선임의 모든 과정은 홀로 진행했다"고 전권을 강조했다.
하지만 조사 결과 해당 면담 자리에는 홍 전 감독과 오랜 기간 축구협회에서 함께 일했던 최영일 축구협회 부회장이 동행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최 부회장이 동석 사실을 인정하면서 이 전 이사의 독대 주장은 명백한 위증으로 드러났다. 이 전 이사는 의혹이 불거지자 "명예가 걸렸다"라며 눈물로 사퇴 의사를 밝힌 바 있다.
감독 선임의 전권을 쥐고 흔들던 핵심 책임자는 캄보디아로 떠나 숨어버렸고, 행정 수장은 이름 뒤에 숨어 침묵으로 시간을 때우고 있다. 홍 전 감독이 청문회 출석을 예고하며 정면돌파 의지를 밝힌 가운데, 이 전 이사가 과연 한국으로 돌아와 청문회 무대에 설지 지켜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