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권사들의 몸집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 호실적으로 벌어들인 이익이 자본으로 쌓이는 가운데 신규 사업 확대를 위한 자본확충까지 이어지면서 주요 증권사의 자기자본이 불과 반년 만에 최대 20% 가까이 늘었다. 한국투자증권은 13조원대로 올라섰고 NH투자증권은 10조원, KB증권은 8조원 돌파를 눈앞에 뒀다.
빠른 대형화는 증권사에 새로운 기회인 동시에 숙제를 안긴다. 커진 자본을 기반으로 기업금융(IB)을 확대하고 종합투자계좌(IMA) 등 새로운 사업에 나설 수 있지만 자본 증가 속도에 걸맞은 수익을 내지 못하면 자본 효율성이 떨어진다. 증권사들이 동시에 몸집을 키우면서 한정된 시장을 둘러싼 경쟁이 심화하고, 수익성을 높이기 위한 위험 감수도 커질 수 있다.
1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한국투자증권의 자기자본은 지난해 말 11조1623억원에서 지난 6월 말 13조1922억원으로 18.2% 증가했다. NH투자증권은 같은 기간 8조6129억원에서 9조8181억원으로 14% 증가했다. 10조원까지 1819억원을 남겨두면서 한국투자증권과 미래에셋증권에 이어 세 번째 10조원대 증권사 진입을 앞두고 있다.
중상위권의 성장세도 가파르다. KB증권은 6조6928억원에서 7조9784억원으로 19.2% 늘어 주요 8개사 가운데 증가율이 가장 높았다. 메리츠증권은 7조5353억원에서 8조3495억원으로 10.8%, 키움증권은 6조822억원에서 6조8909억원으로 13.3% 증가했다. 하나증권은 10.1%, 삼성증권은 6.7% 늘었다.
증권사들은 벌어들인 이익을 내부에 쌓으면서 동시에 사업 확대를 위해 적극적으로 자본을 확충했다. 자기자본은 증권사의 영업력을 좌우하는 기초체력이다. 자본이 많을수록 대형 IB 거래에서 위험을 감수할 수 있고, 자기자본투자(PI)를 확대할 여력이 커진다. 자기자본 4조원 이상 종합금융투자사업자로 지정받은 증권사는 별도 단기금융업 인가를 거쳐 발행어음 업무를 할 수 있다. 자기자본 8조원 이상이면 IMA 업무가 가능한 8조원 종투사 지정의 자기자본 요건을 충족한다.
문제는 몸집이 커진 다음이다. 자기자본이 증가한 만큼 이익도 늘리지 못하면 자기자본이익률(ROE)이 떨어진다. 여러 증권사가 동시에 자본을 확대하면서 이를 수익으로 연결할 새로운 사업을 확보하는 경쟁도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자기자본이 늘어나는 것은 회사가 돈을 잘 벌고 있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지만 지금은 자기자본을 더 늘리는 것보다 어떻게 수익을 더 내고 수익원을 다변화할지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증권사들의 자본 증가 속도에 걸맞은 사업 기반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국내 IB와 투자시장이 증권사들의 몸집만큼 성장하지 않는다면 한정된 사업을 둘러싼 경쟁이 격화할 수 있다. 마진이 낮아지고 이를 만회하기 위해 위험도가 높은 사업으로 자금이 이동할 가능성도 있다.
이석훈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대형화는 규모의 경제를 추구할 수 있고 자본을 활용한 사업을 확대할 수 있다는 분명한 장점이 있다"면서도 "자본을 활용한 영업 자체가 커지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사업을 확대할 때 수익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위험 관리도 중요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과거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도 빠른 자본영업 확대 과정에서 참고할 사례다. 높은 수익성을 좇아 증권사들이 잇따라 사업을 확대했지만 부동산 경기가 꺾이자 쌓여 있던 익스포저가 건전성 부담으로 돌아왔다. 자본을 활용한 사업은 호황기에 높은 수익을 낼 수 있지만 시장의 방향이 바뀌면 그만큼 손실 위험도 커질 수 있다.
결국 증권사 대형화의 성패는 자본 규모보다 활용 능력에 달려 있다. 국내 시장에서 안정적인 고객 기반과 전문성을 확보하는 한편 해외 등 새로운 수익원을 발굴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 위원은 "각 증권사가 자신만의 포지셔닝을 명확히 하고 안정적인 비즈니스 기반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국내 시장에서 한계가 있다면 해외시장 진출 등 시장을 넓혀가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