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100%' 韓 대표팀 막은 투수가 '직장인'? 日 사회인은 매년 10명 이상 NPB 간다... '천만 관중' 한국 야구가 외면했던 '두 번째 길'

김동윤 기자
2026.09.28 11:10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결승에서 한국 야구 대표팀이 일본을 3-1로 꺾고 5회 연속 정상에 올랐다. 하지만 슈퍼라운드에서 한국 타선을 무실점으로 막아낸 일본의 히구치 신 투수는 프로가 아닌 사회인야구 소속으로 밝혀져 일본의 탄탄한 선수 육성 시스템이 주목받았다. 이만수 전 감독과 염경엽 감독 등 야구계 인사들은 한국도 고교 졸업 후에도 성장을 기다려줄 수 있는 실업야구와 같은 체계적인 재도전 경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일본 좌완 히구치가 27일 일본 아이치현 도요하시 시민구장에서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야구 슈퍼라운드 한국과 일본 결승전에서 선발로 나와 역투하고 있다. 2026.09.27. /사진=강영조 선임기자

열아홉 살에 프로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고 그 선수의 야구 인생까지 끝나야 할까.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은 한국 야구에 금메달뿐 아니라 이런 질문도 남겼다.

류지현(55) 감독이 이끄는 한국 야구 국가대표팀은 27일 일본 아이치현 도요하시 시민구장에서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결승에서 일본을 3-1로 꺾었다. 2010 광저우를 시작으로 2014 인천, 2018 자카르타·팔렘방, 2023년 열린 2022 항저우 대회에 이어 무려 5회 연속 정상이다.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가장 큰 위기는 지난 25일 일본과 슈퍼라운드 1차전이었다. 당시 한국은 일본에 0-5로 완패했다. 이날 100% 프로 선수로 구성된 한국의 타자들을 7이닝 무실점으로 막은 투수는 일본프로야구(NPB) 선수가 아니었다. 일본 사회인야구 오지 소속의 왼손 투수 히구치 신(24)이었다. 히구치는 시속 150㎞를 훌쩍 넘나드는 강속구 대신 정교한 제구와 완급조절로 한국 타선을 압도했다. 한일전 활약으로 일본에서 그는 오는 10월 열릴 NPB 신인드래프트 상위 지명 후보로 평가받고 있다.

일본에서는 실제 '사회인야구'라고 부르지만, 한국에서 흔히 떠올리는 직장인 동호회 야구와 성격이 다르다. 토요타자동차, ENEOS, 일본생명, 일본제철, JR 등 기업에 소속돼 급여를 받으면서 높은 수준의 훈련과 전국대회를 이어가는 엘리트 야구의 한 축이다.

프로로 이어지는 길도 탄탄하다. 일본야구연맹(JABA) 공식 발표와 NPB 드래프트 집계를 종합하면 2021년과 2022년 각각 15명, 2023년 14명, 2024년 13명, 2025년 12명의 사회인 선수가 NPB 지명을 받았다. 최근 5년 동안 단 한 해도 두 자릿수 아래로 떨어지지 않았다.

일본 NPB 야쿠르트의 요시무라 고지로(왼쪽), 요코하마의 와타라이 류키. 두 사람은 각각 일본 사회인야구 출신으로 NPB 신인드래프트 1순위 지명을 받았다. /사진=요코하마 베이스타즈, 야쿠르트 스왈로즈 구단 공식 SNS 갈무리

1순위도 꾸준히 나온다. 2022년에는 도시바의 요시무라 고지로(28·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 2023년에는 ENEOS의 와타라이 류키(24·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가 각각 1순위로 지명됐다. 2024년에도 NTT서일본의 이하라 다카토(26·한신 타이거스)와 미쓰비시중공업West의 다케다 유(27·요코하마)가, 지난해에는 사기노미야제작소의 다케마루 가즈유키(24·요미우리 자이언츠)가 1순위로 프로에 입성했다.

사회인야구를 프로 진출을 위한 하나의 경로로 선택하는 선수도 있다. 와타라이는 요코하마고 3학년이던 2020년 프로 지명을 받지 못했다. 대학 대신 ENEOS를 택했다. 이유는 오히려 프로에 더 빨리 가고 싶어서였다. 그는 또다른 일본 스포츠 매체 '넘버'와 인터뷰에서 "1년이라도 빨리 프로에 가고 싶었다. 대학은 4년이지만 사회인이라면 3년이면 갈 수 있다"고 밝혔다. 그 3년 동안 와타라이는 타격 파워와 콘택트 능력을 키웠고 내야뿐 아니라 외야 수비도 익히면서 3년 뒤 열린 2023 NPB 드래프트에서는 요코하마와 주니치, 롯데까지 무려 3개 구단이 1순위로 경쟁하는 선수가 됐다.

요시무라는 조금 다른 길을 걸었다. '넘버'에 따르면 요시무라는 대학 졸업 당시 프로의 선택을 받지 못해 도시바에 입사했고 사회인 1년 차에는 오른쪽 어깨 부상까지 있었다. 재활하며 몸과 투구폼을 다시 만들었고 사회인 2년 차 드래프트에서도 지명받지 못했지만, 한 해를 더 준비한 끝에 2022년 야쿠르트의 1순위 지명을 받았다.

일본야구의 제도 자체가 선수에게 성장할 시간을 보장한다. NPB 공식 규정에 따르면 일본야구연맹 소속 선수는 등록 후 2시즌 동안 NPB 구단과 계약할 수 없으며 고교 또는 중학교 졸업 선수는 그 기간이 3시즌이다. 고졸 선수가 사회인에 들어가면 최소 3년, 대졸 선수라면 통상 2년간 사회인 무대에서 기량을 쌓은 뒤 다시 프로에 도전하는 구조다.

롯데 박정민이 최근 부산 사직야구장에서 스타뉴스와 만나 인터뷰했다. /사진=김동윤 기자

경기를 지켜본 이만수(68) 전 감독도 단순히 한일전 결과가 아닌 일본 야구의 시스템에 주목했다. 이 전 감독은 "이번에 출전한 일본 대표선수들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런 사회인야구 선수들이 아니다. 일본에서는 실제로 '사회인야구'라고 부르지만 우리 식으로 쉽게 말하면 소위 실업야구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이어 "모든 선수가 열아홉, 스무 살에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조금 늦게 성장하는 선수도 있고, 스물두 살, 스물세 살이 되어서야 자신의 야구를 찾는 선수도 있다"며 "한두 해 늦게 꽃을 피운다는 이유로 그 선수의 야구 인생까지 끝나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한국에도 이미 비슷한 사례가 있다. 롯데 자이언츠 우완 투수 박정민(23)은 장충고 졸업 당시 프로의 선택을 받지 못했지만, 한일장신대에서 4년을 보낸 뒤 2026 KBO 신인드래프트 2라운드 전체 14순위로 롯데 유니폼을 입었다. 박정민은 올해 스타뉴스와 인터뷰에서 "지금 와서 돌아보면 나는 4년이 필요한 선수였다"고 말했다. 저학년 때는 구속, 3학년에는 변화구와 경기 운영, 4학년에는 커맨드를 집중적으로 다듬었다. "4년이 있었기에 체계적으로 준비하고 성장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그동안 대학야구는 고교 졸업 당시 프로의 선택을 받지 못한 선수들이 향하는 '재도전의 무대' 정도로 평가절하되기도 했다. 실제 현장에서는 좋은 유망주 대부분이 고교 졸업과 동시에 프로로 향한다는 의미에서 "좋은 원석은 이미 다 프로에 갔다"는 자조도 나왔다.

하지만 올해 9월 열린 2027 KBO 신인드래프트는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줬다. 전체 지명 선수 110명 가운데 고교 선수가 87명으로 가장 많았지만 대학 선수도 22명이 프로의 선택을 받았다. 이 가운데 4명은 졸업 전 프로에 도전한 얼리드래프트 참가자였다. 대학 진학이 모든 선수에게 정답일 순 없으나, 올해 신인드래프트와 박정민의 사례는 고교 시절 한 차례 평가만으로는 확인할 수 없었던 가능성이 몇 년 뒤 꽃피는 선수도 존재한다는 좋은 사례다.

'2027 KBO 신인 드래프트'가 21일 서울 송파구 롯데호텔 월드 크리스탈볼룸에서 열렸다. 하현승을 비롯한 신인 선수들이 허구연 총재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올해 신인드래프트에는 최근 들어 가장 많은 22명의 대학 선수가 프로 지명을 받는 데 성공했다. /사진=김진경 대기자

그렇다면 대학 다음의 길도 조금 더 넓힐 수는 없을까. 염경엽(58) LG 트윈스 감독은 지난 5월 실업야구 이야기가 나오자 자신의 선수 시절을 떠올렸다. 염 감독은 "우리 때 가장 좋았던 게 졸업하면 100% 취업이었다. 프로에 갈 사람은 프로에 가고, 실업에 갈 사람은 실업에 갔다"라며 농협과 은행 등에 입사해 야구를 계속했던 당시 선수들의 모습을 설명했다.

이어 "실업야구로 활성화하면 훨씬 많이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야구를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독립리그만으로는 쉽지 않다"며 "회사 일을 하면서 야구도 하고 주말에 야구하고, 경기가 있을 때는 오전에 근무하고 오후에 훈련하는 식으로 옛날에는 그렇게 했다"고 덧붙였다.

그로부터 석 달 뒤에는 선수 육성의 문제도 짚었다. 염 감독은 "재능을 가지고 있어도 기본기가 바탕이 안 되면 연속성이 나오지 않는다. 제일 중요한 게 아마추어에서는 기본기"라며 "과거에는 대학과 실업에서 기본기를 쌓은 선수들이 프로에 입단하자마자 1군 경쟁을 했지만, 최근에는 프로 입단 뒤 기본기부터 다시 가르쳐야 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물론 과거의 실업야구를 그대로 되살리는 것만이 답은 아니다. 기업에 일방적인 희생을 요구해서도 지속되기 어렵다. 그렇다면 일본은 어떤 취지로 실업야구를 운영할까. 일본야구연맹은 기업이 사회인야구단을 운영하는 의미로 임직원의 사기와 일체감 향상, 회사와 지역사회에 기여할 인재 육성, 지역 스포츠 발전과 사회공헌을 꼽는다. 도시대항전에서는 임직원뿐 아니라 가족과 거래처, 지역 주민까지 회사 이름 아래 함께 응원한다. 야구교실 등 지역 활동도 기업팀의 중요한 역할로 여겨진다.

이만수 전 감독. /사진=김동윤 기자

반드시 거대 기업 하나가 모든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올해 4월 일본야구연맹의 소개에 따르면 지난해 출범한 일본 오이타현 사이키시 경식야구단은 지역 기업 12곳이 만든 협동조합이 선수들을 고용한 뒤 건설회사와 병원, 슈퍼마켓 등에 보내 일하게 했다. 기업은 젊은 인력을 얻고, 선수는 대학 졸업 뒤 안정적인 직장과 야구를 계속할 환경을 얻는다. 지역에는 젊은 인구를 붙잡는 효과를 기대한다.

한국 야구가 이런 논의를 시작하기에 지금보다 좋은 시기도 드물다. 2026 KBO 리그는 지난 8월 역대 최소인 565경기 만에 1000만 관중을 넘어섰다. 2024년과 지난해에 이어 사상 처음으로 3시즌 연속 1000만 관중 시대를 열었다. 프로야구의 인기는 어느 때보다 뜨겁다. 이제 그 열기가 프로 10개 구단의 담장을 넘어 한국 야구의 뿌리까지 이어질 방법을 고민할 때다.

이 전 감독은 "일본 야구를 그대로 따라가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좋은 제도에서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며 "일본처럼 기업이 선수들을 받아 급여를 지급하면서 계속 야구를 할 수 있는 실업야구의 길도 다시 만들어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어 "대학과 실업팀에서 더 배우고 성장하고 다시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 그것이 우리나라 야구를 더욱 발전시키고 살리는 길 가운데 하나"라며 "고교에서 대학으로, 대학에서 실업으로, 그리고 다시 프로로 이어지는 길이 체계적으로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번의 드래프트가 한 선수의 야구 인생 전체를 결정하지 않는 구조. 이 전 감독의 말처럼 조금 늦게 피는 꽃도 기다려줄 수 있는 야구가 결국 한국 야구의 뿌리를 더 단단하게 만드는 길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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