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건창(37·키움 히어로즈)이 나가면 무슨 일이 생긴다. 5년 만에 돌아온 히어로즈의 '돌격대장'이 이번에는 갈 길 바쁜 LG 트윈스를 무너뜨렸다.
서건창은 8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6 신한 SOL KBO 리그 LG와 방문 경기에 1번 지명타자로 선발 출장해 5타수 2안타 1타점 1득점으로 키움 히어로즈의 8-3 승리를 이끌었다. 최하위 키움은 2연승을 달렸고, 3위 수성이 급한 LG는 3연패에 빠졌다.
승부의 흐름을 완전히 키움 쪽으로 가져온 것도 서건창의 출루였다. 키움이 1-0으로 근소하게 앞선 5회초 선두타자로 나선 서건창은 좌중간 외야를 가르는 대형 3루타를 터트렸다. 단숨에 무사 3루. 추재현의 몸에 맞는 공에 이어 맷 데이비슨과 케스턴 히우라가 연속 적시타를 터트렸고, 이후 LG 불펜이 세 타자 연속 밀어내기 볼넷까지 내주면서 키움은 5회에만 6점을 뽑았다.
한 번 출루로 시작된 공격이 빅이닝으로 번졌다. 끝도 서건창이 장식했다. 7회초 2사 1, 2루에서 중전 적시타를 터트려 8-0까지 달아났다. 이날 키움은 박주홍을 제외한 선발타자 전원이 안타를 기록했지만, 공격의 처음과 마지막에는 리드오프 서건창이 있었다.
서건창 역시 경기 후 "오늘 (하)영민이가 너무 잘 던져줬다. 그래서 선두타자 출루가 무엇보다 중요했는데 5회 안타로 찬스를 만들 수 있어 다행"이라며 "선수들이 한마음으로 힘을 모아 만든 승리라 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타석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것도 도움이 됐다. 서건창은 "시즌 막바지라 지칠 수 있는 시기다. 지명타자로 출전하면 체력적으로 안배가 되기도 하지만 그만큼 타석에서 책임감도 커지기 때문에 더 집중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올 시즌 서건창이 보여주는 모습은 단순한 '노장 투혼'과 거리가 있다. 성적으로도 리그 정상급 2루수들과 경쟁하고 있다. 서건창은 올해 92경기에서 타율 0.313(358타수 112안타) 3홈런 32타점 60득점, 출루율 0.403 장타율 0.402 OPS(출루율+장타율) 0.805를 기록 중이다.
팀이 최하위에 머물러 있어 누적 기록에서는 불리하다. 그래도 규정타석을 소화한 2루수 가운데 최다안타와 득점 4위, 타점 7위다. 반면 타율과 출루율은 나란히 2위다.
수비 부담도 다시 늘렸다. 2021년 이후 처음으로 2루수 수비 이닝이 600이닝을 넘어 현재 621이닝에 달한다. 남은 경기에서 골든글러브 후보 수비이닝 기준까지 채운다면 2016년 이후 10년 만의 황금 장갑도 괜한 말은 아니다.
키움이 지난달 보여준 파격적인 선택이 새삼 눈길을 끄는 이유다. 키움은 지난 5월 서건창과 2027~2028년 2년 최대 6억원의 비 FA 다년계약을 체결했다. 그런데 시즌 도중인 8월 31일 구단이 먼저 옵션 특약을 추가하면서 최대 수령액을 12억 원으로 두 배 높였다. 충분히 달성할 수 있는 옵션으로 사실상 보장액을 상향한 이례적인 결정이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예상보다 훨씬 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2008년 LG 육성선수로 프로 생활을 시작한 서건창은 넥센 히어로즈(현 키움) 시절인 2014년 KBO 최초 단일시즌 200안타를 넘어 201안타를 기록하며 MVP에 올랐다. 이후 LG와 KIA를 거쳤고 지난해에는 KIA에서 단 10경기 타율 0.136에 그친 뒤 방출됐다.
그렇게 5년 만에 돌아온 친정에서 다시 '서 교수'가 됐다. 구단은 계약 조건을 상향하면서 경기력뿐 아니라 리더십과 팀 기여도를 재평가했다고 설명했다. 서건창 역시 "구단이 내게 어떤 역할을 기대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는 만큼 더 큰 책임감도 느낀다. 개인 성적에만 집중하기보다 후배들을 잘 이끌고 팀에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선수가 되겠다"고 각오를 내비쳤다.
말로만 가르치지 않는다. 37세에도 몸을 날리고, 3루까지 뛰고, 가장 먼저 출루하며 어린 후배들에게 시시때때로 특강을 연다. 그 강의를 수강한 유망주들은 나날이 성장하는 모습이 보인다. 상대 팀들이 최하위임에도 키움을 까다로워하는 이유다.
키움이 먼저 계약 금액을 올려준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10년 만의 황금장갑까지 바라보는 '서 교수'의 강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