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4회 끝나고 바뀌는 거였는데..."
알면 알수록 흥미로운 비하인드다. KT 위즈 이강철(60) 감독과 배제성(30)이 373일 만의 승리 뒷이야기를 공개했다.
배제성은 1일 수원KT위즈파크에서 열린 2026 신한 SOL KBO 리그 정규시즌 한화 이글스와 홈 경기에 선발 등판해 5이닝 7피안타(2피홈런) 2볼넷 3탈삼진 4실점으로 KT의 7-4 승리를 이끌었다.
KT를 5월 23일 이후 70일 만에 1위로 올려놓은 귀중한 승리이기도 했다. 버텨낸 끝에 얻어낸 승리였다. 3회초 첫 실점 뒤 타선으로부터 3회말에만 7점을 지원받았으나, 4회초 노시환에게 좌월 솔로포, 허인서에게 좌월 투런포를 맞아 다시 쫓겼다.
예정대로라면 4회말까지만 던지고 교체되는 것이었다. 4회까지 투구 수는 65개에 불과했지만, 올해 줄곧 불펜으로 뛰다 갑자기 선발 등판하게 된 점이 고려됐다. 경기 후 취재진과 만난 배제성은 "4회 끝나고 바뀌는 거라 나도 끝내려고 했는데, 갑자기 한 이닝 더 가자고 하셨다. 사실 난 괜찮았다. 못 던져서 빨리 바뀌는 건 괜찮은데, 잘 던지면 120개까지도 던지겠다고 했었다"고 웃었다.
교체되지 않은 이유가 다음 날 공개됐다. 이강철 감독은 "(배)제성이를 바꿀까 하다가 그냥 더 던지라고 했다. 첫 두 타자에게 안타, 볼넷을 내주는 순간 바꿀 순 없다고 생각해서 그냥 맡겼다"고 떠올렸다.
무사 1, 2루가 된 후 한화 타순은 우타자 한지윤, 좌타자 강백호, 다시 우타자 노시환으로 이어지는 지그재그 클린업 타선이었다. 한지윤의 일발 장타력은 경계할 만했지만, 그렇다고 바꾸기엔 애매했다.
이강철 감독은 "원래는 (전)용주를 내려고 했는데 오른손인 한지윤이라 애매했다. 또 한 타자만 막고 바꾸기엔 6~9회에 던질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한지윤에게 슬라이더를 던져 잘 막고 해결해주길 바랐다. 잘 막으면 용주나 (우)규민이를 투입하려고 하는데 그때 삼중살이 나오더라"고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사령탑이 이리저리 고민하는 사이 KT와 배제성에게는 최고의 상황이 연출됐다. 배제성이 한지윤에게 유도한 타구가 3루 베이스 근처의 허경민에게 곧장 향하면서 순식간에 삼중살로 이어진 것. 베테랑 내야수 허경민, 김상수, 오윤석의 기민한 플레이가 돋보였다.
그렇게 승리투수 요건을 챙긴 배제성은 팀 타선과 불펜의 도움으로 지난해 7월 24일 창원 NC 다이노스전(5이닝 3실점) 이후 373일 만에 승리 투수가 됐다.
배제성 역시 삼중살이 완성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는 "(허)경민이 형이 라인 안쪽에서 공을 잡는 순간, 무조건 (아웃 카운트) 두 개는 잡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야수들이 빠르게 움직여 1루까지 아웃이 됐다. 다음 타자가 (강)백호였기 때문에 더 힘들어질 수도 있었는데 정말 다행이었다"고 말했다.
극적으로 승리투수 요건을 갖췄지만 크게 기뻐할 여유도 없었다. 배제성은 "전 이닝에 장타를 맞은 게 아직 회복되지 않은 상태라 삼중살이 나왔을 때도 감흥이 크게 몰려오지는 않았다"고 돌아봤다.
이번 승리가 더욱 값진 건 시즌 초반 겪은 우여곡절 때문이다. 배제성은 스프링캠프에서 선발진 진입을 기대할 만큼 좋은 컨디션을 보였으나, 어깨 통증으로 계획이 꼬였다. 이후 불펜에서 시즌을 시작했고 선발과 중간을 오가며 정해진 보직 없이 기회를 기다렸다.
배제성은 "캠프 때는 몸 상태와 투구 밸런스가 이렇게 좋을 수 있나 싶었다. 그런데 어깨에 문제가 생긴 뒤 밸런스가 계속 흔들렸다"라며 "몸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건 내 잘못이고 너무 아쉬웠다"고 속마음을 털어놨다.
아직 몸 상태가 완벽한 것도 아니다. 배제성은 "100%는 아니지만, 검사를 했을 때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조금 이물감은 있어도 몸을 해치는 정도는 아니다. 트레이닝 파트에서 철저하게 관리해준 덕분에 시즌을 치르는 데 큰 문제 없이 던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승리를 따냈지만, 배제성은 개인 기록보다 팀의 1위 등극에 더 큰 의미를 뒀다. 그는 "사실 팀이나 팬분들이 내게 거는 기대에 비해 성적이 나오지 않고 있다고 생각한다. 조금 창피하고 죄송한 마음도 크다"고 솔직한 심정을 밝혔다.
이어 "남은 시즌과 포스트시즌에서 조금이라도 승리에 보탬이 되고 싶다. 결국 팀이 우승하면 다 좋은 일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은 팀 순위만 신경 쓰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KT는 9월 열릴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기간 소형준(25)과 박영현(23) 등 핵심 투수들의 이탈이 예정돼 있다. 선발과 불펜을 모두 경험한 배제성에게 다시 중요한 역할이 주어질 가능성이 크다.
배제성은 "예전에는 내 자리가 있는 상태에서 시즌을 치렀다. 지금 상황은 결국 내 능력 부족으로 생긴 것"이라면서도 "그렇다고 욕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띄엄띄엄 기회가 올 때 조금씩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각오를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