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부도사태로 쓰러진 기업이 하루 6개사꼴로 사상 최대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개인이 신청한 회생·파산 건수도 글로벌 금융위기 수준에 육박한 것으로 집계됐다. 반면 개인 회생에 성공한 사람은 회생·파산을 신청한 사람의 1/3 수준에 그쳤다.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기업과 가계 모두 빚더미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5일 대법원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법원에 접수된 기업 도산 신청은 1412건으로 2013년 1296건보다 8.9% 늘었다. 지난해 주말과 공휴일 등을 제외한 영업일이 240일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하루 평균 5.8개 기업이 자금난으로 쓰러진 셈이다. 이는 관련통계가 작성된 1998년 이후 최고치다.
파산을 신청한 기업만 539개사로 1년 사이 17% 가까이 늘었다. 파산 직전 단계인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한 기업도 873개사에 달했다. 도산은 법정관리와 파산을 아우르는 개념이다.
개인 회생과 파산 신청도 예년 수준을 넘어섰다. 지난해 개인파산 신청이 5만5467건, 개인회생 신청이 11만707건으로 전국 법원에 신청된 개인 도산 신청 건수가 16만6174건을 기록했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8년 16만6516건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법원 문턱을 밟은 기업과 개인이 역대 최고 수준으로 늘어난 것은 경기침체 장기화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조선·해운·건설사를 중심으로 대기업 그룹사까지 줄줄이 자금난에 시달리면서 하청업체인 중소기업들의 줄도산 시나리오가 현실화되고 있다. 지난해 법정관리를 신청한 기업의 절반 이상이 임직원 수 20명 이하의 소규모 법인이었다.
최상위급 대기업 몇몇을 제외하면 기업들의 자금 사정은 최악이라는 평가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어음 부도율은 0.19%(전자결제 조정 전)로 2001년(0.38%) 이후 1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어음부도율은 어음결제소에서 거래된 총교환금액 중에서 잔고부족으로 인해 부도난 어음부도액의 비율로 기업의 자금 사정을 나타내는 지표 중 하나다.
한국기업평가, 한국신용평가, NICE신용평가 등 신용평가 3사가 지난해 신용등급을 하향한 기업도 평균 45개사로 최근 5년 동안 가장 많았다.
개인 도산 신청이 급증한 데는 내수시장 침체로 소규모 사업장이 부도사태에 내몰린 탓도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소규모 사업장의 경우 회사가 부도나면 임직원들이 줄줄이 생활고에 빠지면서 기업도산과 개인도산 건수가 동반 상승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기업 구조조정 여파로 자의반 타의반으로 개업했다가 폐점한 자영업자는 물론, 교회나 재단 등의 도산 신청도 증가하고 있다는 게 법원 관계자의 설명이다.
업계에서는 개인 도산의 경우 현실은 훨씬 더 심각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법원에 파산이나 회생을 신청하지 않은 채 빚더미에 시달리거나 잠적한 사람들을 감안하면 드러난 수치는 빙산의 일각일 것이라는 얘기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카드론·리볼빙 등 신용카드 대출 연체율은 지난해 9월 말 기준 3.0%로 7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서민들의 급전을 대표하는 카드 관련 대출금의 연체율 상승은 서민의 빚 부담이 더 무거워졌다는 적신호로 해석된다.
또 다른 문제는 회생에 성공하는 사례가 갈수록 줄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법원의 인가기준에 맞춰 부채를 상환해 나머지 빚을 탕감받은 사람(면책사건)은 5만5418명으로 도산 신청 건수의 33.5%에 그쳤다. 면책 비율은 2008년 71.2%에서 꾸준히 줄어드는 추세다.
변현수 산은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올해도 기업규모나 신용등급별로 자금 조달여건이 차별화되면서 취약업종이나 중신용 이하의 기업들은 여전히 자금 조달이 어려울 것"이라며 "기업들의 자금난은 가계나 개인에게도 고스란히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