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우리 차례"…반도체·방산 중기, 'ABCD' 특례로 코스닥 간다

김세관 기자, 김경렬 기자, 김창현 기자
2025.11.03 08:00

[MT리포트] 서른살 코스닥, 조금씩 잊혀 간다(上)

[편집자주] 내년이면 코스닥이 서른 살이 된다. 1996년 7월1일 미국 나스닥을 본떠 지수 1000을 기준으로 했지만 현재 출범 시점 지수에도 못미치는 900대에서 오르내리고 있다. 코스피가 4000을 돌파해 5000을 향해 한발한발 다가가고 있는 것과 대조된다. 코스닥은 외국인에게도, 기관에게도 잊힌 시장이 됐다. 유망 중소·벤처기업에 자금을 공급한다는 본래의 취지에 맞게 코스닥의 위상을 높일 수 있는 묘안을 찾아야 할 때다.

거래소, 반도체·방산 중견·중기 육성 위해 'ABCD' 특례상장 추진

[서울=뉴시스] 권창회 기자 = 30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딜러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코스피가 전 거래일보다 5.74포인트(0.14%) 상승한 4086.89에 마감했다. 코스닥 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10.73포인트(1.19%) 떨어진 890.86,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 주간거래 종가보다 5.2원 내린 1426.5원에 마감했다. 2025.10.30. kch0523@newsis.com /사진=권창회

앞으로 반도체와 자동차, 방산과 항공우주 관련 업종 중견·중소기업들도 재무 실적이 다소 부족하더라도 기술력과 성장 잠재력이 충분하다면 코스닥에 상장해 투자를 유치할 수 있는 길이 넓어질 전망이다.

2일 금융투자업계 등에 따르면 한국거래소(이하 거래소)가 첨단산업 분야 기업들이 기술특례상장을 쉽게 하도록 하는 'ABCD 육성 방안'을 수립 중이다.

ABCD 육성 방안은 인공지능/항공우주( AI/aerospace), 바이오(Bio), 반도체/자동차(Chips/Cars), 방산(Defence) 업종에서 머리글자를 따서 이름 지었다. 관련 중견·중소기업들이 코스닥 등 증권시장에 상장해 보다 수월하게 투자를 유치할 수 있도록 맞춤형 기술특례상장 도입이 추진하는 것이 방안의 골자다.

기술특례상장은 기술 혁신성과 기업 성장성을 평가해 최소 재무요건만으로 상장예비심사 신청을 허용하는 제도다. 2005년 바이오 기업을 대상으로 도입됐다.

연도별 코스닥 상장 건수 일반VS기술특례 현황/그래픽=이지혜

현재는 전체업종으로 적용하고 있지만 아직 바이오 업체들이 혜택을 보는 게 대부분이다. 2020년의 경우 25개 사가 기술특례상장에 성공했는데 17개가 바이오 기업이었다. 지난해의 경우 42개 중 바이오 기업이 16개사로 여전히 바이오업체가 기술특례상장에서 상당한 영역을 차지한다.

이에 따라 거래소는 AI 산업 육성을 위해 맞춤형 기술특례상장제도를 활용하는 내용의 심사가이드라인 방안을 최근 공개하기도 했다. 여기에 더해 최근 코스피 랠리에 주도적 역할을 하는 반도체와 항공우주, 방산, 자동차 분야 중견·중소기업까지 기술특례 상장을 적극적으로 적용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질적 심사기준도 마련하기로 한 것이다.

이번 육성방안은 코스피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진한 코스닥을 활성화할 방안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추진되고 있다. 기술특례상장을 통해 시장에 입성한 기업이 유니콘으로 성장하고, 기관투자자들의 뭉칫돈이 코스닥에 들어오면 코스닥 역시 코스피 못지않은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거래소는 기대한다.

거래소 한 관계자는 "기술특례상장으로 시장에 평가받을 수 있는 혁신기업들의 더 많은 업종 다변화를 기대한다"며 "이들이 코스닥 시장 자본을 배분받아 원활한 기업성장을 이뤘으면 한다"고 말했다.

30살도 안됐는데 동맥경화 온 코스닥, 혈 뚫어야 산다

지난 29년간 코스닥 주단위 지수 등락 추이/그래픽=김지영

2000년 '닷컴버블'은 1996년 나스닥을 벤치마킹해 출발한 코스닥의 반짝 활황이었다. 코스닥 지수는 당시 2834.4까지 뛰었지만 1년이 채 되지 않아 525.8까지 떨어졌다. 이후 코스닥 지수는 900선 언저리를 오가며 시작가(1000)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불량기업이 주가를 왜곡하고 성장사다리로 성공한 업체는 드물어 지수 정체가 길어지고 있다는 진단이다.

2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코스닥에서 상장폐지된 기업은 총 53곳이다. 이중 스팩(SPAC·기업인수목적회사)을 제외하면 이트론, 이화전기, 에스유앤피, 대유, 위니아, 제넨바이오 등 일반 기업이 18개사다. 올해 상폐기업은 전년(22개사) 연간 대비 4개사가 적지만 2023년 13개사에 비해선 많은 수준이다.

금융당국은 지난 7월 코스닥 상장폐지 요건을 '시가총액 150억원 미만 또는 매출액 30억원 미만인 경우 즉시 퇴출'로 개정함에 따라 상장 폐지 종목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당국은 상장유지 기준을 단계적으로 상향하고 2년 연속 감사의견 미달 시 시장에서 바로 퇴출하기로 했다. 퇴출 심사 단계도 3심제에서 2심제로 축소한다.

한국거래소는 코스닥 활성화를 위해 '다산다사'(多産多死·적극적인 상장과 퇴출)의 시장 논리를 지향하고 있다. 혁신기업 상장과 좀비기업 퇴출이 유연할수록 시장은 선순환으로 투명해진다는 것.

코스닥에는 재무적으로 탄탄하지 않은 기업도 많다. 연결재무제표를 제출한 코스닥 상장사 1207곳 중 46.6%(563곳)가 올해 상반기 당기순손실(적자)을 냈다. 적자 기업은 전년 동기 대비 95곳 증가했다. 이들 부채비율은 111.61%로 지난해 말에 비해 6.19%포인트 상승했다.

코스닥 상장사가 투자자에게 제공하는 공시마저 신뢰를 잃고 있다. 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코스닥 불성실공시 건수는 113건. 올해 들어 7월까지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된 코스닥 상장사는 49곳이다.

이재명 정부들어 자사주 소각과 배당 확대 기조가 강해지면서 주주가치에 집중한 기업을 코스닥에 담을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한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배당과 자사주 소각이 많은 주식을 투자자들이 찾을 수 있도록 시장의 신뢰를 강화해야한다"며 "기업의 파산은 투자자들이 고민할 일이 아니고 애초에 내·외실이 탄탄한 기업이 상장해야한다"고 말했다.

"나스닥 다음 간다"는 코스닥, 외국인은 모른다

글로벌 주요 기술주 시장 현황/그래픽=이지혜

코스닥은 규모만 놓고 보면 세계 주요 기술주 중심 시장 가운데 나스닥 다음가는 시장이다. 그러나 외국인투자자의 인식은 여전히 낮고 글로벌 자금 유입도 제한적이다. 특정 산업 편중과 낮은 정보 접근성, 투명성 부족 등이 코스닥 투자 확대를 가로막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2일 블룸버그 터미널에 따르면 코스닥 시가총액은 475조원으로 최근 전세계 주요 기술주 중심 시장 가운데 미국 나스닥(5경830조원)에 이어 둘째로 크다. △영국의 AIM(대체투자시장)이 115조원, △일본 TSE(도쿄증권거래소) 그로스마켓이 80조원, △중국 홍콩거래소 GEM(성장기업시장)이 14조원으로 뒤를 이었다.

상장사 수에서도 코스닥 존재감은 두드러졌다. 코스닥 상장사는 1798개사로 나스닥(3338개사)에 이어 세계 2위다. 그로스마켓은 608개사, AIM은 553개사, GEM은 314개사로 코스닥이 나스닥을 제외한 다른 주요 기술 시장보다 2~3배 많은 상장사를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코스닥 인지도는 규모에 비해 낮다. 중국에 위치한 글로벌 투자자문사에서 근무하는 외국인투자자 A씨는 "코스닥은 제도와 투자 환경이 복잡하고 정부 정책 영향을 많이 받다보니 이해하기 어렵다"며 "SM엔터테인먼트(에스엠), JYP엔터테인먼트(JYP Ent.) 같은 일부 엔터테인먼트 종목 외에는 아는 기업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홍콩에 근무하는 외국인투자자 B씨는 "영문 공시가 의무화해 있지 않고 기업지배구조와 소액주주 보호 제도도 불투명하다"며 "이런 환경에서는 대형 기관 자금이 들어오기 어렵다"고 했다.

북미와 유럽 등 해외 금융업계 종사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도 대다수가 "코스닥을 잘 모른다"고 응답했다. 코스닥이 규모에 비해 글로벌 인지도와 정보 접근성이 낮다는 점이 드러난 셈이다.

거래 데이터에서도 이같은 한계가 확인된다. 국내 증시에 본격적으로 외국인 자금이 유입됐던 지난 6월부터 이날까지 외국인투자자는 코스피에서 20조원 넘게 순매수했으나 같은 기간 코스닥에서는 2269억원을 매수하는 데 그쳤다. 외국인투자자와 기관투자자 매매 비중이 늘고 있지만 코스피의 절반 수준인 24% 수준에 그치고 있다.

◆ 기업가치 제고 공시 코스닥 기업 38 곳에 그쳐

전문가들은 코스닥이 개인투자자 중심 구조를 벗어나기 위해선 신뢰 기반 강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이를 위한 주요 과제로 영문 공시 확대가 꼽힌다.

지난해 코스닥 상장사 영문 공시 건수는 721건으로 전년대비 104건(16.9%) 늘었지만 대부분 코스닥 글로벌세그먼트에 속한 기업이었다. 현재 거래소는 글로벌세그먼트 및 우량 기업을 대상으로 공시 번역 지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데 지원 대상을 확대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주주가치를 높이려는 노력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외국인투자자들이 올해 국내증시에 주목한 배경에는 주주가치 제고와 지배구조 개선 등 정책 변화에 있었다. 그러나 지난 9월 기준 기업가치제고 공시를 낸 166개사 가운데 코스닥 상장사는 38곳에 그쳤다.

투자 기반 확대를 위해 코스닥 지수를 추종하는 ETF(상장지수펀드) 상품도 늘릴 필요가 있다. 현재 코스닥 관련 ETF는 23개(시가총액 약 4조원)로 코스피 ETF(142개, 43조원) 대비 크게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외국인투자자 C씨는 "나스닥은 단순한 거래소가 아니라 세계 최고 기술기업을 끌어들이는 브랜드"라며 "코스닥이 외국인에게 투기적 시장 이미지를 벗어나려면 대형 기관이 대규모 자금을 투입해도 가격 변동이 크지 않을 만큼 유동성과 시장 규모를 확보해야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를 위해 일정 규모 이상 기업이 꾸준히 상장되고 국내 기관투자자 참여도 확대돼야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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