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넘치는데 조달 문턱은 깐깐…마지막 보루 유증마저 '고구마'

김세관 기자, 김경렬 기자
2026.08.10 06:00

[MT리포트-돈맥경화, 기업들 곡소리 난다]①유증 뿐 아니라 회사채 발행 자체↓

[편집자주] 최근 상장사들의 자금 조달이 전방위로 어려워지고 있다. 회사채·메자닌 등 다른 자금 조달 창구부터 위축된 데다, 마지막 보루였던 유상증자마저 잇단 정정요구로 발이 묶이는 형국이다. 금융당국의 자금 조달 정책 방향마저 예년보다 깐깐해져 기업들의 고민도 깊어진다. 돈의 흐름이 시장 말단까지 유연하게 흐르게 할 수 있는 해법을 모색해 본다.
반기별 회사채 발행 및 기간말 국고채 금리 추이/그래픽=임종철

한국은행이 지난달 공개한 지난 5월 광의통화(M2) 평잔은 4184조원으로 전월대비 32조원가량 늘었다. 지난해 11월 이후 7개월째 증가세다. 시중 유동성이 늘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본원통화(M0) 대비 M2의 비율을 나타내는 통화승수는 2024년 연평균 14.9배에서 지난 5월 13.36배까지 낮아졌다. 돈의 흐름은 늘었지만 실물경제에 미치는 효과가 그만큼 크지 않은 현 상황을 방증한다. 실제로 상장사를 포함한 기업들은 자금 경색을 호소한다. 최후의 보루인 유상증자 활용도 금융당국의 문턱이 더 깐깐해진 상황이어서 기업들의 고민이 더욱 깊어진다.

지난 5일 금융감독원은 지난달 28일 이사회를 열고 1367억원 규모의 주주배정 방식 유상증자를 결정한 SK디앤디의 증권신고서 정정을 요구했다. 지난달 31일에는 한울반도체, 엣지파운드리, 상지건설 등 코스닥 상장사 3곳의 유상증자 관련 증권신고서 제출이 한번에 요청됐다.

2조4000억원 규모의 유증을 시도했던 한화솔루션은 올해 4월 두 차례의 정정요구 이후 그 규모를 1조7000억원 수준으로 줄였다. 1조2000억원 규모의 신규 투자 활용 목적 증자를 신청한 에코프로비엠도 증권신고서 정정 요구를 받고 자금 조달에 제동이 걸렸다.

올해 들어 금융당국 개입으로 유상증자 계획이 밀리거나 그 규모를 축소한 사례는 15건에 달한다. 올해뿐 아니라 지난해에도 삼성SDI가 여러 차례의 정정 신고 끝에 겨우 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다.

이처럼 사실상 허가제를 연상케 하는 금융당국의 허들 높이기에 최근 유증 규모 역시 감소하는 추세다. 한국예탁결제원이 지난달 말 배포한 자료를 보면 올해 상반기 유증 발행 금액 규모는 6조2722억원으로 지난해 상반기 8조3103억원과 비교해 24.5%가 감소했다. 지난해 하반기 유증 금액 17조5800억원 대비로는 무려 3분의 1이 준 셈이다.

자본시장 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유증은 과거 문제가 됐던 경영자나 대주주 위주 유증과 달리 증자 목적과 주주가치 제고 등이 명확하게 명시된 경우가 많다"며 "기업과 투자자의 자율에 맡겨져야 할 자본 조달이 과도하게 통제되는 흐름으로 정책 방향이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문턱이 높아진 상황에도 기업들이 유증을 자금 조달 방식으로 선택하는 건 꽉 막힌 발행시장 때문이다. 기업들이 선호하는 자금 조달 방식(은행 대출 제외)은 '회사채→메자닌(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채권)→유증' 순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회사채 발행액은 123조5968억원. 전년동기대비 15.2% 감소했다. 일반회사채는 25조9052억원으로 31.5%, 금융채는 90조4157억원으로 7.2%, 자산유동화증권(ABS)은 7조2759억원으로 30.6% 각각 줄었다.

회사채 발행이 줄어든 이유는 △시장금리 상승 △전자단기사채(전단채) 투심 위축 △금융당국의 메자닌 압박 △레버리지 ETF(상장지수펀드)의 시장교란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 3월 AA-급 3년 만기 회사채 금리는 미국·이란의 전쟁으로 국제유가 상승과 인플레이션 우려가 겹치면서 하루 만에 0.132%포인트(P) 오르기도 했다.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작년 말 연 2.953%에서 7월 말 3.959%, 같은 기간 AA- 3년물 회사채 금리는 연 3.476%에서 4.653% 등으로 각각 상승했다.

전단채 투심도 얼어붙었다. 1년 미만으로 만기가 짧은 전단채는 높은 수익률을 제시하는 경우가 많다. 일반적으로 투기등급 바로 위(투자적격 최하위) 단계의 신용등급을 갖고 있어서다. 자산운용사는 이런 상품을 하이일드펀드에 기초자산으로 담아 수익률을 높인다. 하지만 올해 제이알글로벌리츠와 JTBC 등 전단채 디폴트 사태가 발생하면서 불안전한 채권을 찾는 회사가 줄었다.

메자닌 시장도 잠잠해졌다. 3차 상법 개정에 따라 기업들이 자사주 소각을 피하려는 '꼼수'로 EB(교환사채)를 활용하고 있다는 논란에 당국이 압박을 가하면서 시장은 멈춰 섰다. 지난해 말 광동제약의 EB 발행 철회가 대표적이다. 금감원은 아이톡시의 CB(전환사채)에 대해 전환가액 리픽싱 규정 위반 소지가 있다며 정정명령하기도 했다.

이 와중에 삼성전자·SK하이닉스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가 증권채 발행을 부추기면서 기업 채권 시장을 교란한 것으로 보인다. 증권사는 LP(기관투자자)로서 레버리지 ETF의 주가가 급락한 경우 막대한 증거금을 부담해야 한다. 이때 회사채를 활용하면서 시장 자금을 빨아들였다. 지난달 키움증권(4000억원), 삼성증권(6000억원) 등이 회사채를, 미래에셋증권(1조3200억원)은 CP(기업어음)를 각각 발행했다.

부채자본시장(DCM) 관계자는 "레고랜드 사태를 계기로 규제나 압박 탓에 고객에게 약속한 금리를 맞춰주기 어렵게 됐다"며 "올해는 안정적일 것으로 믿었던 회사가 회생절차에 돌입하면서 거래가 소실됐고 금리가 오르는 악순환 상황"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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