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와 기획예산처(이하 기획처)가 올해부터 'R&D(연구·개발)예산 협의회'를 구성하는 가운데, 과학기술계는 "근본적인 해결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국가 R&D 기획·조정을 맡은 과학기술 혁신본부(이하 혁신본부)의 역할을 확대해야 17년 만에 부활한 과학기술부총리제가 실질적인 추진력을 얻는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13일 한 과학기술계 관계자는 머니투데이에 "혁신본부와 기획처가 한자리에서 예산을 논의할 수 있는 협의체가 출범한 것은 고무적"이라면서도 "예산을 총지휘할 결정권이 재정부에 있는 구조는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았다. 협의 과정에서 R&D 주도권을 두고 부처 간 힘겨루기가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
혁신본부는 기획처와 'R&D 예산 협의회'를 신설해 예산편성 과정에서 공동 검토를 강화할 것이라고 전날 밝혔다. 혁신본부는 협의체를 통해 기획처가 주요 R&D 배분·조정안을 재조정하는 과정에서 의견을 반영할 수 있다.
이는 혁신본부의 기능이 '반쪽짜리'라는 과학기술계의 오랜 지적과 관련이 있다. 혁신본부는 2004년 과학기술 전문성을 바탕으로 전 부처의 R&D 수요를 기획·조정하기 위한 목적으로 참여정부에서 신설됐다. 과기정통부가 처음 부총리급으로 격상했을 때였다. 다만 예산 최종 편성권은 기획처 소관으로 남았다. 혁신본부가 주요 R&D 예산안을 구성해 기획처에 내면, 기획처가 이를 심사해 최종 예산안을 만드는 구조다. 이 과정에서 혁신본부의 검토를 거치지 않은 R&D 과제가 추가되거나 기획 과제가 사라지는 경우도 있었다. 재정 효율화를 위해 기획처 시각에서의 검토가 필요하다는 이유지만, 혁신본부의 설립 목적인 범부처적 R&D 조정권이 분산된다는 한계도 있었다.
12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한국공학한림원(이하 공학한림원) 정책 포럼에서도 비슷한 지적이 나왔다. 이병헌 광운대 교수(전 대통령실 중소벤처비서관)는 "과기정통부에 R&D의 전체적인 조정 권한을 주는 게 '선수-심판 분리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R&D 조정 권한은) 혁신 활동에 참여하는 선수들의 주장이 되는 것과 같다"며 "각 부처 힘만으로는 어려운 프로젝트의 최종책임자로서 과학기술부총리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라고 했다.
윤지웅 STEPI(과학기술정책연구원) 원장도 혁신본부의 역할을 강조했다. 윤 원장은 "혁신본부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성과가 달라진다. 혁신본부장은 (공무원이 아닌) 전문가를 영입할 수 있는 데다, 국무회의도 출석할 수 있다. 혁신본부가 범부처적 조정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박수경 KAIST(카이스트) 기계공학과 교수는 "참여정부 당시 과학기술 부총리제는 정책 수단이 R&D 예산 조정에 한정되는 등의 구조적 한계로 인해 3년 만에 폐지됐다. 현 정부 들어 17년 만에 부총리제가 다시 나온 건 R&D를 넘어 미시 경제 정책 수단을 유기적으로 연결해야 한다는 문제의식 때문"이라고 했다. 박 교수는 2020~2022년 대통령실 과학기술보좌관을 지냈다.
박 교수는 "과기정통부·산업통상부·중소벤처기업부가 모두 AI(인공지능) 관련 정책을 다루는데, 정책 수단이 고가화(여러 길이 교차하는 것)될수록 중첩이 늘어난다. 부처 간 정책 연계를 구조적으로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