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투자자들이 들고 있는 미국주식 규모가 최근 2000억달러(약 305조원)를 오가는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가 이른바 서학개미들의 국내시장 복귀를 유도하기 위해 출시한 RIA(국내시장복귀계좌) 감면 혜택 종료 이후 다시 오름세다. 자본시장에서의 국내 자금 유출이 고환율 지속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9일 한국예탁결제원(이하 예탁원)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 5일 기준 예탁원을 통한 국내 개인 투자자들의 미국주식 보관금액은 1865억달러(약 283조원)로 연초 1625억달러(약 247조원) 대비 약 15%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주식 보관금액은 이른바 서학개미(미국 주식에 투자하는 국내 투자자)가 보유하고 있는 미국 주식을 돈으로 환산한 수치다. 2024년까지만 해도 1000억달러(약 152조원) 아래에 있었다. 2024년 하반기 국내 주식시장이 최악의 침체를 겪으면서 지난해 말 1636억달러(약 247조원)까지 올랐다. 당시 호황이었던 미국 시장으로 코스피 수익률에 실망한 국내 투자자들이 적극적으로 자금을 옮긴 결과다.
이에 따라 지난해 말 정부가 서학개미들의 국내 시장 유턴을 위해 RIA 계좌 도입을 추진하고, 실제 지난 3월 이를 출시하면서 올해 3월말에는 1542억달러(약 234조원)까지 미국주식 보관금액이 떨어졌다. RIA는 해외주식 매도금액을 원화로 환전해 국내시장에 장기투자하면 한시적으로 해외주식 양도세 세제혜택을 부여하는 계좌다.
그러나 이후 최근까지 미국주식 보관금액이 다시 상승하는 추세가 나타나고 있다. 이달 초 한때 2063억달러(312조원)까지 금액이 크게 뛰기도 했다.
일각에선 RIA를 통한 양도세 100% 감면 혜택이 지난달말 종료되면서 국내 개인 투자자들의 자금이탈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는 의견을 제기한다. 또한 1분기까지만 해도 국내 주식 대비 수익률이 좋지 않았던 미국 증시 분위기가 최근 상승세로 전환된 점도 미국주식 보관금액 증가의 원인이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양일우 삼성증권 글로벌투자전략팀장은 "최근 미국 기업들의 이익 모멘텀이 강하다"며 "이란 전쟁 종료 등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진화, AI(인공지능) 부문의 실적 모멘텀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미국 증시 반등을 내다봤다.
최근 극심한 국내 증시 변동성에 피로감을 느낀 개인 투자자들이 다시 미국시장에 관심을 가질 수도 있는 상황으로, 결과적으로 원/달러 환율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의 지난해 RIA 추진 배경에는 당시 특별한 이유 없이 지속되던 원화약세를 극복하기 위한 목적도 포함돼 있었다.
정부의 구두개입 등으로 1560원대를 바라보던 원/달러 환율이 이날 1500원대 초반까지 내려갔지만, 개인 투자자들의 자금까지 지속적으로 유출되면 원화약세 부담 역시 장기화 될 수 있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오늘(9일) 코스피가 매수 사이드카가 발동되는 등 급상승 흐름을 보였지만 외국인 투자자들은 여전히 순매도 성향을 보이는 상황에서 서학개미 이탈은 시장에 부담을 줄 수밖에 없다"며 "조만간 진행될 스페이스X 상장으로 개인 투자자 자금이 더욱 해외로 쏠릴 걸 감안하면 수급과 환율 이슈라는 국내 자본시장 리스크가 쉽게 해결되지는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