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화성을 배경으로 한자로 '水原(수원)'이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방망이를 들었다. 미국에서 온 외국인 타자 샘 힐리어드(32·KT 위즈)가 '정조대왕'으로 변신하자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KT가 수원도시디자인재단과 함께 기획한 '2026 kt wiz 정조 유니폼'은 연고지 수원을 상징하는 정조대왕을 모티브로 제작됐다. 여러 빛깔이 하나로 이어지는 모습을 통해 구단과 팬의 화합을 표현한 특별 유니폼으로, 8일 오후부터 정식 판매도 시작된다.
그러나 유니폼 공개 당시 팬들의 시선은 디자인 못지않게 모델에게 쏠렸다. 긴 머리와 수염, 훤칠한 체격을 지닌 힐리어드가 수원 화성 앞에서 방망이를 든 모습이 묘하게 정조대왕 콘셉트와 어울렸기 때문. 2년 전 KT 효자 외인 윌리엄 쿠에바스(36)가 정조대왕 유니폼을 입었을 때와 비슷한 반응이었다.
힐리어드의 사진이 온라인에 퍼지자 팬들의 놀이가 시작됐다. KBO 구단은 물론이고 과거 프로야구 유니폼, 특별 에디션 유니폼과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유니폼까지 등장했다. 인공지능(AI)을 이용해 힐리어드에게 각양각색의 유니폼을 입힌 사진들이 만들어졌다.
최근 광주에서 스타뉴스와 만난 힐리어드에게 팬들이 만든 사진들을 직접 보여줬다. 이에 힐리어드는 "통역을 통해 봤다. 내가 본 건 지금 보여주신 것들이 거의 전부"라며 "요즘 AI 기술이 발전하면서 이런 것들이 많이 나오는 것 같다. 내 모습을 그런 식으로 만들어 놓은 걸 보면 조금 어색하고 신기하다"고 웃었다.
무엇보다 힐리어드가 반긴 건 KT 팬만의 놀이로 끝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그는 "우리 팬들뿐 아니라 다른 팀 팬들도 그렇게 해준다는 건 나를 재미있게 생각해주시고, 함께 즐기자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좋은 의미에서 해주신 거라고 생각해서 나도 즐거운 마음으로 봤다"고 고마움을 나타냈다.
정조대왕 유니폼을 으뜸으로 친 힐리어드에게 수많은 합성본 유니폼 중에서는 '원픽'이 있는질 물었다. 그는 "대부분 KBO 유니폼인데 마이애미 말린스 버전은 MLB 유니폼이라 달라 보였다"라며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LG 크리스마스 유니폼이 제일 마음에 든다"라고 답했다.
가족들의 반응도 유쾌했다. 최근 힐리어드는 둘째 아들을 출산했고, 고생한 며느리와 손주를 보기 위해 어머니 타마라 씨도 한국에 방문한 상태다. 힐리어드는 "가족들은 사진이 잘 나왔다고 했다. 사실 내가 못생기게 나왔어도 가족들은 잘 나왔다고 했을 것이다. 그게 가족의 역할"이라고 웃었다.
힐리어드가 한국 팬들의 관심을 크게 체감한 건 화보 때문만은 아니다. 올해 처음 KBO 리그에 온 그는 116경기 타율 0.295(457타수 135안타) 32홈런 104타점, OPS 0.919를 기록하며 KT 중심타선을 이끌고 있다. 외야수 골든글러브 경쟁까지 나설 정도로 성적에서도 확실히 존재감을 보였다.
좋은 활약만큼 팬들과 거리도 빠르게 가까워졌다. 힐리어드는 힐리어드는 "한국 팬들은 굉장히 친절하다. 선물도 많이 주시는데 미국에서는 이런 경험이 거의 없었다"라며 "미국에서 내가 먹던 과자나 간식을 어떻게 구하셨는지 선물해주시고, 최근에는 내 이름과 첫째 아들 잭슨의 이름이 적힌 가방 네임태그를 주신 분이 있어 굉장히 인상 깊었다. 정말 세심하고 배려 깊다고 느꼈고 이 자리를 빌려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고 고개를 숙였다.
힐리어드에게 한국은 처음 생활해보는 나라이고 KBO 리그 역시 처음 경험하는 무대다. 처음에는 타석에서 투수들을 알아가는 데 시간이 필요했고, 야구장 안팎의 문화도 미국과 달랐다. 그러나 한 시즌을 채 보내기도 전에 힐리어드는 어느새 수원의 역사적 인물을 모티브로 한 유니폼의 모델이 됐고, 다른 팀 팬들이 자기 팀 유니폼을 입혀보고 싶어 하는 선수가 됐다.
힐리어드는 그런 관심을 부담이 아닌 애정으로 받아들였다. 정조대왕 유니폼 한 벌에서 시작한 사진은 수많은 유니폼으로 늘어났다. 힐리어드에게는 그것 역시 자신이 낯선 한국에서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지를 알려준 특별한 방식의 팬레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