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퀄컴' 한때 이런 수식어가 붙으며 국내 '팹리스'(Fabless) 반도체 산업을 이끌던 두 업체가 있다. 코아로직과 엠텍비젼이 그 주인공들이다. 팹리스 기업은 반도체 생산은 외주에 맡기고 개발만을 전문으로 한다. 이동통신 반도체 분야 선두주자인 미국의 퀄컴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요즘 이 두 업체를 포함한 팹리스 업계를 바라보는 마음은 씁쓸하기만 하다. 코아로직은 코스닥 상장폐지 위기에 내몰렸다. 최근 자본전액잠식을 공시했고, 이달 말까지 감사보고서를 제출하지 못할 경우 코스닥에서 퇴출된다.
엠텍비젼은 이보다 앞선 2014년에 같은 이유로 상장폐지를 당했다. 최근 사옥 매각 및 구조조정으로 어느 정도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신사업 추진을 통해 부활을 노리고 있다. 하지만 내수시장 침체 등 상황은 녹록치 않아 보인다.
불과 10년 전 만해도 코아로직과 엠텍비젼의 위상은 지금과 확연히 달랐다. 이들 기업은 2004년 국내 팹리스 업계 최초로 매출액 1000억원을 나란히 돌파하며 주목을 받았다. 이듬해 실적은 2000억원에 육박했다.
휴대폰에 카메라가 장착되기 시작한 그 당시에 카메라 구동에 쓰이는 반도체 분야에 선도적으로 진입한 덕이었다. 삼성과 LG에 공급하는 물량을 두고 치열하게 경쟁하던 두 회사는 중장기적으로 매출액 1조원을 달성한다는 로드맵도 나란히 발표하는 등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승승장구하던 이들 기업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 당시 모바일 트렌드가 피처폰에서 스마트폰으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던 것. 스마트폰이 대세가 될 경우 휴대폰에서 카메라 등 일부 기능만 지원하는 반도체만으로는 향후 어려울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때문에 두 회사가 합병을 통해 역량을 모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하지만 이들 기업 창업주들은 이런 이야기가 나올 때면 으레 손사래를 치곤했다. 향후에도 충분히 독자적인 생존이 가능하다고 확신했다.
결과적으로 이들의 판단은 틀렸다. 이들 업체는 스마트폰용 반도체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탓에 이후 수년 동안 실적 악화에 시달렸고 결국 잇달아 코스닥 퇴출위기에 내몰리게 됐다.
이와 반대인 사례도 있다. 지니틱스와 위더스비전이 그렇다. 이들 기업은 지난 2014년에 공식 합병했다. 각각 터치와 자동초점 반도체에 강점을 보인 지니틱스와 위더스비전은 합병을 통해 500억원대 매출액을 올리는 회사로 거듭났다.
통합된 법인 이름은 상대적으로 실적이 컸던 '지니틱스'로 정했다. 위더스비전을 이끌던 박정권 사장은 공동대표 제안을 고사하고 부사장을 맡기도 했다. 이들 기업의 합병은 얼마되지 않아 시너지 효과를 내기 시작했다.
역량이 집중된 지니틱스는 모바일을 통해 무선으로 결제할 수 있는 '핀테크' 칩을 지난해 국내 최초로 출시했다. 핀테크 칩은 곧바로 삼성전자 보급형 스마트폰인 '갤럭시A' 시리즈에 채택됐다. 이 회사는 현재 코스닥 상장을 추진 중이다.
'단생산사'(團生散死)라는 말이 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의미다. 과거 충무공이 전쟁 중 병사들에게 외친 이 말은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끄는 원동력이 됐다.
오랜 내수침체와 함께 중국 성장세 둔화, 미국 경기하강 우려 등 대내외적인 여건이 녹록치 않은 요즘. 정체, 혹은 역성장에 놓인 국내 팹리스 기업들이 생존을 위해 곱씹어야 하는 말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