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이었다. 체코 프라하에서 진행된 2026 외국인 선수 트라이아웃 현장에서 헤난 달 조토 대한항공 감독은 잰더 케트진스키(26·캐나다)에게 "포지션 변경에 자신이 있느냐"고 물었다. 답은 명확했다. 케트진스키는 "무엇이든 다 준비가 돼 있다. 이 팀(대한항공)에 갈 수만 있다면, 어떤 포지션이든 자신이 있고 도전할 자신도 있다"고 답했다. 헤난 감독은 당시를 돌아보며 "(케트진스키는) 그만큼 의욕과 의지가 있었다"고 했다.
이후 대한항공 유니폼을 입은 케트진스키는 주 포지션인 아포짓 스파이커뿐만 아니라 아웃사이드 히터 역할까지 소화하고 있다. 선발뿐만 아니라 경기 중에도 상황에 따라 활용법을 달리할 수 있다. 대한항공 입장에선 더할 나위 없는 무기고, 상대팀 입장에선 케트진스키 대비가 그만큼 까다로울 수밖에 없다. 케트진스키가 207cm의 장신을 갖춘 독일 리그 득점왕 출신이라는 점에서 상대팀 부담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이미 지난 컵대회에서도 효과를 봤다. 대한항공은 전남광주 여수 진남체육관에서 열린 2026 여수·NH농협컵 프로배구대회 결승 현대캐피탈전. 당시 선발로 나섰던 아포짓 스파이커 임동혁이 주춤하자, 헤난 감독은 아웃사이드 히터로 나섰던 케트진스키의 역할 변화를 통해 분위기를 바꾸고 대회 정상에 섰다. 당시 양 팀 최다인 25점을 쌓은 케트진스키는 대회 최우수선수상(MVP)까지 품었다.
전초전을 성공적으로 마친 기세는 지난달 31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치러진 2026~2027 HK흥국금융 V리그 홈 개막전 현대캐피탈전 역시 다르지 않았다. 그는 이날 아웃사이드 히터로 나서 그야말로 펄펄 날았다. 양 팀 최다인 19점에 공격 성공률은 75%를 기록했다. 범실은 단 2개에 불과했다. 케트진스키는 중요한 순간마다 날아올라 공격을 성공시켰고, 덕분에 아포짓 스파이커로 나선 임동혁 역시 승부처마다 포효했다. 덕분에 대한항공은 현대캐피탈에 3-0 셧아웃 완승을 거두고 개막전을 승리로 장식했다.
헤난 감독도 케트진스키 활약에 박수를 보냈다. 헤난 감독은 "앞으로도 상대팀에 따라, 또 우리 팀 스타일에 따라 케트진스키 활용법은 달라질 것"이라며 "케트진스키의 의욕과 의지뿐만 아니라 기존 선수들이 케트진스키를 잘 파악하고 받아들이고, 또 도와주려고 한다. 그런 끈끈함 덕분에 케트진스키도 편안하게, 또 보호받는 느낌으로 배구를 할 수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케트진스키는 "팬들의 응원소리, 함성소리에 많이 흥분됐다. 이겨서 기분이 좋다. 저뿐만 아니라 선수들 모두 열심히 해줬고 잘해줬기 때문에 이길 수 있었다"며 "범실에 대해서는 크게 생각을 안 하려고 한다. 범실을 생각하면 범실이 범실을 낳는다. (범실보다는) 내가 뭘 잘할 수 있는지 더 집중해서 플레이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제 한 경기 끝났을 뿐"이라며 자만을 경계했다. 케트진스키는 "보완해야 할 점들도 분명히 있다. 오늘도 이상욱이나 정지석이 리시브를 잘해줬다. 나 역시 훈련을 통해 리시브를 보완해서, 다른 선수들에게 도움을 줘야 한다"며 데뷔전보다 더 발전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