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가 세계 최초로 AI(인공지능)의 신뢰성을 입증하는 공식 시험도구로 'AI 베리파이'(AI Verify)를 선보였다. 전세계적으로 AI 광풍을 몰고 온 생성형 AI '챗GPT'가 출시된 건 2022년이지만 싱가포르는 4년 앞선 2018년부터 AI 윤리와 규제에 대해 논의했기에 가능했다.
리원시 싱가포르 정보통신미디어개발청(IMDA) AI거버넌스·안전성클러스터 총괄(사진)이 이 과정을 주도했다. 리 총괄은 최근 머니투데이와 원격화상 인터뷰에서 "AI를 사회 전반에 도입하기 위한 전제조건은 신뢰성(trust) 담보"라며 "싱가포르 AI 거버넌스의 핵심은 신뢰구축"이라고 강조했다.
AI 베리파이는 IMDA가 싱가포르 개인정보보호위원회(PDPC)와 함께 만든 일종의 기업용 'AI 시험도구'다. AI 베리파이를 통과한 제품은 국가가 인증한 '믿음직한 AI'로 간주한다. AI 제품을 개발하거나 소유한 기업이라면 누구나 테스트할 수 있다. 이를테면 인사검증용 AI의 경우 특정 인종이나 국적, 성별에 대해 부정적 평가를 하도록 학습 데이터가 편향돼 있지 않은지 시험하게 돼 있다. 자율주행차량용 객체인식 AI의 경우 교통표지판이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일부 가려지더라도 안정적으로 올바른 정보를 읽어내는지 시험한다.
리 총괄은 "기업이 투명성, 책임성과 같은 'AI 윤리'를 실질적으로 어떻게 실행할 수 있는가에 초점을 맞췄다"고 했다. AI 기업이 초기에 겪을 수 있는 법·제도적 혼란을 줄여준 것이다. AI 베리파이는 스타트업도 쉽게 따라 할 수 있도록 각 항목을 촘촘히 세분화했다. 국제표준과 호환되도록 설계했기 때문에 AI 베리파이만 거쳐도 여러 국제기준을 만족하는 AI 제품이 나온다.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리 총괄은 "싱가포르에 지사를 설립한 해외 기업들에 왜 싱가포르를 택했는지 물어보면 '신뢰할 수 있는 AI 규제환경' 때문이라고 답한다. 싱가포르가 AI 혁신의 허브로 자리잡을 수 있는 이유"라고 했다.
싱가포르는 2023년 '국가AI전략 2.0'(NAIS 2.0)을 발표했다. 신뢰 가능한 AI를 기반으로 보건, 금융, 교육, 도시관리 등 사회서비스에 AI를 적용하고 국민과 기업의 역량을 강화하는 게 골자다. 우리나라의 '모두를 위한 AI' 정책과 유사하다. 싱가포르 정부는 2023년 5000~6000명 수준인 AI 전문인력을 2026년까지 1만5000명 규모로 확대한다는 목표도 세웠다. 컨설팅기업 딜로이트는 최근 싱가포르의 AI 시장규모가 연평균 42.4% 성장세로 2030년 160억달러(약 22조원)에 달할 것이란 예측을 내놨다.
리 총괄은 "AI는 사회에서 효과적으로 사용될 때 의미가 있다. 단, 사용자와 사회가 AI를 신뢰한다는 조건이 전제돼야 한다. 신뢰가 없으면 그 어떤 공공영역도, 산업도 AI를 채택할 수 없다"고 했다. 다만 그는 "단순한 규제로 접근하기보다 '무엇이 좋은 AI인가'를 정의하는 게 선행돼야 한다"며 "AI 거버넌스는 정부 혼자가 아니라 생태계 전체를 고려해 함께 구축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싱가포르는 글로벌 컨설팅업체 액세스파트너십이 발표한 '2023년 아시아·태평양 국가 대상 AI 준비도 평가'에서 1위를 차지했다. 각국 정부의 AI 관련 정책준비 정도를 측정한 '정부 AI 준비도'에서 86.5점으로 최고점을 기록했다. 한국은 75.7점으로 4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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