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첨단 재난망 구축한다더니…단말기는 구형?

강미선 기자
2015.02.23 05:30

재난망 단말기 표준 사양 하향화 우려…"멀티미디어 무용지물, 방수방진은 일반폰 수준"

"사고 현장에서 주로 써야 하는데 일반 휴대폰 수준의 내구성을 가진 단말기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 지..."(소방 관계자)

"영상통신을 하라면서 2인치 좁은 화면의 무전기를 쓰라는 건가."(경찰 관계자)

올해 국가 재난안전통신망(재난망) 시범 사업이 예정된 가운데, 정부가 최근 실시한 수요조사와 이를 토대로 제시한 단말기 규격이 현장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22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국민안전처는 최근 관련 기관 설문조사를 토대로 재난망에 사용될 총 단말기 예상 수요 조사 결과(총 20만대)를 업계에 통보했다. 구체적으로 무전기형 13만9000대, 스마트폰형 2만7000대, 차량형 2만2000대, 고정형 1만2000대 등으로 조사됐다는 것. 이는 정부가 사실상 무전기형이 재난망 주력 단말기가 될 것임을 시사해준 셈이다.

하지만 경찰, 소방 등 현장 관계자들은 애초에 설문조사가 잘못됐다며 단말기에 대한 충분한 설명과 수요조사가 다시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주로 스마트폰 형태의 단말을 준비해왔던 국내 단말기 업체들도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자칫 저가 중국산 단말기에 우리나라 재난망 시장을 다 내줄 것이라는 우려다.

◇"최첨단 재난망에 단말기는 구형 무전기"

정부가 재난망 단말기 수요와 관련해 실시한 관계기관 조사에서 선호 단말기 형태 질문에 보기로 제시한 것은 △무전기 타입 △스마트폰 타입 △태블릿PC 타입 △웨어러블 △기타 등 5가지. 각각의 구체적 사양이나 장단점에 대한 설명 없이 단말기 타입만 단순 제시했다.

정부의 무전기 타입 기술규격(안) 화면크기는 2.2인치지만 설문지에는 화면크기에 대한 구체적으로 기술돼 있지 않았다. 2.2인치는 일반적인 스마트폰 화면(4.8~5.1인치) 크기의 절반에도 못 미치기 때문에 영상 추적·조회 등 멀티미디어 통신에는 부적합다는 것이 중론이다.

설문에 참여한 경찰 관계자는 "무전기 타입은 튼튼해 거친 현장에서 쓰기 적합할 것 같아 무전기형을 택했지만, 화면 크기가 그렇게 작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라고 아쉬워했다.

단말기 업체 관계자도 "정부가 막대한 돈을 들여 전국 단일 PS-LTE(공공안전 롱텀에볼루션) 기반 재난망을 구축하려는 것은 단순 음성통신보다 멀티미디어 영상통신 등 첨단 기능을 활용하기 위한 것"이라며 "무전기형은 2.2인치 화면으로 멀티미디어 활용이 어려워 지금 쓰는 무전기와 다를 게 없는데 이럴 거면 왜 하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재난망 기술로 PS-LTE가 선정되면서 영상통신에는 통상 4인치 이상 스크린이 필요하기 때문에 대부분 국내 중소기업들은 당연히 데이터 서비스에 적합한 4인치 이상 스마트폰 타입 단말기를 준비해왔다"며 "현재 2.2인치 스크린 무전기 타입이 가능한 단말기는 대부분 중저가 중국산이어서 엉뚱한 곳이 수혜를 볼 판"이라고 토로했다.

◇수출도 못할 재난망 스마트폰, 수십억 들여 만들라고?

정부가 재난망용으로 제시한 스마트폰 타입 규격 역시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정부가 제시한 재난망용 스마트폰 내구성 기술규격은 방수 방진 기준이 IP55 등급(먼지, 물분사 보호)으로 일반 스마트폰 수준에 불과하다. 최근 출시되는 아웃도어용 스마트폰, 카메라 등의 방수방진 등급이 IP67 등급(수심 1m에서 30분간 견딜 수 있는 수준)인데 재난용 단말기가 이에 미치는 못하는 셈이다.

문제는 국내 중소기업들이 IP55 규격의 재난망용 스마트폰 타입을 만들었을 경우 해당 단말기로는 해외진출이 어렵다는 점. 업계 관계자는 "세계 최초 재난망 구축 사례를 발판으로 중소기업 수출에 도움을 주겠다고 정부가 공언했는데 전세계 어디에서도 IP55기준의 단말기를 재난망용으로 쓰는 곳은 없다"며 "단말기 한 모델당 개발비가 20억원 가량 드는데 국내 몇 만 대 단말기 수요만 바라보고 중소기업이 제품 개발에 투자하는 건 부담이 너무 크다"고 말했다.

내구성이 약한 IP55 단말기의 잦은 교체로 세금을 낭비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IP55 표준기기는 2~3년이면 내구연한이 다되거나, 재난현장 속에서 고장이 잦아 지속적인 중복구매가 필요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재난망 이용기관 및 국내 제조업체들의 불만이 커지자 정부도 곤혹스러운 모습이다. 정부는 오는 24일 공청회를 열고 재난망 정보화전략계획(ISP)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국가안전처 관계자는 "단말기 타입에 대해 논란이 있는 걸로 알고 있다"며 "이용기관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면서 단말 유형 및 수량 등을 조정하는 것을 검토 중이고 시범사업을 통해 실제 단말기를 써보면 수요가 또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재난망 정보화전략계획(ISP)을 담당하는 LG CNS 관계자는 "이용기관 대상 단말 수요 조사과정에서 충분히 설명되지 않은 것들은 표현을 보다 정제해서 의견을 다시 수렴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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