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 개정 이후 처음 열린 주주총회에서 일부 기업들이 이사 임기 유연제 등 정관을 변경해 집중투표제를 사실상 무력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주주총회 소집 공고 기한이 짧아 투자자들의 의결권 행사에 걸림돌이 된다는 문제도 제기됐다.
이강일 더불어민주당 K-자본시장 특별위원회 위원의 주관으로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글로벌 기관투자자 라운드테이블: 상법 개정 이후 현황 진단 및 개선 과제' 세미나가 열렸다. 기업지배구조 전문기구인 ICGN(국제기업지배구조네트워크)의 주요 해외 기관 투자자들과 국내 기업지배구조 관련 전문가들이 참석했다. 이들은 3차례에 걸친 상법 개정 이후 처음으로 개최된 주주총회 사례들을 분석하고 개선 방향을 모색했다.
첫번째 발표자로 나선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코스피 상장사들의 정관 변경 시도가 상법 개정안의 취지와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구체적으로 이사 임기 유연제(20개사)를 비롯해 △이사 수 상한 설정(25개사) △자기주식의 경영상 목적 활용(27개사) 등 코스피200에 속한 기업들이 정관 변경에 나섰고 모두 주총에서 가결됐다.
이사 임기 유연제와 이사 수 상한 설정은 이사 수를 줄여 집중투표제를 무력화할 수 있다. 사외이사(독립이사) 임기를 '3년'에서 '3년 이내'로 유연화할 경우 이사 간의 임기 만료 일자가 각기 다를 수 있다. 주총에서 새로 선임할 이사 수가 줄어들면 표가 분산될 확률이 떨어진다. 즉 원하는 이사를 선임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표가 필요하다. 집중투표제로 소액주주들의 표를 모을 수 있게 했지만 정관 변경으로 의결권 확보 부담이 더욱 커졌다.
이 회장은 선임된 사외 이사들의 부족한 자본시장 경험도 지적했다. 그는 "이재명 대통령이 지시한 기업 비업무용 부동산의 보유 부담 검토, 과도한 자사주 보유 등을 이해할 수 있는 사외 이사들인지 의문"이라며 "내실을 챙길 수 있도록 이사 교육 프로그램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두 번째 발표자인 황현영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주총 소집공고가 주로 2주 전에 발표돼 투자자들이 안건을 충분히 검토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황 연구위원은 "주주총회 안건 검토에 필요한 사업보고서와 감사보고서도 주주총회 일주일 전에 몰려있다"며 "올해 기준 국민연금은 1000건이 넘는 안건을 검토해야 하는데 시간이 일주일밖에 없어 특히 기관투자자들에게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라고 말했다.
주총 일정이 며칠 내로 몰려있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안건 공시라도 최소 3주 전에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 연구위원은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안건 통지시기가 가장 짧은 나라 중 하나"라며 "일본처럼 사업보고서와 감사보고서를 포함한 안건을 3주 전에 전자공시하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