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업의 대미 로비가 통상·관세 대응이라는 전통적 영역을 넘어 경영권 분쟁부터 우주 생명과학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된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자본시장에서 발생한 현안을 미국에서 공론화해 정치적 지원 세력을 확보하고 여론전에서 유리한 위치를 확보하기 위한 목적도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미국의 경제안보 현안과 밀접한 분야가 로비대상이어서 한국 자본시장·기업 이슈를 미국의 국익과 연결지어 설득하는 작업이 중시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27일 미국 상·하원 로비공개법(LDA·로비 활동 공개법) 신고 자료와 IB(투자은행)업계 등에 따르면 한화디펜스 USA(한화디펜스 미국법인)는 지난 20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로비업체 더 닉클스 그룹을 로비스트로 등록했다. 더 닉클스 그룹은 공화당 상원 원내총무를 지낸 돈 닉클스 전 의원이 이끄는 로비업체다. 한화디펜스USA는 같은날 미국 메릴랜드주에서 열린 '2026 해양항공우주 박람회'에서 자율항행 전문기업 마그넷 디펜스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는 등 미국에서 방산 사업 확대에 나선 상태다.
한화디펜스USA는 지난 2월에는 벤처 거버먼트 스트래티지스를 로비업체로 등록한 데 이어 로비 창구를 늘렸다. 한화 측은 국방 조달 문제와 관련해 미국 의회와 접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리조선소를 인수해 50억달러(약 7조4000억원)를 들여 연간 선박 건조능력을 기존 1.5척에서 20척으로 늘리는 증설을 추진하고 있다.
물류기업 LX판토스 아메리카는 15일 미국 로펌 이홍·디거먼·강 앤 와이미를 로비스트로 등록했다. 등록 의제는 운송·물류 분야였다. LX판토스 아메리카는 지난해 일본 선사 ONE과 미국에 합작법인 박스링크스를 설립해 인터모달(철도·트럭 결합 복합운송) 사업을 본격화한 상태다.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발 컨테이너 운송에 대한 항만 수수료 부과 등 해운 관련 통상 규제를 강화하는 흐름과 맞물린다.
제약사 보령은 지난 2월 케이앤엘 게이츠를 로비스트로 등록했다. 보령이 미국에서 진행한 전략적 투자 내용을 감안하면 우주 의약·생명과학 연구 중요성을 미국 정책권에서 설명할 채널을 구축하는 것으로 보인다. 앞서 보령은 2022년 두 차례에 걸쳐 미국 민간 우주정거장 건설 기업 액시엄 스페이스에 6000만달러를 투자했다. 액시엄 스페이스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국제우주정거장(ISS)을 대체할 민간 우주정거장 '액시엄 스테이션'을 건설 중이다.
사모펀드(PEF)도 국내외 로펌들과 연계해 미국에서 로비망을 만들었다. 미국 대형 로펌 스콰이어 패튼 보그스는 지난 1월 한국 로펌인 법무법인 태평양이 의뢰한 로비건을 맡았는데 태평양은 한국기업투자홀딩스(KCIH)와 영풍의 대리인 자격이었다.
KCIH는 MBK파트너스가 고려아연 경영권 인수를 위해 설립한 특수목적법인(SPC)이며 등록된 의제는 테네시주 핵심광물 제련소에 대한 외국인 투자 건이었다. 고려아연이 미국 전쟁부(국방부) 등의 출자를 전제로 추진하는 테네시주 클락스빌 통합 비철금속 제련소 사업에 대해 MBK·영풍 측이 대항하는 시도로 해석됐다. 미국 합작법인이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통해 고려아연 지분을 취득한다는 구상이어서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 우호지분은 늘어날 것으로 관측돼 왔다.
자본시장 관계자는 기업·PEF의 대미 로비에 대해 "경제안보 관련 사업정책, 투자심사 등에서 미국 정부, 정치권 등의 지지를 끌어내기 위한 것"이라며 "한편으로 국내 규제기관이나 의회 등과의 소통이나 국내 지원 만으론 해법을 찾기 어려운 현안을 미국 채널을 통해 풀어보려는 시도일 수 있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