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월 닌텐도가 모바일 게임시장 진출을 선언했을 때만 해도 지금 같은 신드롬을 예상한 이들은 거의 없었다. 닌텐도는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장기간의 부진에서 탈출할 발판을 마련했다. 장안의 화제, '포켓몬 고'(포켓몬 GO) 얘기다.
◇화투로 시작한 닌텐도, 재미로 '문화' 만들다=야마우치 후사지로가 1889년 설립한 닌텐도는 화투를 만드는 회사로 시작했다. 수집용 카드, 장난감 사업을 펼치던 닌텐도는 3대 회장 야마우치 히로시의 주도로 1970년대부터 전자게임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1981년 '동키콩'으로 미국에서 1억 달러 이상의 매출을 달성하면서 닌텐도 게임 신화가 시작됐다. '슈퍼마리오', '젤다의 전설', '포켓몬스터'를 비롯해 독창적인 스토리와 게임성에 기반한 콘텐츠로 가정용·휴대용 게임기를 출시해 큰 성공을 거둔다.
'패미컴', '게임보이', '닌텐도DS', '위'(Wii) 시리즈로 이어지는 게임기는 닌텐도 창조 DNA의 상징적 결과물이다. 닌텐도는 킬러콘텐츠와 하드웨어를 융합하면서 새로운 재미와 감동을 주는 전략으로 승부했다. 나이앤틱과 함께 개발한 '포켓몬 고' 역시 '포켓몬스터' IP(지적재산권)와 스마트폰 기술을 결합, 오프라인 경험과 연계하는 모바일 증강현실(AR) 게임 시대를 열었다.
닌텐도는 게임을 기반으로 만화, 애니메이션, 캐릭터 사업 등으로 확장하는 IP 다각화 전략을 펼쳤다. 닌텐도 IP가 단순한 게임 이상의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이유다. '포켓몬스터' 출시 20년 만에 '포켓몬 고' 대박을 터뜨릴 수 있었던 것 역시 팬덤 문화가 이어져 왔기 때문이다.
◇개발자 자율성, 실험과 도전 중시하는 닌텐도 문화=개발자들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기업문화는 닌텐도 신화를 이끈 최대 원동력이다. '개발자들의 천국'으로 불리는 닌텐도는 개발자의 실험과 도전을 중요시하는 기업이다. 2002년부터 회사를 이끈 이와타 사토루 대표(2015년 사망)와 '슈퍼마리오의 아버지' 미야모토 시게루 대표는 개발자들에게 모방보다는 창조에 나설 것을 강조했다.
닌텐도는 특정 프로젝트를 위한 소수 인력으로 팀을 구성, 다양한 실험을 진행하는 방식으로 아이디어를 고도화한다. 실험 과정에서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면 초기 의도에 얽매이지 않고 적극적으로 궤도 수정에 나선다. 실패도 향후 프로젝트의 밑거름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기 때문에 개발자들이 두려움 없이 도전에 나설 수 있다.
새로운 게임기가 등장하면 닌텐도의 대표 콘텐츠 '슈퍼마리오'를 활용한 다양한 실험이 이뤄진다. 게임기에서 '슈퍼마리오'로 할 수 있는 것을 전부 실험하는 것이다. 이를 기반으로 한 닌텐도 개발자들의 끈끈한 조직문화는 미야모토 시게루 대표가 거액의 연봉을 제시한 마이크로소프트의 스카우트 제의를 거절한 사례에서도 알 수 있다. 당시 미야모토 시게루 전무는 "닌텐도에는 동료들이 있다"는 이유로 닌텐도에 남았다. 개발자들은 닌텐도에 근무하는 것 자체에 엄청난 자부심을 갖고 있다.
◇가족·캐주얼 게임, '미들테크' 활용하는 닌텐도 전략=닌텐도는 게임사업 초기부터 어린이들이 쉽게 즐길 수 있는 대중적인 캐주얼 장르게임을 개발했다. 가정용 게임기 '위'(Wii) 역시 가족, 지인들끼리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콘텐츠로 승부했다.
최첨단 하이테크(고급 기술)보다는 미들테크(중급 기술) 전략으로 승부한 것 역시 닌텐도의 일관된 전략이다. 사용성이 검증되지 않은 하이테크보다 널리 쓰이고 있는 미들테크로 실패의 위험성을 줄인 것. '포켓몬 고' 역시 GPS(위성항법시스템), 지도 데이터, 카메라, 그래픽 합성 등 미들테크를 활용했다.
유행을 따라가기 보다는 자신들의 가치관을 유지하는 전략은 닌텐도의 급성장을 이끌었지만 장기간 부진으로 빠지는 자충수가 되기도 했다. 2010년 이후 스마트폰 보급으로 모바일 게임시장이 급성장했으나 닌텐도는 게임기사업에 집중했다. 2012년 방한한 당시 미야모토 시게루 전무가 "모바일게임 출시 계획이 '전혀' 없다"고 공언할 정도였다.
완전한 오판이었다. 닌텐도는 2012년 출시한 '위 유'(Wii U) 판매 부진이 이어지자 실적이 급격한 내리막길을 걸었다. 2007년 1조6724억엔에 달하던 매출이 지난해 5044억엔으로 3분의 1 토막이 났다. 판매 부진을 극복하지 못한 '위 유'는 연내 생산을 종료한다.
'포켓몬 고'가 닌텐도 역사에서 방점이 된 이유는 기존의 사업모델이나 방향에서 과감히 벗어나 모바일 게임시장에서 거둔 첫 성공이기 때문이다. '포켓몬 고' 역시 캐릭터 IP(지적재산권)와 미들테크를 활용했으나, 닌텐도 게임기에 기반하는 전략은 과감히 포기했다.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닌텐도는 기술·제품·사업 전략의 일관성으로 과거 큰 성공을 거뒀다"며 "게임을 어떻게 비즈니스와 연결시켜야 하는지를 훌륭하게 보여준 기업"이라고 말했다. 이어 "'포켓몬 고' 역시 일반적인 모바일게임으로는 승부하기 어려우니 AR(가상현실)라는 기술을 붙인 것"이라며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제품전략으로 승부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