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의 도시에서 주말나기

테크M 편집부
2015.05.12 05:12

[MIT테크놀로지리뷰 제휴] 화폐의 미래③ 네덜란드 아른험에서 보낸 주말

비트코인만 가지고 48시간 동안 생활할 수 있을까?네덜란드 아른험의 모데즈호텔. 필자가 묵는 방의 빨간 소파에 놓인 아이패드 화면에는 비트코인 거래소 ‘비트스탬프(Bitstamp.net)’의 실시간 현황이 나타났다. 암호화폐 비트코인의 가격은 계속 떨어지고 있었다. 아침식사 때만 해도 1비트코인이 400달러가 넘었지만 불과 30분 만에 383달러까지 떨어졌다. 이대로 가다가는 손해가 커질 것 같았다.

비트코인 가격이 10달러 더 떨어지자 계속 버틸 수 없었다. 호텔 리셉션으로 내려가 방값을 지불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필자는 그 날의 최저치에 가까운 가격으로 비트코인을 판 셈이었다. 기분이 아주 우울했다. 비트코인 보유자 절대 다수와 비트코인이라는 말을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수십억 명에게 이러한 가격 변동은 별 문제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당시 필자에게 비트코인 가격은 아주 현실적인 문제였다. 유로로 매겨진 방값을 낼 때 비트코인을 사용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환율이 필자에게 불리하게 움직이자 방값은 점점 높아졌다.

이처럼 암호화폐의 세계는 아직 불안정하다. 규제는 언제 이뤄질지 알 수 없고, 시장은 큰 폭으로 출렁인다. 비트코인은 거래 추적이 어려워 범죄자들이 널리 사용하는 통화가 됐지만, 일반 기업 상당수도 현재 비트코인 결제를 받거나 앞으로 받을 계획을 갖고 있다. 최근에는 소매업체 오버스탁(Overstock)과 뉴에그(Newegg), 대표적인 여행사이트 익스피디아도 비트코인을 받기 시작했다. 암호화 기술과 블록체인이라는 공개장부 시스템을 핵심으로 하는 비트코인은 주택 구입에도 사용되고 있다. 최근에는 우주여행 상품도 비트코인 결제가 가능해졌다.

결제를 할 때 비트코인을 사용하거나 앞으로 사용할 것으로 예상되는 사람의 수는 점차 늘어나는 추세고, 비트코인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결제비용 절감과 보안성 향상이라는 잠재력을 높이 평가한다. 하지만 비트코인이 기능통화(functional currency)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오늘날 현금과 신용카드만큼 널리 받아들여지고 쓸모가 있어야 한다. 소매업체 입장에서 비트코인을 받아들이려면 그럴 만한 이유가 필요하다. 저렴한 결제비용이 그 이유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기존의 결제수단보다 비트코인을 사용하는 것이 번거롭지 않다는 확신이 필요하다. 비트코인은 과연 이러한 조건을 만족할 수 있을까?

필자는 비트코인 결제가 가능한 업체가 세계에서 가장 많이 몰려 있는 도시 아른험을 찾았다. 비트코인만 가지고 주말을 보낼 수 있는지, 단순한 생존을 넘어 시간을 충분히 즐길 수 있는지 직접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라인강 유역에 자리잡은 인구 15만 명의 아른험이 비트코인에 친화적인 도시가 된 데는 패트릭 판 데르 메이더(36)의 영향이 컸다.

판 데르 메이더는 몇 년 전 비트코인에 대해 처음 들었다. 비트코인의 개념에 지적 흥미를 느낀 그는 기존의 은행 시스템에 대해 경쟁력이 있다고 보고 비트코인을 구매하기로 했다. 그런데 비트코인 보유량은 늘어나는데 물건을 살 때 사용할 수 없다 보니 크게 쓸모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판 데르 메이더는 파트너 두 명과 함께 아른험의 상점에서 사용할 수 있는 비트코인 결제 시스템을 만들었다. 휴대전화, 노트북, 타블렛 등 통신이 가능한 기기로 비트코인을 받되 실제 결제는 유로로 이뤄지도록 한다는 구상이었다. 이제 그가 설득한 업체는 호텔과 대형마트 각각 한 곳씩을 포함해 45개가 됐다.

1단계: 항공권 구매

필자는 비트코인의 탄생과 기술적 기반, 논란에 대해 잘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비트코인을 보유한 적은 없었다. 우선 아른험으로 향하기 8일 전 신용카드로 비트코인 구매가 가능한 서클(Circle) 웹사이트에 들어가 계정을 만들었다.

다음은 비트코인으로 항공권을 예매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업체 중 하나인 칩에어(CheapAir.com)에 로그인해 뮌헨에서 암스테르담으로 향하는 KLM 항공권을 사기로 했다. 결제화면에서 결제대금을 이체할 비트코인 주소(문자와 숫자 25~34개로 구성) 보기를 클릭했다. 다시 서클 웹사이트에 로그인해 항공권 가격만큼 비트코인을 사려고 했는데, 구매 요청이 거부됐다. 은행에 전화를 걸어 필자의 계좌에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니라고 설명한 후 다시 시도했다. 이번에는 비트코인 450달러 어치를 살 수 있었다. 서클의 일주일 결제한도 500달러를 넘지 않는 금액이었다. 구매하기를 클릭하자 결제는 바로 이뤄졌다.

필자는 미래를 먼저 체험하는 기분으로 서클의 결제화면에서 칩에어의 비트코인 주소를 입력하고 항공료 450달러를 이체했다. 그러자 칩에어의 화면이 바뀌면서 전송한 금액이 잘못됐다는 메시지가 나타났다. 어떻게 된 일이었을까? 혹시 사기를 당한 것일까? 미리 스크린샷으로 만들어둔 결제화면을 다시 살펴보니 초보적 실수였음을 알 수 있었다. 칩에어의 항공권 가격은 달러로 매겨져 있었고 그에 해당하는 비트코인 양이 함께 표시돼 있었기 때문에 필자는 서클에서 달러로 금액을 입력했던 것이다. 당연한 것 같았지만 잘못된 방법이었다. 비트코인의 가격 변동성이 크기 때문인지, 아니면 비트코인 거래소가 여러 개 존재하고 서로 가격이 다르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체금액은 약 1달러 60센트 부족했다.

필자는 이곳저곳에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서클의 직원은 당황하면서 다시 해보라고 했다. 칩에어의 직원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비트코인 문제에 대한 권한은 CEO에게만 있다”는 말만 반복했다. 제프 클리 칩에어 CEO가 출근해 문제를 해결해 줄 때까지 기다리라는 이야기였다.

약 1시간 후 항공권 구매가 완료됐다는 이메일이 도착했다. 다시 칩에어에 전화해 혹시 추가로 지불해야 하는 금액이 있는지 묻자, 직원은 “걱정할 필요 없다. 그냥 항공권을 발행하는 편이 더 간단했다”고 답했다. 일상생활에서 비트코인을 사용하는 것은 신용카드 결제보다 어려워 보였다.

2단계: 비트코인 충격

암스테르담에서 기차로 한 시간 거리인 아른험은 왠지 첨단기술의 중심도시일 것 같았다. 그러나 아른험도 유럽의 여느 도시와 다를 것이 없었다. 교회 몇 개, 상점이 몰려 있는 중심가, 고풍적인 네덜란드 풍차 몇 개가 있을 뿐이었다. 모데즈호텔에 체크인하자 쾌활한 성격의 주인이 비트코인으로 결제하는 손님은 처음 받아본다고 했다.(주말 동안 같은 이야기를 몇 차례 들을 수 있었다. 자전거가게 사이클네이션에서는 직원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더니 필자의 사진을 찍어 트위터에 올렸다.) 필자는 판 데르 메이더를 만나기 위해 스타우트라는 맥주집으로 향했다.

술값을 계산할 때가 되자 희끗희끗한 머리의 바텐더가 비트코인으로 결제할지 물었다. 그는 물론 아른험의 많은 이들이 판 데르 메이더의 얼굴을 알고 있었다. 판 데르 메이더는 아른험에서 ‘비트코인에 푹 빠진 사람’ 혹은 ‘비트코인 하는 사람’으로 통했다. 결제는 순조로웠다. 바텐더는 스마트폰에서 QR코드를 생성했다. 판 데르 메이더는 자신의 스마트폰에서 비트코인 지갑 앱 마이셀륨(Mycelium)을 열어 코드를 스캔했다. 바로 결제가 완료됐다. 잠시 후 필자는 같은 방법으로 필자가 마신 술값을 판 데르 메이더에게 비트코인으로 전송했다.

대학생 정도로 보이는 청년이 술집에서 우리를 지켜보다가 방금 무엇을 했느냐고 물었다. 비트코인으로 술을 살 수 있냐는 질문에 판 데르 메이더가 그렇다고 답했다. 그는 비트코인 전도사답게 청년에게 비트코인 지갑을 다운받게 하더니 5유로 어치 비트코인을 전송해 줬다. 청년의 친구는 아주 신기해하면서 이 모습을 지켜봤다. 청년은 가까운 카페에서도 비트코인을 받느냐고 물었다. 판 데르 메이더가 그렇다고 하자 청년은 몇 밀리비트가 들어있는 자신의 스마트폰을 움켜쥔 채 쏜살같이 술집을 나갔다.

3단계: 어디서나 (거의) 통하는 암호화폐

이후 이틀간 필자는 판 데르 메이더의 웹사이트에 있는 지도를 참조해 정말 비트코인만으로 결제를 했다. 애플페이의 초기 사용자들이 같은 시기 언론에 알린 것에 비해 오류는 적었다. 저녁에는 갈비를 잔뜩 먹었고, 비트코인으로 팁을 지불하는 것은 웨이터가 계산대에 가서 결제를 한다는 점에서 신용카드로 팁을 주는 것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하루는 모론이라는 식당에서 돼지고기 바비큐 샌드위치를 주문하고 비트코인을 아주 좋아하는 주인이 대형 벽걸이 LCD 텔레비전에 띄운 QR 코드를 스캔했다. 천연식품을 파는 미민트(Mimint)에서는 초콜릿과 치약을 샀다.

문제가 발생한 곳은 많지 않았다. 기념품 가게에서는 몇 분 동안 주인을 기다려야 했다. 비트코인 결제를 받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 달리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가게에서는 잠깐 동안 와이파이 연결 문제가 있었다. 결제를 거절당한 것은 딱 한 차례 뿐이었다. 작은 식당에 갔는데 그날 일하는 여직원이 비트코인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었다. 손님을 기다리며 탁자 앞에 앉아 있던 요리사는 “비트코인에 대해 들어본 적은 있지만 우리 식당에서는 받지 않는 것 같다. 예전 주인이 받았을 수는 있다”고 했다.(필자가 식당 유리창에 마스터카드, 비자카드 스티커와 함께 나란히 붙어 있는 비트코인 스티커를 가리키자 두 사람 모두 놀라워했다.)

하루는 판 데르 메이더의 제안에 따라 저녁에 포디지트라는 인터넷 신생기업 및 공동업무용 공간을 찾았다. 일주일에 한 번씩 기술에 관심 있는 사람들 10여 명이 모여서 식사를 하며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곳이었다. 몇몇은 암호화폐라는 발상에 흥미와 회의를 반씩 품고 있었다. 판 데르 메이더가 설계에 참여한 비트코인 POS 앱을 해킹할 수 있는 희박한 이론적 가능성에 대해 논의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인도 음식을 배달시키고 비트코인으로 결제를 한 상태였다. 음식 값을 나눌 때는 먼저 결제를 한 사람에게 비트코인으로 자기 몫을 이체해 주는 모습도 보였다. 필자가 음식 값이 얼마였냐고 묻자 누군가 “0.5비트코인이었다”고 답했다.

4단계: 아직 오지 않은 암호화폐의 시대

주말은 대부분 즐겁게 보냈지만 다소 번거롭다고 느낀 적도 있었다. 암스테르담에 사는 친구가 추천해 준 장소 몇 군데는 가지 못했다. 호헤벨루베국립공원과 반 고흐, 로댕, 뒤뷔페의 작품이 전시된 미술관은 안타깝게도 비트코인을 받지 않았다. 비트코인을 받는 곳을 대부분 들른 후 아른험에 머무는 마지막 몇 시간 동안은 강변과 공원을 거닐었다. 비 내리는 일요일이었다. 박물관이나 볼링장, 아니면 따뜻한 영화관이 무척 그리웠다. 비트코인 사용은 편리했고, 호텔의 방값을 결제할 때 운이 나빴던 경우를 제외하면 그다지 비싸지 않았다. 하지만 필자의 선택지는 금방 동이 났다.

비트코인으로 할 수 없었던 아주 중요한 것 하나는 바로 아른험을 벗어나는 일이었다. 아른험에서 공항까지 비트코인으로 이동하는 방법은 렌트카와 택시뿐이었다. 그렇게 하려면 수백 유로를 써야 했다. 반면 비트코인을 받지 않는 기차로 이동하면 17유로 10센트밖에 들지 않았다. 아무리 비트코인을 신봉하는 사람이라도 이 정도 차이를 감당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필자는 이 사실을 미리 알고 주머니에 18유로를 챙겨온 상태였다. 네덜란드철도공사의 노란색 매표기에 현금으로 동전을 넣으니 마치 뭔가 혹은 누군가(예를 들면 베일에 싸인 비트코인의 발명자 나카모토 사토시)를 배신하는 느낌이었다. 철도를 비트코인으로 이용할 수 있게 된다면 암호화폐의 시대가 진정으로 왔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번역 이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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