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이상학 객원기자] 실패한 포수로 끝날 뻔한 야구 인생이 드라마틱하게 바뀌었다. 메이저리그 통산 500세이브 위업을 눈앞에 둔 켄리 잰슨(38·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이 포수를 포기하고 투수가 된 것은 그야말로 신의 한 수였다.
미국 ‘USA투데이 스포츠’는 지난 14일(이하 한국시간) 통산 500세이브까지 5개를 남겨둔 잰슨의 이야기를 전했다. 지난 2010년 LA 다저스에서 데뷔한 뒤 올해까지 17시즌 통산 495세이브를 기록 중인 잰슨은 마리아노 리베라(652개), 트레버 호프먼(601개)에 이어 역대 3번째 500세이브를 앞두고 있다. 전설적인 두 마무리 모두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고, 잰슨도 그들의 길을 뒤따르고 있다.
잰슨은 “그 기록에 가까워지다니 정말 놀랍다. 내가 어떻게 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었을까? 믿을 수 없다. 시간이 얼마나 빨리 흐르는지 보여주는 것 같다”며 지난 2009년 7월 다저스 마이너리그 시절 투수로 포지션을 바꿀 때를 떠올렸다.
네덜란드령 퀴라소 출신 잰슨은 원래 포수였다. 지난 2006년 클레이튼 커쇼가 다저스에 입단한 뒤 루키리그에서 프로 첫 경기를 치를 때 공을 받아준 포수가 잰슨이었다. 강견을 앞세운 수비력은 우수했지만 타격이 너무 약했다. 2009년에는 하이 싱글A, 트리플A에서 타율 1할대(.198)에 그쳤다. 트리플A에선 타율 1할8푼5리(27타수 5안타)로 장타는 하나도 없었다.
당시 다저스 선수 육성 부사장이었던 데 존 왓슨이 트리플A 앨버커키에 있던 잰슨을 찾아가 솔직하게 평가하며 포지션 전향을 권유했다. “메이저리거가 되고 싶다면 포수를 그만두고 강속구를 던지는 구원투수로 전향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휴스턴 애스트로스 임원인 왓슨은 “잰슨은 그 말을 듣고 싶어 하지 않았다. 단호하게 반대하길래 가족과 상의해 보라고 했다. 부모님과 대화한 잰슨은 하루 뒤 ‘한번 해보자’고 말했다”고 회상했다.
잰슨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그날이 아직도 기억난다. 난 투수를 하고 싶지 않았고, 왓슨에게 계속 포수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부모님과 상의했고, 아버지께서는 내가 투수가 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선 결심이 수월해졌다”고 돌아봤다.
포수를 접고 투수가 된 잰슨은 싱글A로 내려가 찰리 허프 투수코치와 함께 새롭게 시작했다. 불펜 피칭에서 시속 95~97마일 공을 던졌고, 첫 등판부터 96~99마일 강속구로 3타자 연속 삼진을 잡았다. 허프 코치는 왓슨에게 “세상에, 우리 물건 하나 건진 것 같다”며 감탄했다. 잰슨도 “그 순간 ‘이건 뭔가 특별한 일이 일어날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던 게 기억난다”고 떠올렸다.
왓슨의 말이 맞았다. 투수 전향 1년 만에 메이저리그 데뷔 꿈을 이룬 잰슨은 2012년부터 마무리로 자리잡았다. 2021년까지 다저스에서 12시즌 통산 350세이브를 거두며 구단 최다 기록을 쌓은 뒤 FA로 떠났다. 다저스와 결별할 때 구위가 예전 같지 않아 마무리로서 경쟁력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이후 5년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41개), 보스턴 레드삭스(56개), LA 에인절스(29개), 디트로이트(19개) 등 4개 팀에서 145세이브를 더했다.
잰슨은 “500세이브를 달성하면 왓슨에게서 전화가 올 것이다. 그는 내게 ‘어때? 너 투수하기 싫어했잖아. 지금 네 모습을 봐’라고 말할 것이다. 500세이브를 하면 그 얘기를 실컷 듣게 될 것이다”며 “정말 기다려진다. 왓슨이 나를 위해 해준 일에 대해 정말 감사하다. 그는 나를 항상 엄격하게 대했고,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내 안에 특별한 무언가를 봤다. 내가 스스로를 믿기 전부터 나를 믿어줬다. 그가 없었다면 여기까지 올 수 없었을 것이다”고 진심을 표했다.
잰슨의 인생을 바꿔준 왓슨도 “500세이브 순간이 정말 기다려진다. 잰슨은 여기까지 오기 위해 정말 열심히 노력해왔고, 성공을 이어가며 계속 한 단계씩 올라가고 있다. 놀라운 여정이다”며 흐뭇해했다. /waw@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